하늘하늘한 원피스는 동생의 패션, 벙벙한 티셔츠에 청바지는 언니의 패션이었다. 동생은 가끔 색다른 옷이 입고 싶을 때 언니 것을 빌렸다. 언니는 생일 등 꾸미고 싶은 날에 동생 것을 빌렸다. 스물다섯 김유나는 세 살 터울 언니 김유진과 윗옷과 신발 사이즈가 다 같았다. 다만 “동생 키가 저보다 10㎝나 커서 걔가 입은 옷은 다 늘어났다”고 언니 유진(29)이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고 둘만 있는 집에서 자매는 놀거리를 곧잘 찾아냈다. 수다 떨기, 아이돌 춤 따라 하기, 웃긴 표정 보고 웃음 참기 등등. “얼굴을 막 일그러뜨려서 상대방을 웃기는 게임을 했는데 매번 걔가 이기는 거예요. 동생이 너무 잘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서로 ‘왜 그렇게 생겼냐’면서 막 웃었죠.”(언니 김유진)
유진이 할 말 다 하는 성격이라면 유나는 힘든 것을 잘 내색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할까 걱정스러웠던 언니는 방에서 자주 ‘특훈’을 했다. “상대방이 때리면 너도 참지 마. 같이 때리는 거야, 이렇게.” 언니가 주먹을 쥐어 보이면 유나도 마주 앉아 작은 주먹을 흔들곤 했다.
어릴 때 통통하고 말수가 적었던 유나는 초등학생 때 키가 훌쩍 크고 호리호리해지며 주목받았다. 춤을 추고 연기를 배우며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입시가 잘 안 풀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 응원단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다. 대학 땐 기아(KIA) 타이거즈 치어리더로도 활동했다. “걔가 키가 168㎝인데 얼굴은 또 조막만 하니까 엄청 눈에 띄었거든요. 제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까지 ‘우리 동생 예쁘다’면서 맨날 사진 보여주고 자랑했어요.”
학업과 체력적 부담으로 치어리더 일을 그만뒀지만 유나는 인생 탐험을 계속했다. 2021년엔 직장을 다니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 “걔가 그때 갑자기 하고 싶다던 게 많았어요. 카페 사장을 하고 싶다, 컴퓨터 활용 자격증을 따고 싶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 엄마랑 저랑 바빠서 그걸 다 들어주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유나와 주고받은 카카오톡을 보내줬는데, 그 속엔 언니가 모르는 모습도 있었다.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유나가 펫로스 관련 책을 선물하며 장문의 위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네 마음 너무 잘 알아. 밥 잘 챙겨 먹고 언제든 전화해, 내가 갈게.” 언니 눈에 늘 철부지 같던 유나는 친구를 의젓하게 위로하는 어른이 돼 있었다.
유나 어머니는 자매가 성인이 된 뒤에도 약속 장소에 늘 차로 바래다줬다. 언니 유진이 “이제 하지 말라”고 해도 어머니는 “하나도 안 힘들다, 너희가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이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29일, 그날도 어머니는 유나를 경기도 집에서 서울 근교까지 차로 바래다줬다. 유나는 “친구 만나고 늦지 않게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밤 10시50분쯤 어머니에게 전화한 것은 유나가 아닌 유나 친구였다. “유나가 있던 쪽이 밀려서 유나가 사라졌어요.” 그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로 향한 어머니와 유진은 택시 안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만 있으라’고 기도했다”.
두 사람은 이태원과 가까이 있는 병원을 차례로 들렀다. 다음날 새벽 3시께, 열 번째로 들른 병원에 유나가 있었다. 반듯이 누운 유나는 “그냥 자는 것 같았다”. 얼굴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러나 몸이 차가웠다. 식어가는 유나 몸을 유진이 옷으로 덮어주고 발을 쉴 새 없이 만졌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와 함께 가족은 동트는 아침 6시까지 유나와 함께 있었다.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김유나 실명으로 부고 기사가 떴다. 유나의 이름과 병원이 적힌 기사를 보고 모르는 사람들이 팬이라며 찾아왔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려던 가족은 아연실색했다. 유진은 골방에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기사 내려달라고 전화를 백 통씩 하느라 장례가 안 될 정도였다.” 어떤 이는 수화기 너머 말을 흐리며 확답을 주지 않았고, 어떤 이는 ‘(유족으로서) 한마디만 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유진에겐 그런 순간이 다 상처였다.
