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024년 2월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자유통일당 중앙당사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이 일으킨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에는 두 가지 흐름이 등장했다. 먼저 나온 건 ‘남태령 대첩’과 ‘키세스 시위대’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들이 중심이 된 연대와 연결의 정치다. 노동자와 농민, 장애인과 여성들이 윤석열을 비롯한 기성 정치에 저항하는 현장을 매개로 연대하는 모습은 계엄군에 짓밟힐 뻔했던 민주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 되레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곧 백래시(반동)가 들이닥쳤다.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서 우리는 그동안 온라인에 머물며 이주노동자와 중국(인), 여성과 성소수자 등에 대해 혐오 표현을 쏟아내던 극우 세력이 급기야 현실 세계로 튀어나와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직접 폭력을 행사한 이들은 젊은 남성이 주류였지만, 폭력을 이끈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등 익숙한 극우 세력에서 비롯했다.(물론 이들이 현실 정치에 등장하는 데는 내란 이후 급속도로 극우화한 국민의힘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리고, 전광훈이 2018년께부터 지켜온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태극기 부대’로 불렸던 중장년과 노인들이 알뜰폰 가입이나 선교카드, 쇼핑몰 등 각종 수익 사업으로 이뤄진 ‘전광훈 피라미드’(표지이야기)를 매개로 세를 형성해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극우 세력의 준동은 전광훈과 신혜식 등의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주도하는 인정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일베나 디시인사이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무를 뿐 한 번도 현실 세계에서 세력화해본 적이 없는 젊은 남성들에게 오프라인에 모여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과 퀘스트(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이를 잘 수행해내면 이들을 적극 칭찬하는 방식으로 보상했다. 아울러 현실 세계에서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된 채 살아온 중장년 및 노인들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가 정권을 잡아도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판함으로써 정치적 존재감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자신들도 이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되레 이들로부터 각종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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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내란 이후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유튜브 검색창(이제는 포털이 아니다)에 ‘계엄’을 검색했을 때, 이 세계의 모호함을 손쉽게 설명해주는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 콘텐츠가 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극우의 보편화에 힘을 실었다. 사실관계 검증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극우 유튜버들은 하루에 서너 개씩 영상을 생산하며 유튜브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극우 세력의 보편화가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윤석열이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더는 내란을 옹호할 필요성이 없어졌을 때 극우 세력의 결집은 주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망보다 중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극우 이데올로그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진보 정치다. 진보 정치가 시민들의 고통에 무감한 채 노동 시간을 늘리고 가진 자들을 위한 세금 줄이기에 몰두하다가 정작 공론장에서는 근엄한 척 시민들을 가르치고 계몽하려고 하는 순간(이야기 사회학), 극우 세력의 보편화는 단지 일시적 현상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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