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5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예정된 벨기에 브뤼셀에서 평화단체 회원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5년 3월13일로 3년17일째를 맞았다. 공포와 분노, 상실과 슬픔의 나날이 1112일 동안 이어졌다. 3월11일 우크라이나와 미국 협상 대표단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만나 30일간 전투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는 마침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는 1991년 8월24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소련)에서 독립했다. 냉전은 끝났고, 곧 소련도 해체됐다.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출발부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옛 소련(이하 러시아)이 남겨놓은 ‘세계 3위’ 수준의 핵무기가 문제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강한 압박 속에 우크라이나는 체제 안전보장과 핵무기 맞교환을 선택했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방식’의 비핵화다.
1994년 12월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전신이자 냉전시절 긴장완화의 촉매제 구실을 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를 일방으로 하고, 러시아·영국·미국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에 따른 안전보장 양해각서’(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러·영·미 3국은 같은 내용의 양해각서를 역시 러시아의 핵무기를 승계한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도 같은 날 각각 체결했다. 내용을 살펴보자.
NPT 체제는 핵무기 영구보유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이 비보유국에 “핵무기 사용 또는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소극적 안전보장’(NSA)에 기반한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핵심도 마찬가지다. 각서 제1항은 “러·영·미 3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기존 국경을 존중한다”고 규정한다. 제2항은 “3국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나 정치적 독립을 위협하거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유엔헌장에 따른 자위권 행사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제3항은 “3국은 우크라이나를 굴복시켜 자국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어떤 형식의 경제적 강압도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이어 제4항은 “우크라이나가 무력 침공을 당하거나 핵무기 사용 위협을 당하면, 3국은 즉각 안보리를 통해 지원한다”고 밝혀 적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연이 복잡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2025년 3월6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앞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오늘 반세기 지속해온 독일에 대한 군사적 점령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994년 8월31일치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당시 동독 지역엔 러시아군 33만8천 명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1800명이 철수하면서 러시아군 병력의 독일 주둔이 끝났다는 얘기다. 통독에 앞서 러시아엔 두 가지 우려가 있었다. 첫째, 통일 뒤 독일이 다시 군사대국으로 성장해 자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나치 독일의 침공을 가까스로 막아낸 경험 탓이다. 둘째, 냉전 시절 자국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맞상대였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옛 동유럽 국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나토와 국경을 맞대고 대치하는 상황이 우려된 게다.
첫 번째 우려는 1990년 9월12일 동·서독과 프랑스·러시아·영국·미국이 체결한 ‘독일 문제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2+4 조약)을 통해 해소됐다. 조약에 따라 통일 독일의 군병력은 37만 명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우려와 관련해선 ‘2+4 조약’에 명쾌한 해법이 담기지 않았다. 다만 외국군과 핵무기는 동독 지역에 배치할 수 없게 했다. 나토 확장과 관련해선 미국이 러시아 쪽에 별도의 구두약속을 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이론도 분분하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 딸린 ‘국가안보 아카이브’가 정보공개 신청을 통해 2017년 12월 내놓은 비밀문서를 보면, 1990년 2월9일 제임스 베이커 당시 국무장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을 만나 “나토는 단 1인치도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란 말을 세 차례나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동진을 계속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나토는 1999년 체코·헝가리·폴란드를 시작으로 △2004년 에스토니아 등 발틱3국 포함 6개국 △2009년 알바니아·크로아티아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 북마케도니아 등 14개 동유럽 국가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엔 핀란드(2023년)와 스웨덴(2024년)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2025년 3월6일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최전선 마을에서 우크라이나 병사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곁을 지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반면 미국 쪽이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 붕괴 25돌에 즈음한 2014년 10월16일 러시아 다국어매체 러시아비욘드와 한 인터뷰에서 “통독 협상 당시 나토 확장 문제는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베이커 장관의 ‘1인치’ 발언도 외국군의 동독 지역 주둔 문제와 관련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나토 확장을 두고 “불필요한 도발”이라고 짚긴 했지만, 이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순 없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말고도 러시아는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안전보장과 관련한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휩쓴 민주화 시위(유로마이단 운동)로 무너졌다.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병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급조된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했다. 이어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 장악했다. 전운이 짙어지고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중재 속에 같은 해 9월5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휴전과 항구적 평화 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OSCE 3자 간 이른바 ‘민스크 의정서’(민스크1)가 체결됐다. 뼈대는 △전투행위 즉각 중단 △전방 배치 중화기 후방 이전 △국경 일대 안전지대 설정 △우크라이나 법에 따른 돈바스 지역 지방선거 실시 △돈바스 지역 포괄적 자치권 부여를 위한 개헌 △포로 교환 등이었다. 의정서 이행은 OSCE가 상시 감독하는 내용도 담겼다. 러시아는 합의를 파기했다.
