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민이 스무 살 때인 2011년이었다. 엄마 최행숙(62)씨는 당시 개봉한 한국영화 <써니>를 보고 싶었다. 아들에게 물었더니 이미봤다고 했다. “갑자기 보려 하니 같이 갈 사람이 없네.”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민은 그 자리에서 영화표 두 장을 예매했다. “너는 봤다면서?” 아들은 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데, 또 보면 되지.”
“엄마가 원하는 건 다 해주려 했던 아이였어요.” 동민보다 두 살 많은 누나 이지수(34)씨는 그렇게 동생을 기억했다. 엄마가 심부름시키면 밤에도 마다하지 않았고, 집에 들어올 때면 엄마에게 전화해 마트에서 사갈 것 없냐고 물었다. “맨날 집에 오면서 엄마한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서 ‘비교되니까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어요.” 지수씨는 그리운 눈빛으로 이젠 질투마저 할 수 없는 동생을 떠올렸다.
동민은 어릴 때도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었다. “동민이 같은 아이라면 열 명이라도 키울 수 있겠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한 태권도는 4단까지 땄다. 마음도 몸도 건강한 아들이 엄마에겐 더없이 멋졌다. 엄마는 아들을 ‘동건’이라고 불렀다. 배우 장동건을 빗댄 말에 아들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엄마에겐 아들이 장동건보다 나았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동민은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한 뒤 기계설계사로 취업했다. 회사에 다닌 지 2년쯤 되던 해 갑자기 몸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자가면역질환으로 병세가 깊어지면 척추가 굳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 2년 동안 치료받고 건강을 찾은 동민은 전문 교육기관에서 정밀금형을 공부했다. 전공 분야로 창업하겠다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뒤 동민은 경기도 동탄에 있는 기계부품 회사에 취업했다. 동민의 전공은 부품 도면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현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업무를 자원했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알아야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고 동민은 생각했다.
2022년 동민은 모든 것이 좋았다. “공부도 많이 해야 했고, 몸도 아팠는데 지난해부터는 굉장히 즐거워했어요.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사람들이 동민이를 많이 아껴줬거든요.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마련된 거죠.” 누나는 고생했던 동생이 이제야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았다.
동민은 회사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매주 금요일이면 경기도 성남에 있는 집을 찾았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그 주엔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했다. 누나는 2022년 10월29일 밤 10시께 집에 들어왔다.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던 중 유튜브에서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했다. 큰 사고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날 새벽 4시 용산소방서장의 공식 브리핑까지 보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민이 거기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 3시30분께 인터폰이 울렸다. 밖에 경찰이 찾아와 “이동민씨 집이 맞냐”고 물었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어나 경찰을 맞았다. 경찰은 동민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가족은 동민이 있는 강동경희대병원으로 향했다. 아빠 이성기(63)씨는 아직 몸이 따뜻한 동민을 붙잡고 계속 “일어나라”며 깨웠다. 하지만 동민은 눈을 뜨지 않았다.
가족은 동민과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가족여행을 제대로 간 적이 없어 2023년 여름 제주도를 가려고 했다. 동민의 휴대전화에는 2022년 11월18일 경기도 화담숲 입장권이 예매돼있었다. 단풍이 한창 예쁠 때였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동민이 다달이 돈을 넣던 청약통장도 이제 주인을 잃었다.
가족은 동민의 마지막 행적을 아직 제대로 모른다. 동민이 이태원 인근에서 택시에 내린 것은 밤 9시50분께였다. 밤 10시11분 사진을 석 장 찍은 것이 휴대전화에 남은 마지막 기록이다. 누구와 이태원에 갔는지도 가족은 알지 못한다. 소방서 기록 등을 보면 밤 11시께 행인이 심폐소생술을 하던 동민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도착한 것이 자정께였다고 한다. 병원에서 다시 심폐소생술을 하고 40분가량 정맥주사를 놓았지만, 끝내 동민은 깨어나지 못하고 10월30일 0시40분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를 놓친 것은 아닌지, 동민이 어떻게 이태원에 갔는지 아직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할 정부는 대답이 없다. 사람이 죽어간다고 112신고가 빗발쳤는데도 왜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용산구청 당직 공무원들이 참사 당일 이태원 인파관리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수거하러 가야했는지 동민의 가족은 이해할 수 없다. “진상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사과만 하면 이 서글픔이 풀리겠어요. 진상 규명이 되면 책임자 처벌이 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진실은 외면하고 말단 몇 명만 구속한 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뒤에 숨어 있으니 견딜수 없는 거죠.” 아빠는 화를 참지 못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빼곡히 담긴 보수단체의 펼침막 하나 걷어가지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었다. 아빠는 매일 찾아가던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앞에서 그 펼침막을 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제일 간단한 펼침막 하나도 철거 못하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픔은 점점 분노로 쌓여갔다.
동민은 누나의 꿈에만 나타났다. 엄마 아빠의 꿈에는 아직이다. 2022년 11월 말 꿈에 나타난 동민은 누나랑 치킨도 시켜먹고 같이 컴퓨터게임도 하고 오락실에서도 놀았다. 모두 동민과 함께 나누던 일상이었다. 너무 생생한 꿈이어서 사실이길 바랐지만, 눈을 뜨면 동생은 없었다. 엄마의 꿈에는 나타나지 않아, 엄마는 동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했다. “여기서 고생 많이했고,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해. 친구들 많이 있을 테니까 그곳에서는 즐기면서 지내면 좋겠다. 엄마, 아빠, 누나 걱정하지 말고 엄마 갈 때까지 잘 있어. 그때는 꼭 마중 나와야 해. 거기서 만나 손잡고 다시 영화 보고 싶다.”
“거기 가서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던 아빠는 이 말을 하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이동민씨 가족이 이태원에서 동민씨를 목격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동민씨를 목격한 분은 bonge@hani.co.kr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환봉 <한겨레>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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