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예능화가 극우화 부추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박영환 위원장 등이 2026년 7월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의 교사 1109명과 청소년 1636명을 대상으로 한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혐오와 조롱이 모든 사회 영역으로 퍼진 것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실부터 운동경기장, 직장과 인터넷 공간까지 극우가 확산하면서 혐오와 조롱이 놀이가 됨에 따라 극우의 언어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놀이’로 여겨지다보니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웃자고 하는 것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큰 틀에서 보면 조롱과 혐오는 놀이가 인간의 존재 방식이 되는 ‘삶의 전면적 예능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삶의 예능화는 놀이의 주요 요소인 위트를 조롱으로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고, 조롱은 혐오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형식이기 때문이다. 지금 혐오와 조롱은 놀이하는 인간이 자신의 창의성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인정투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왜 하필 조롱과 혐오가 창의성을 인정하는 투쟁의 무대가 됐을까?
아트 디렉터 이윰은 예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창의성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호모파베르’다. 도구를 사용해 창작하는 존재다. 미켈란젤로는 24살의 나이에 단 하나의 대리석을 깎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저 돌덩이 하나에서 그는 불멸의 형상을 보고 깎아냈다. 이를 이윰 대표는 호모파베르의 ‘창의성’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단계가 ‘호모사피엔스’다. 대표적인 것이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그는 소변기에 가상의 작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작가의 ‘손’(도구)을 거쳐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소변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두는, 맥락을 바꾸는 것을 통해 의미에 대해 질문했고 이것은 현대 미술사에서 예술의 정의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의성의 핵심이 제작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고 의미의 본질을 묻고 생각하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로 인공지능(AI)과 함께 이윰은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거론한다. AI 등의 도움으로 이제 인간은 무엇을 만들지도, 의미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놀이’할 뿐이다. 노는 것은 창조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불변하고 불멸하는 것, 즉 성스러운 것에 대한 지향이 없다. 만들고 부수는 과정에서 무한한 유희를 즐길 뿐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식으로 말하면 놀이를 통해 인간은 성스러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진다. 이게 호모루덴스의 창의력이라는 제안이다.
문제는 지금 시대엔 놀이를 통해 자신의 창의력을 고양하기도 하지만 놀이 방식으로 자신의 창의력을 증명하기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창의’는 이 시대의 강박이다. 놀이는 사회적 존재 양식이며 인정투쟁이다. 어디에서나 우리는 창의를 보여줘야 한다. 정말로 창의력이 필요한 곳부터 창의력이 위험할 수 있는 ‘관료’ 영역에까지 창의력을 보여줘야지만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좀더 창의적인 것 없어?”라는 말은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 요구인 셈이다.
놀이의 핵심에 자신이 고루한 성스러움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의미에 심각한 것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 ‘의미’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것이 핵심이다. 진지하던 모든 것을 장난감처럼 바꿀 줄 아는 것이 놀이의 핵심이다. 놀이에는 기본적으로 성스러움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내재돼 있다. 놀이는 현상적으로는 엄격하고 진지한 것, 본질적으로는 불변하고 본질적인 것을 조롱하고 농락한다.
놀이하는 인간은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무너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봐야 한다. 엿보는 동안에는 냉소적이 된다. 상대가 진지하게 추구하는 불멸의 의미 따위는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놀이가 불멸하는 것의 적이라고 한다면 놀이에는 언제나 냉소적 열정이 있다. 이 냉소적 열정으로 의미를 무너뜨릴 절호의 순간을 포착해 순발력 있게 치고 들어가 위트 있게 무력화해야 한다.
포착된 ‘단면’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의미 중심의 세계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맥락이었다. 눈앞에 나열된 글자와 문장, 그 뒤에 쓰이지 않은 것을 맥락이라고 불렀다. 보이지 않는 맥락은 읽어서 파악해야 했다. 호모사피엔스의 의미 지향 시대에서 문해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이 맥락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포착된 단면을 통해 드러난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감탄하는 걸 파악하는 것은 역량이 아니라 포착하는 재주다.
지금 놀이에서 중요한 두 가지 역량이 바로 순발력과 위트다. 순발력과 위트가 가장 돋보이는 것이 예능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분량을 잘 뽑아내야 한다. 분량을 잘 뽑으려면 강력한 인상을 줘야 한다. 물론 자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강력한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한두 번의 ‘사연팔이’이지 그 사람의 역량을 보여주지 않는다.