2015년 1월 러시아는 다시 대규모 정규군 병력을 돈바스 일대로 파병했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긴장이 증폭되자, 다시 프랑스와 독일이 나섰다. 그해 2월12일 벨라루스 민스크에 다시 모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민스크1 이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은 ‘민스크2’를 체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월17일 결의 2202호를 채택해 민스크2에 국제법적 효력을 부여했다. 민스크2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지나치게 복잡한 ‘민스크 체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규정을 간소화하고 이행 순서를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당시 독일 외교장관(현 대통령)은 러시아군 철수 이전에 OSCE의 감시 아래 돈바스에서 지방선거를 치러 특별자치권을 부여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국경 통제권을 회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쪽에선 “총구 앞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결국 2016년 10월1일 ‘슈타인마이어 공식’에 합의했다.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2019년 4월 ‘전쟁 종결’을 내건 젊은 정치 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압도적 득표율(73%)로 당선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협상이 재개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부 비판에도 ‘슈타인마이어 공식’을 뼈대로 한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휴전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러시아군과 러시아 지원을 등에 업은 반군 철수와 돈바스 지방선거 실시 문제를 두고 양쪽은 끝까지 공통의 해법에 도달하지 못했다. 합의했던 양쪽 전쟁포로 교환도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파국이 닥쳐왔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그간의 모든 약속은 잿더미가 됐다.

2025년 2월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난하며 몰아세우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 발발 3주년을 앞두고 이번엔 미국이 나섰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이끈 양국 대표단이 2025년 2월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만나 휴전 협상을 시작했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그간 중재 노력을 기울여온 유럽은 배제됐다. 튀르키예를 방문 중이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는 방식은 우크라이나 없이 결정해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2·28 백악관 말싸움’의 전조였다.
전쟁 3주년을 맞은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비판과 즉각적인 교전 중단, 러시아군 철수를 촉구하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쪽이 마련한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 상정됐다. 미국은 ‘전쟁’을 ‘갈등’으로 표현한 ‘중립적’인 자체 결의안을 제출했다. 총회에서 유럽 쪽이 마련한 결의안은 찬성 93, 기권 63, 반대 18표로 통과됐다. 미국은 러시아·북한·이스라엘 등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은 자체 결의안 표결엔 기권했다. 같은 날 워싱턴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휴전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뜻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건 위험하다. 그게 받아들여지면 러시아는 한발 더 나아갈 게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유럽은 자체 해법 마련에 분주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월 중순 제안한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3만 명 파병’안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 쪽은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무장능력을 갖춘 평화유지군 창설 △유사시 대비 중화기 등 무기 비축 △유사시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지원 △휴전 합의 위반시 러시아 직접 타격 등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대공방어망과 정보자산이 필수다. 하지만 미국이 완강하게 평화유지군 참여를 거부하면서, 내용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회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높여, ‘미국 없는 유럽’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유럽 차원의 군비경쟁에 불이 붙을 기세다.
그사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정보자산 공유를 중단했다. 3월7일 러시아는 탄도미사일 67발과 무인기 194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관련 시설을 비롯해 군사용·민간용 시설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이날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미사일 34발과 무인기 약 100대를 요격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평균 80%를 넘었던 요격률이 미국의 정보공유 중단 이후 50% 남짓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미국의 정보가 끊기면 탄도미사일 방어가 어려워지고, 최전선의 움직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2025년 3월5일 영국 런던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지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우크라이나 국기 빛깔의 꽃으로 만든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EPA 연합뉴스
휴전 협상이 시작되면서 러시아군은 2024년 8월부터 자국 영토인 쿠르스크를 장악한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애초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진격 목적은 두 가지였다. 고전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병력을 분산하고, 휴전 협상 때 점령지 맞교환을 위한 ‘카드’를 쥐기 위해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쿠르스크로 잘 훈련된 러시아군 무인기 부대가 배치됐고, 북한군도 새로 유입되고 있다”며 “포격과 융단폭격 속에 러시아군이 전진하면서 현지에 배치된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사적 해법은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 국토를 정복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짧은 기간 안에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2014년 이전의 영토를 수복할 수 없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3월11일 제다 협상장 도착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30년여 전 핵무기와 체제 안전보장을 맞바꿨던 우크라이나는 이제 영토마저 내놔야 하는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3월10일 자료를 내어 “2020~2024년 세계 1위 무기 수입국은 우크라이나로, 이전 5년(2015~2019년)에 견줘 100배 이상 수입량이 늘었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유럽 나토 회원국의 무기 수입도 이전 5년에 견줘 2배 이상 늘었다. 수입한 무기 가운데 미국산 비율은 5년 전 52%에서 64%로 12%포인트 높아졌다. SIPRI는 “호전적인 러시아와 대서양 동맹을 흔드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나토 회원국은 안보에 대한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노력이 되레 미국산 무기 의존도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전쟁으로 누가 이득을 취하는지 분명해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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