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우유팩 분리수거 의무화, 수거함만 설치하면 끝일까

2026년 6월29일 서울 중구 회현동의 한 카페 앞에 종이팩만 따로 담은 재활용 봉투가 놓여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우유나 두유를 넣는 데 활용되는 종이팩은 일반 폐지보다 품질이 좋은 고급 펄프를 얻을 수 있는 재활용 자원이다. 잘 재활용하면 고급 화장지 등을 만들 수 있지만,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14.1%(2024년 기준·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로 낮다.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다른 폐기물과 함께 처리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정부는 아파트(공동주택)의 종이팩 분리배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탐사취재한 결과, 현실에서 종이팩을 분리해 내놓더라도 회수·선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재활용 공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사회적협동조합은 공동주택 회수망 구축 등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장 사례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회수·선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 하반기에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서 종이팩을 분리해 배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전용 수거함 제작 기준과 전용 수거봉투 배포 등 기반시설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의 조처는 종이팩 분리배출 정책이 그동안 수거보상제나 시민단체 캠페인, 일부 지자체의 시범사업에 머물렀던 수준에서 공동주택 분리배출을 제도화하는 단계로 나아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종이팩을 따로 버리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겨레21이 2026년 6월29일부터 7월30일까지 한 달간 종이팩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배출 이후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분리배출된 종이팩이 수거 업체와 선별장(배출된 재활용품을 재질별로 분류·압축해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중간 처리 시설)을 거치는 과정에서 소각되거나 이탈하는 사례가 확인됐다.(32~37쪽 참조)

한겨레21은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버려진 종이팩에 추적기를 달았다. 분리 배출은 재활용 체계에 도움이 됐지만, 수거·회수 과정에서 이탈되는 우유팩도 확인됐다.
결국 공동주택 분리배출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들의 분리배출뿐 아니라 회수와 선별 체계도 함께 갖춰야 한다. 실제 추진된 시범사업에서도 ‘잘 버리기’뿐 아니라 ‘잘 모으기’와 ‘잘 회수하기’가 과제였다.
서울 노원·도봉구에서는 지자체와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테트라팩코리아 등이 종이팩 분리배출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3년부터 노원·도봉구 아파트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고, 모은 종이팩을 선별장으로 보낸 뒤 제지업체까지 도달하도록 회수 체계를 구축했다. 제지업체는 이를 휴지 사이에 넣는 종이나 과자 상자 등으로 재활용한다.
사업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주민들이 종이팩을 따로 모으려 해도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이 참여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수거함이 설치된 뒤 회수 업체가 가져가지 않아 종이팩이 그대로 쌓이는 일도 발생했다.
환경단체들은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니며 관리사무소를 설득했다. 주민 대상 분리배출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다. 민간 회수 업체를 미리 섭외해 종이팩 회수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이렇게 관리사무소와 주민, 회수 업체를 하나씩 연결해 종이팩이 안정적으로 재활용 업체까지 이어지는 회수 체계가 만들어졌다. 사업은 2026년 기준 노원구 81개 단지(4만4545가구), 도봉구 22개 단지(1만1836가구) 규모로 확대됐다.
조은샘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지구돌봄팀장은 “회수 업체들은 종이팩이 충분히 모이면 가져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며 “종이팩은 폐지보다 단가가 높지만 물량이 적어 경제성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 팀장은 “주민들이 종이팩을 잘 모을 수 있도록 교육과 캠페인을 하고, 회수 업체와 연결하는 역할은 지자체가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북 전주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전주에서는 민간 업체와 협약해 공동주택에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하고, 종이팩만 별도로 수거해 곧바로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선별장을 거치지 않는 것이 노원·도봉구 사례와 다른 점이다. 모든 종이팩이 예외 없이 재활용 업체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장점이 있다. 전주에서 종이팩 수거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 ‘사람과환경’ 강재원 대표는 “전용 차량을 마련해서 종이팩 전체를 직접 수거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폐지 등과 섞이는 비율이 높고, 선별하는 시스템에서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전주시 594개 아파트 단지 중 217개 단지에 수거함이 설치됐다. 2023년 시작된 사업은 2026년 6월까지 종이팩 17만2428㎏을 재활용했다.
다만 이런 방식을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종이팩 전용 수거 차량과 인력 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수거 후 직접 재활용 업체로 가는 방식이 가장 좋지만, 선별장을 거치더라도 종이팩이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 재활용 업체로 갈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2026년 7월8일 밤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중구 청소대행업체 관계자들이 상가에서 내놓은 재활용 종이팩을 수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전문가들은 지역마다 재활용 선별장에 종이팩 선별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는 선별장에서 종이팩을 반드시 별도로 선별해야 하는 운영 기준이 없어 지역마다 처리 방식이 다르다. 배연정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선별장에서 종이팩을 수선별(손으로 직접 분류)하도록 지침을 주느냐에 따라 선별되는 양이 크게 달라진다”며 “지자체의 지침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별장 시설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지수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사회적협동조합 매니저는 “종이팩을 별도로 선별하는 체계를 갖추려면 선별장 설비와 인력에 대한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지자체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종이팩을 수거하는 회사에 지원금을 확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조은샘 팀장은 “현재는 선별 업체와 재활용 업체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생산 기업이 자사 제품의 폐기물에 분담금을 지원하는 제도) 지원을 하게 돼 있지만, 회수 업체는 빠져 있다”며 “회수 업체에도 일부 지원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보완하면 종이팩 회수 체계가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추진되지만, 아파트 외 배출처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카페와 단독주택 등에서도 종이팩이 꾸준히 배출된다. 배연정 연구원의 발표를 보면, 종이팩 배출량은 아파트가 40%, 카페가 25%, 단독주택이 24%, 학교·어린이집이 6.7%, 편의점·군부대가 4%를 차지한다. 60%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배출되는 셈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향후 시범사업과 협약을 통해 카페나 군부대 등에서도 재활용률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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