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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왜, 의문만 더해가는 10월29일 기억의 복원

왜 사전에 대비하지 않았나, 왜 출동한 경찰은 적극적이지 못했나,
왜 치안종합상황실은 대응하지 않았나, 의문만 더해가는 10월29일 기억의 복원
등록 2022-11-04 17:06 수정 2022-12-07 06:59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긴급신고 112입니다.”(경찰관)

“여기 이태원 메인 스트리트 들어가는 길인데요. 해밀톤호텔 그 골목에 이마트24 있잖아요.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거든요.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아요.”(신고자)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 되고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날 거 같다는 거죠?”(경찰관)

“네, 지금 아무도 통제 안 해요. 이거 경찰이 좀 서서 통제해서 인구를 좀 뺀 다음에, 그다음에 안으로 들어오게 해줘야죠.”(신고자)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출동해서 확인해볼게요.”(경찰관)

2022년 10월29일 저녁 6시34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기 무려 3시간40분 전이었다. 112에 최초로 신고한 박아무개(52)씨는 “압사”를 걱정했다. 그만큼 그날 이태원의 상황은 위태롭고, 위험해 보였다. 그는 “소름 끼쳐요”라고까지 말했다.

두 번째 신고부터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다치고”(8시9분) “쓰러지고”(8시33분) “압사당할 위기에”(9시7분) 있었다.(11월1일 경찰청이 공개한 ‘112 신고 접수 녹취록’) 밤 10시11분까지 ‘위험’을 경고하는 총 11건의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4건에 대해서만 현장 출동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이 왜 군중 밀집을 막지 못했는지, 대체 무슨 조처를 했는지, 112 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치안종합상황실은 왜 추가 경력 배치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는지는 11월3일 현재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156명이 숨지고, 중상자 33명을 포함해 187명이 다친(11월3일 기준) 그날 밤, 이태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겨레21>은 경찰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대통령실 등 정부 발표 내용, 각 의원실이 정부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를 참고하고 이태원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한 상인과 시민 등 16명, 경찰과 소방당국,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 10명을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참사가 발생한 그날 밤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했다.(20~21쪽 참조) 참사의 원인을 찾으려면 누가, 왜, 언제부터 무능했거나 무도했거나 무심했는지를 꼼꼼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참사 이전에도, 참사가 일어난 그 순간에도, 참사 이후 구조·수습 과정에도 ‘국가’는 없었다. 최악의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묻는다. 이것이 국가인가.

2022년 10월29일 참사가 일어나기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 골목길. 독자 제공 / 연합뉴스

2022년 10월29일 참사가 일어나기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 골목길. 독자 제공 / 연합뉴스

10월29일 저녁 6~7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나와서 해밀톤호텔을 오른쪽으로 끼고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6도가량 경사진 이 골목은 이태원의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입구이자,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출구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좁은 골목에 들어차 옴짝달싹 못했다. 이 골목을 겨우 빠져나온 뒤 112에 최초로 신고한 박씨는 <한겨레>에 “(오후 6시께) 그때부터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세계음식거리로 통하는 T자형) 삼거리 골목을 메우고 있어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핼러윈데이(10월31일)를 앞둔 토요일, 이태원에는 13만 명이 모여들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맞은, 첫 핼러윈이었다. 이미 금요일(10월28일)부터 상황이 심상찮았다. 이날 이태원역에서 하차한 승객 수는 3만5949명으로, 2021년 ‘핼러윈의 금요일’(1만5766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참사가 일어난 그날의 하차객도 8만1573명으로, 2021년 토요일보다 2.6배 많았다. 특히 이날 저녁 7~8시 1만1873명이 하차했다.(더불어민주당 정성호·이성만 의원실 자료 종합)

7시께,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한 여성이 “앞으로 전달해주세요. 여기 뒤에 꽉 막혀 있으니까 못 올라온다고”라고 말하며 손짓과 함께 아래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했다.(틱톡에 올라온 1분30초짜리 영상 참조) 이미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이 꽉 뭉쳐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저녁 8~9시

골목 상황이 본격적으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30년째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54)씨는 그날 저녁 8시30분께 인파로 가득 찬 참사 골목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이씨는 “경찰 두 명이 서서 인도의 사람들이 차도로 못 나가게만 했다”며 “경찰이 안 보였고 (그나마 있던) 경찰도 (인파를) 보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즈음 112에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다치고”(8시9분), “쓰러지고 있다, 큰일 날 것 같다”(8시33분)는 신고가 접수됐다.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골목 앞에 서 있던 교통경찰 두 명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용산경찰서는 이태원에 경찰 137명을 배치했다. 대부분은 마약 등을 단속하는 사복 경찰이었고, 정복을 입고 질서유지 등에 투입된 경찰은 58명뿐이었다. 기동대는 아예 배치되지 않았다. 서울 시내엔 질서유지나 안전관리를 하는 기동대 81개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시위나 용산 대통령실 주변을 지키는 데 동원됐다. 일부 집회는 삼각지역 근처에서 밤 9시20분께 끝났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이때까지 집회 경비를 지휘하고 있었다.

9시를 전후해 14분 동안 총 4건의 112 신고가 집중적으로 접수됐다. “막 압사당할 것 같다, 아수라장이다, 장난전화 아니다”(8시53분),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 여기 와서 통제하셔야 할 거 같다”(9시), “이러다가 진짜 사고 날 것 같다, 어떻게든 해달라, 진짜 사람 죽을 것 같다”(9시2분),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 좀 해달라”(9시7분) 신고자들은 절박하게 호소했다.

이 시각 112 신고를 접수하는 서울경찰청의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류미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총경)은 근무 매뉴얼과 달리 상황실이 아닌 본인의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었다. 9시16분께 한 여성 유튜버가 이태원파출소를 찾아가, 해밀톤호텔 옆 골목의 압사 위험을 알리기도 했다. 이 유튜버는 “우리도 지금 들어가기 어렵다”는 경찰관의 답을 들었다고 했다. 참사 1시간 전이었다.

*'참사 발생 이후로도 한동안 ‘국가’는 없었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819.html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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