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집에 걸린 달력은 2023년 2월에도 여전히 2022년 10월에 멈춰 있다. 거실 한가운데 액자에는 첫째 아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아빠 최재혁이 사놓은 액자다. 탁자에도 벽에도 곳곳마다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아내 김아리(43)씨가 거실에 놓인 캠핑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랑이 둘째를 귀여워하는데 (평소엔 아이가) 잘 안기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은 안기는 것보다 아빠와 권투놀이처럼 몸으로 노는 걸 좋아했다. 어느 일요일 밤, 태권도 승급심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둘째가 학원에 가기 싫다며 엉엉 울었다. 아빠는 캠핑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아들을 앉히고 태권도 승급심사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심사 과정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배운 기억을 잘 살려보라고도 말했다. 그래도 아이는 훌쩍거렸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뭘까 고민하던 신랑은 아이를 마냥 달래는 대신에 말없이 안아줬어요. 우쭈쭈하며 안으니 정말 좋다며 놓아주지 않았어요. 계속 안아주고 싶다며 웃고요.”
마흔일곱 최재혁은 따뜻한 아빠였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학습지도 일일이 채점해줬다. 2022년 1월 아이들과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를 갔을 때다. 초등학교 5학년 첫째 아들이 달리전을 다녀와서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미술관에 가기 싫다.’ 이걸 본 최재혁은 말했다. “앞으로는 그림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아빠가 못 볼 것 같은 색깔을 찾아줄래?” 아이는 아빠를 도와달라는 말에, 다음에 방문한 전시회부터는 그림을 열심히 봤다. 아빠는 미술전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회, 박물관에 아이를 자주 데려갔다.
아내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남편이기도 했다. 2010년 6월 결혼한 뒤로, 이들 부부는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성실한 남편이었다. 밤 11시가 다 돼 퇴근해도 설거지를 해놓곤 했다. “항상 잔잔한 호수같이 흔들림이 없는 편안한 사람.”(아내 김아리씨) 업무차 세계 곳곳을 출장 다니면서도 아이에게 나중에 줄 선물도 미리 사뒀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 <스타워즈>를 본 뒤, 창고에서 스타워즈 장난감을 꺼내주는 식이었다.
최재혁은 제이티비시(JTBC) 산하 콘텐츠 스튜디오인 에스엘엘(SLL) 창립 멤버이자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다. 회사 성장전략을 세우고 투자 업무를 주로 했다. 인수·합병 업무도 도맡았다. 차가운 업무와 달리, 최재혁은 본디 다정한 사람이었다. “후배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격려해주던 따뜻한 선배였습니다. 대접받기보다 베푸는 걸 좋아하던 형입니다.” 5년간 함께 일한 회사 직속 후배 ㄱ씨의 말이다. 20년 친구 구재모씨는 “남들보다 10배의 시간을 살았던” 친구의 별명이 ‘재혁 엄마’라고 했다. 최재혁은 친구들과 여행 가면 꼼꼼히 영수증 정리를 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다정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2022년 10월29일, 최재혁은 서울 이태원에 함께 일했던 옛 동료를 만나러 갔다. 매달 이태원에서 열리던 정기모임이었다. 밤 10시가 안 돼, 이날 모인 4명 중 2명이 택시를 타고 자리를 떴다. 최재혁과 동료 한 명은 이태원역으로 걸어갔다. 밤 10시쯤, 최재혁은 휴대전화로 사람들이 꽉 찬 이태원 거리를 사진 찍었다. 그 뒤로 참사가 일어났다. “둘이서 함께 가다가 많은 인파에 휩쓸리고 넘어지며 둘이 찢어졌대요. (동료는) 길에 넘어졌다가 2시간 만에 깨어나 겨우 살아서 돌아왔어요.”(김아리씨)
이날 자정이 다 되도록 아내 김씨는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뉴스가 계속 나왔다. 평소 술도 마시지 않고 전화하면 꼬박꼬박 받던 남편이었다. 남편의 옛 휴대전화를 찾아, 이날 만난 옛 동료들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남편 휴대전화의 위치확인을 요청할 수 있었다. 김씨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가 오기만 기다렸다. “택시가 올 때마다 신랑이 내리기를 기도했어요. 지금도 택시만 보면 눈물이 나요.”
다음날 새벽 무작정 김씨는 희생자들이 모여 있다는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으로 향했다. 새벽 3시에 도착하니, 흰 천이 덮인 채 누워 있는 희생자들 모습이 보였다. 하얀색 운동화만 보고도 남편인지를 알아챘다. “그때 남편 얼굴을 확인했는데 이상하게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 같아서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경찰은 남편의 휴대전화랑 지갑을 주면서, 신원확인은 지문으로 할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데 몇 시간 안 돼 갑자기 체육관에 있던 희생자를 모두 병원으로 분산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까 그 경찰에게 전화하고 이리저리 확인했지만,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오후 3시에야 남편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에 안치된 것을 확인했다. “남편을 처음 찾았을 때 신분증을 받지 말걸 싶더라고요.”(김아리씨)
최재혁이 떠난 자리는 가족의 일상에 여전히 불쑥 튀어나온다. 효자인 아들 최재혁은 자기 이름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하이패스 카드를 어머니 김현숙씨에게 발급해드렸다. 아들이 떠난 뒤인 2022년 12월 중순 어머니가 전남 광주에서 차를 타고 톨게이트를 나갔더니 승인 미결제가 떠서 통과되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것 같아 펑펑 울었어요.” 어머니에게 최재혁은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 동전을 넣어보곤 하던 호기심 많은 아들, 서울대 공대를 나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영서적도 여럿 낸 아들. “진짜 불꽃처럼 살다 갔더라고요. ‘곧 다시 보자, 내 아들아’ 이렇게 (카카오톡 프로필에) 써놨어요.”(어머니 김현숙씨)
아이들은 아직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첫째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가 이태원에서 돌아가셨어?” 김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그랬어.” 아이가 다시 물었다. “왜?”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더니, 아이는 다시 물었다. “지하철 안에서 공기가 부족해서 그랬던 거야?” 김씨는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아니야, 바깥이었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돌아왔다. “바깥인데 밀폐된 공간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 할 말이 없었다. “엄마도 이해가 안 된다. 시간이 흘러야 알 것 같아.” 그 뒤로 첫째 아들은 아빠의 죽음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둘째 아들은 “아빠가 하늘나라로 출장을 간 거지?”라고 먼저 물어왔다. “이제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시고,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 파워, 아빠 파워, 그리고 할아버지 파워. 이제 슈퍼파워를 얻은 거야.” 김씨가 둘째에게 해준 말이다. 둘째 아들은 아빠를 떠나보냈던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교회 수양관 비석 앞에서 인사 대신 아빠와 놀 때 하던 권투를 했다.
2022년 10월 내내 프랑스로 출장을 다녀온 최재혁은 아이들 선물을 잔뜩 사왔다. 예전 출장 때 사놓고 아직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선물도 있다. “창고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다가, 첫째가 크면 아빠랑 같이 하려고 아껴놨던 레고 선물을 찾았어요.”(김아리씨) 최재혁은 첫째 아들이 성인이 되면 전해줄 메모도 남겨뒀다. ‘첫째에게 전수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나의 상상 그림. CEO.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에서 비전 있고 종업원을 위할 줄 알고….’ 아빠는 떠났지만, 아빠가 남겨둔 선물은 아직 많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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