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참사 발생 이후로도 한동안 ‘국가’는 없었다

왜 사전에 대비하지 않았나, 왜 출동한 경찰은 적극적이지 못했나,
왜 치안종합상황실은 대응하지 않았나, 의문만 더해가는 10월29일 기억의 복원
등록 2022-11-04 17:08 수정 2022-12-07 06:59



*'왜 왜 왜, 의문만 더해가는 10월29일 기억의 복원'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818.html

밤 10시30분 이후

참사는 밤 10시께 일어났다. 인파에 떠밀려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고, 경사진 골목 위쪽에 서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넘어졌다. 10시15분 최초로 119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고 소방차고 다 보내달라. 압사당하게 생겼다.”

하지만 이후로도 한동안 ‘국가’는 없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차도 건너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조아무개씨는 “사고 발생 직후에도 경찰은 (여전히) 2명뿐이었다”며 직접 찍은 휴대전화 영상을 보여줬다. 10시에서 10시30분 사이에 찍힌 이 영상에서는 구급차가 도착한 이후에도 경찰 두 명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참사 골목에서 30m 떨어진 음식점 가게 사장 이준호(31)씨는 “그날 경찰이 100여 명 있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소방서 구급대원들이 처음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19~29분. 참사 현장에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구조 인원조차 부족했다. 이날 10시15분께 출동 지시를 받고 현장에 나갔던 소방관 권영준 대원은 “구급차가 현장에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들것을 들고 뛰어가보니, 위에서부터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이미 열다섯 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10시43분,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그때부터 각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주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와 응급조치를 했다.

참사 현장 인근 술집 직원 이광형(22)씨는 <한겨레>에 “밤 11시에서 11시10분 사이에 가게 앞에 나와보니 10여 명이 쓰러져 있고 (사람들이)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으나, 정작 재난 상황을 지휘해야 할 책임자들에게 차례로 보고가 올라가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이 9시30분에서 10시 사이에 보고받고 현장에 도착한 것도 10시17~20분 무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시1분께 국정상황실장에게 최초 보고를 받았다. 이태원에는 11시17분께에야 용산경찰서 관내에 대기 중인 기동대가 투입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1시20분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보낸 문자메시지로 참사 사실을 인지했다. 11시34분께 이임재 서장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하는 전화를 걸었고, 김 청장은 2분 뒤 상황을 알게 됐다. 류미진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은 11시39분 상황실 팀장에게 관련 보고를 받고 상황실로 복귀했다.

10년 가까이 간호사로 일하다가 녹사평역 인근에서 가게를 열 준비를 하던 이가영(31·가명)씨가 달려간 11시30분께 이미 참사 현장은 ‘지옥’ 자체였다. 그가 도착했을 땐 심정지 상태인 많은 희생자가 길에 누워 있었다. 그도 심폐소생술에 손을 보탰지만, 이미 숨을 거둔 이가 대부분이었다.

11시50분, 소방당국은 대응 3단계로 격상하고 총동원령을 발령했다. 이때까지도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현장에 없었다. 윤 경찰청장은 자정이 넘은 10월30일 0시14분께 경찰청 상황1담당관에게 전화로 첫 보고를 받았고, 김 서울경찰청장은 0시25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참사 사흘 전 10월26일

참사 직후의 대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10월26일, 이태원 상인모임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사무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이태원역,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 4개 기관·단체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니 각종 문제를 사전 점검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구청에선 자원순환과 직원들이, 경찰에선 112상황실장과 형사과장, 여성청소년과장, 정보과장 등이 참석했다. 구청의 재난안전과나 혼잡경비(군중 질서유지) 담당인 경비과장은 아예 관여하지 않았다. 회의에서 이들은 마약 단속이나 불법 옥외영업, 쓰레기 배출 등을 논의했다. 안전대책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용산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날 경찰은 원래 회의에 참석할 예정도 아니었다. 경찰이 구청에 ‘안전요원 배치해라’ 이런 얘기를 할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상인들은 (오히려) 경찰에 ‘단속하지 말아달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참사가 일어난 뒤 경찰이나 구청은 핼러윈데이는 주최자가 별도로 없는, 공식 행사나 축제가 아니기에 원래도 안전관리를 해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20년엔 달랐다. 그때는 용산구청장(지자체), 용산경찰서장(경찰), 이태원 119안전센터장(소방), 이태원역장(교통),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상인) 등 40명이 참석해 안전사고 대응과 코로나19 방역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경찰청은 최근 5년간 핼러윈데이 전후 주말 이태원에 투입한 경찰 수는 37~268명이라고 밝혔다. 2020년과 2021년에 평소보다 경찰 배치 인원이 많았던 것은 코로나19 방역 업무가 추가됐기 때문이다(그림 참조). 따라서 2022년 투입한 경찰 137명도 예년보다 적지 않은 규모이며 “운집에 따른 압사 사고에 대비한 경력 배치는 이전 핼러윈 때도 없었다”(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것이다. 몰려드는 인파가 예년 수준(2017~2021년 평균 9만4천 명)이라면, 애초에 추가 인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날 이태원에는 13만 명이 모여들었다.

경찰 책임자 몇몇을 방패 삼을 것인가

참사 이전에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추가 경력 배치를 고려하지 않았던 용산구청,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경찰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다. <한겨레21>이 취재한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정보계나 서울청 112종합상활실에서 미리 혼잡경비 여부를 판단해줬어야 한다. 그날 여러 집회가 열려 서울청과 용산서가 거기에 집중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중 운집 행사의 압사 사고 우려가 사전 대책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은 (경찰) 지휘부의 판단이 안이했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강도 높은 내부감찰과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11월2일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했다. “지휘 관리를 소홀히 했으며 보고도 지연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11월3일에는 참사 당일 당직자이던 류미진 총경을 대기발령 조치하며 “상황관리 총괄을 태만히 해서 상황 인지 및 보고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서울소방재난본부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하지만 경찰 책임자 몇몇을 방패 삼아, 수뇌부의 지휘 실패를 무마하려 한다는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용산구와 서울시, 행안부와 대통령실의 사전 대책 마련, 사후 대처가 적절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11월1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 재난·산업재해 참사 피해자단체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11월3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애도는 피해자를 존중해 함께하는 것이고, 참사의 원인을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며 “참사의 책임은 위험에 대한 상황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안전관리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 무능하게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고, 참사가 발생한 뒤에는 무도하게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156명의 희생자들이 묻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