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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아니라 이태원 ‘참사’라 적는 이유

등록 2022-11-08 11:30 수정 2022-12-22 01:50
1437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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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일들과 막을 수 있는 일들/ 두 손에 나누어 쥔 유리구슬/ 어느 쪽이 조금 더 많은지/ 슬픔의 시험문제는 하느님만 맞히실까?”(진은영, ‘봄에 죽은 아이’ 중에서)

이태원 참사가 있던 그날 밤 이후, 눈물이 났다가 화가 났다가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런 밤이면 진은영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펼쳤다.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시를 묶은 2부(‘한 아이에게’)를 곱씹다보면, 마음도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든다. 나름의 애도다.

이번 표지이야기도 애도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정부가 선포한 국가애도기간의 그 ‘애도’와는 다르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11월3일 기준)이 골목에서 압사당하는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일’과 ‘막을 수 있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었을까.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무책임하고 무능력했던 국가에 있다. 13만 명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해 미리 안전계획을 세우고 대비했더라면, 지하철이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했더라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봉쇄만 했더라면, 도로에 차량 통제만 했더라면, 경찰이 골목 입구에 서서 일방통행을 통제하기만 했더라면, 저녁 6시34분 첫 112 신고 전화를 걸어 ‘압사’를 경고한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적극적으로 대처만 했더라면, 그 뒤에도 밤 10시 이전에 보인 여러 전조를 경찰과 용산구청 등 수뇌부가 무심히 지나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겨레21>은 ‘사고’가 아니라 이태원 ‘참사’라고 적는다.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만, 참사는 명확한 책임 주체가 있는 사건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건에서는,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또한 이태원에서 압사한 이들은 ‘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로 부른다. 단순히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애도해야 할 때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참사가 아니라 사고이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 주장하는 국가에 묻는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 156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누구인가. 왜인가. 참사의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밝혀내야만 한다. <한겨레21>은 앞으로도 계속 진실을 찾아나가겠다. 그것이 진정한 애도다.

고통, 슬픔에 대한 공감이나 애도의 방식도, “공부가 필요하다”(신형철의 같은 책). 이 정부는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참사 이후에는 무도함까지 보여줬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말이오)?”(윤석열 대통령)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한덕수 국무총리) 외신들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관료들”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이번호 표지에는 차마 아무 말도 적지 못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슬프고, 참담한 마음을 담아, 앞에서 소개한 시의 마지막 글귀를 적어본다. 그날 밤, 그곳에 서서 숨진 이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나도 그런 노래를 부르련다/ 비좁은 장소에 너무 오래 서 있던 한 사람을 위해/ 코끼리의 커다란 귀같이 제법 넓은 노래를/ 봄날에 죽은 착한 아이, 너를 위해”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37호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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