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150명 가까이 숨진 그날 밤 10시15분, 소방관 권영준(49)씨도 현장 출동 지시를 받았다. 권씨가 근무하는 중부소방서 신당119센터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 참사 현장에서 불과 3㎞ 남짓 떨어져 있다. 여느 때처럼 급히 차에 올라타 이동하는데, 무전기 너머로 떨리는 여성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상자가 너무 많다, 뒤쪽으로 와달라.”
도착 지점 1㎞를 남겨놓고 차량이 정체돼 꼼짝도 하지 않아 사이렌을 켜고 역주행해야 했다. 그래도 현장 접근이 안 되자 권씨는 차에서 내려 동료들과 들것·자동심장충격기만 꺼내들고 뛰었다.
“(도착하니 포개진) 위에서부터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어요. 이미 열다섯 분 정도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었고. 사상자가 너무 많으니까 우리도 흩어지게 됐어요. 주변 시민들한테 도와달라고 외치고….”
심정지 추정 환자가 끝없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반인이 심폐소생술 하던 분을 우리가 교대해서 심폐소생술 하다가, 또 다른 환자분이 나오면 지금 하던 분은 맡겨놓고 또 하고. 또 나오니까 또 주변 시민한테 부탁한 뒤 또 하고. 혼자 누워 있는 분이 있으면 그분한테 달려가야 하잖아요. 얼굴을 보면서 주변에 도와달라고 얘기하면, 네다섯 명 중에 한 분은 도와줬어요. 그래도 (심정지된 분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됐어요.”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한 큰길 쪽으로 환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구조 인력도 장비도 부족해, 시민들과 함께 환자의 늘어진 팔다리를 잡고 옮겨야 했다. 사고 현장에서 70~80m 떨어진 대로변에 환자를 눕히고 나면, 심폐소생술을 부탁한 뒤 또다시 다른 환자를 향해 뛰었다. 현장 도착 뒤 2시간30분이 흘렀지만 몸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미 30분 이상 지난 환자는 사실 가망이 없었던 거잖아요. 그래도 20명을 심폐소생술 하면 한두 명은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경력 20년 이상 된 ‘베테랑 소방관’인 그도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현장은 처음이다. 평소에도 아이들의 죽음을 보면 3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번엔 충격이 몇 달은 갈 거 같아요. 젊은 애들 보면 생각날 거고, 행사장이나 지하철 이런 곳들은 꺼려지겠죠.”
권씨는 자신보다 4개월차 소방관인 후배들, 떨리는 목소리의 동료를 걱정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대원들은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아요. 공개적으로 상담 이런 거 신청 안 하고 마음속에 묻어두다가 조금씩 쌓이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당부했다. “그런데 우리도 마음 아프지만, 희생자들이 있잖아요. 우리 대원들은 (걱정에서) 좀 미뤄두셔도 될 거 같아요.”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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