“어느 순간부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발인할 때 주변을 계속 살피고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신경이 바짝 곤두섰죠. 그러느라 장례를 제대로 못 치른 게 너무 후회돼요.”
특히 국회의원들과 윤석열 대통령의 근조기(旗)가 유나 친구들의 화환을 밀어내고 장례식장 안쪽을 차지한 것이 유진은 속상했다. 상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배달업체가 놓아뒀는데, 가족은 발인하는 날 새벽에야 그것을 발견했다. “친구들이 보낸 화환이 정말 많았는데 그걸 안에 넣어줄걸, 동생은 정치를 잘 모르고 오로지 친구랑 가족을 생각하던 아이인데 친구들 화환을 밖에 뒀다는 게 동생한테 너무 미안해가지고….” 장례식장엔 검사와 형사가 부검을 권유하러 찾아왔다. 그들은 “절대 안 한다”는 언니의 단호한 거절에 되돌아갔다.
참사 이후 유진은 “몸에 물 묻히는 것마저 죄책감을 느꼈다”. 동생이 없어졌는데 씻고 먹으며 인간답게 산다는 게 싫었다. 사소한 선택도 망설이게 됐다. “그때 내가 외출을 안 했으면, 중간에 휴대폰을 확인했으면 (참사를 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앞으로 내 선택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서워서요. 뭘 하자, 어딜 가자는 말도 쉽게 못하겠어요.” 현재 유진은 휴직하고 어머니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고통 속에 살던 언니에게 위로가 된 것은 유나의 친구들이다. 참사 이후 유나의 초·중·고·대학교 친구들은 ‘유나를 그리워하는 카카오톡방’을 만들었다. 유나가 꿈에 나오면 가족에게 알려주고 추모제가 있으면 일정을 공유한다. 참사 100일째이자 유나의 생일인 2월5일엔 케이크를 주문 제작해 식당에서 유나 가족과 생일파티도 했다.
“제가 죄책감이 들다보니 지인들이 저를 걱정하면 동생한테 미안했는데요, 유나 친구들은 유나를 먼저 생각해주니까 그게 고마웠어요. 저는 ‘(유진이) 동생 잃어서 어떡하냐’는 말보다 ‘(유나가) 젊은 나이에 가서 어떡하냐’는 말을 더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형제 유가족들과도 각별하다. 유진은 그들과 몇 시간이고 서로의 형제자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듣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이야기다. 유진은 아직 모임에 오지 않은 유가족들을 생각한다. “이런 일을 처음 겪으면서 정말 힘들었는데요, 유가족들과 유나 주변 사람들을 만나 많이 위로가 됐어요. 그분들도 혼자 계시기보다 같이 위로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어머니가 참사 뒤 유나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와 친구가 소개하는 유나 이야기를 아래에 싣습니다.
1. 어머니가 유나에게
내 딸 추울까봐 엄마는 항상 네 방에 불을 튼다. 내 새끼 사랑한다. 엄마는 내 새끼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하게 영원히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천국에서 천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거라, 내 사랑하는 딸아.(2022년 12월2일 금요일)
나의 천사 유나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보물, 내 희망, 내 자랑이었던 내 딸아. 이제 편히 쉬어라 사랑한다.(12월17일 토요일)
유나야. 내 딸, 오늘이 엄마 생일이래. 내 딸이 없어서 세상에서 제일 슬픈 생일이네. 내 딸이 있었다면 엄마 생일을 누구보다 행복한 생일을 축하해줬을 텐데….
우리 유나가 천국에서 엄마를 보고 있길 바라. 엄마를 축하해주기를 바라. 내 딸아 사랑한다, 내 딸.(1월13일 금요일)
2. 유나 친구 채리가 소개하는 유나 이야기
유나는 주변 사람을 챙길 줄 알고, 본인 일이 아니어도 진심으로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가끔 엉뚱한 말로 친구들을 웃게 하고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요즘에도 문득 유나가 했던 말들이 떠올라 혼자 피식하기도 합니다.
유나를 떠올리면, 유나의 밝은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던 친구였어요.
주변 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대해주고 친구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유나는 하늘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 유나는 위처럼 밝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줬던 친구로 평생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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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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