예능에서 사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출연자의 역량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며 강력한 인상을 주되 진행 전체를 부드럽고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역량이다. 자기 이야기를 짧고 굵게 삽입할 시간을 순발력 있게 포착하기, 무대 위의 말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위트 있게 처리하기. 이 두 가지가 예능에서 핵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는 예능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예능화돼 있다. 대표적으로 출마자들을 모아놓고 하는 선거 정책 토론이 있다. 말이 정책 토론이지 대부분 순발력과 위트를 평가하는 예능 리얼리티쇼에 더 가깝다. 답변을 위해 주어지는 시간도 매우 짧다. 이 짧은 시간에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잡성은 ‘토론’에서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돋보이는 건 명쾌함이라는 이름의 순발력이다. 순발력이 없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자들이 2026년 7월29일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MBC)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석, 정청래, 송영길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상대에 대한 비판과 공격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날카로운 질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위트 넘치는 공격이다. 위트는 사람을 공격하는 순간조차 여유로워 보이게 한다. 그러나 위트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상대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치고 들어가 허점을 공격해 그를 당황스럽게 해서 허우적거리게 한다. 당한 사람에게는 비참한 장면이지만 공격한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즐길 만한 장면으로 ‘가리는’ 것이 바로 위트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처럼 바보에게 화낼 때는 웃으면서 해야 한다. 위트는 상대를 진지함에서 제외하는 잔인한 공격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순발력과 위트는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갖춰야 하는 역량이 되었다. 진지하고 길게 설명하는 사람은 짧은 면접 시간에 살아남기 힘들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최종 면접에서 ‘사회성’이 문제가 되어 떨어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그때의 사회성이 바로 순발력과 위트다. 면접을 보면서도 자신이 여유로운 역량이 있는 사람임을 ‘어필’하기 위해 끊임없이 순발력 있게 위트를 선보이며 웃음을 유발해야 한다. 예능적 캐릭터가 돼야 하는 것이다.
예능화된 세계에서 역량의 핵심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웃음은 망가지는 데서 온다. 나를 망가뜨리든, 무대 위 다른 사람을 망가지게 하든 혹은 세상의 누군가를 조롱하든, 망가지는 데서 웃음은 유발된다. 그중에서도 바보로 망가지는 것이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한다. 예능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대부분 자기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 것, 혹은 상대가 바보 같은 짓을 했던 것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그때 정색하지 않고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거나 너는 더하지 않았냐며 더 바보 같은 장면으로 증폭하는 것이 ‘위트’의 포인트다. 특히 자신을 바보로 망가뜨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높은 수준의 위트였다.
이런 바보 중에서도 가장 크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사기꾼 바보다. 상대가 사기꾼일 경우 그가 바보임을 드러내는 것의 효과는 몇 배로 상승하고 그에 따라 폭로의 쾌감도 증폭된다. 사기도 똑똑해야 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사기가 발각되고 사기꾼이 사실은 멍청한 존재였음이 발각되는 순간, 대중에게 이보다 더 쾌감 넘치는 구경거리는 없다. 사기꾼도 응징하고 그를 바보로 조롱할 수도 있고, 일석이조다.
이것이 가장 극대화된 곳이 예능화된 정치의 세계다. 예능화된 정치 세계에서 우리의 모든 신경은 상대(혹은 모든 인간)의 멍청함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온통 쏠려 있다. 예능 방송부터 정치, 일상생활에서 온라인 공간까지 모두 망라한다. 그가 얼마나 멍청한지, 그 멍청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공격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하나다. 그는 사기꾼인데 바보 같은 사기꾼이라는 것.
놀이가 인간의 존재 양식이 되고 놀이하는 창의성이 인정투쟁의 핵심이 될수록 진리나 의미 따위의 성스러움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반면 차별 의식이 높아질수록 위트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조롱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은 높아진다. 이 둘이 충돌할 때 극우는 ‘성역’에서 떨어져나오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확장한다. 이대로 가면 진보/좌파는 사실 자신들도 그 놀이를 즐기고 실천하면서 ‘카니발’(축제)에 반대하는 사기꾼 집단밖에 안 된다. 혐오가 극우의 놀이가 되었다는 비판을 넘어 진보/좌파의 새로운 ‘카니발’은 가능한가?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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