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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고통에 나의 고통이 연결돼 있다

등록 2025-01-03 22:48 수정 2025-01-07 17:10
2024년 12월3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2024년 12월3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엄마의 투병 기간은 1년6개월이었다. 췌장에 이상 징후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암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2023년 봄 나는 의사와 독대한 자리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보받았고, 그 말을 엄마에게 전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매일 같은 생각이 떠올라 일상을 멈췄고, 때론 울었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엄마를 영원히 볼 수 없다.’ 죽음은 영원이라는 초월적 진리와 만나 절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상실이다. 그리고 2023년 9월3일 자정께, 끝내 그 비가역적 상실과 마주했다. 그때의 고통은 다시 1년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영원하다.

2024년 12월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명의 유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은 나의 고통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들은 내가 2년10개월 동안 겪었던 고통을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압축해서 겪고 있다. 고통과 마주할 그 어떤 준비 기간도 없이, 시계를 12월29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상실을, 희생자가 참사 직전 느꼈을 극한의 공포를 떠올리며, 몸부림치듯 받아안고 있다. 그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일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유가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공감하고, 곁에 서서 유가족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으며, 유가족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연결돼 있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애도다.

이번호 한겨레21은 참사 첫날부터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과 함께 상주한 손고운 기자의 글을 표지이야기로 전한다. (공항 곳곳에서 비명 섞인 통곡…또 한 번 무너지고 있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664.html)

손 기자는 유가족의 고통을 사연으로 취재해 전하는 일보다는, 유가족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들이 당면한 어려움은 무엇인지, 정부와 제주항공의 참사 대처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살피는 일에 집중했다. 오세진·이재호 기자는 참사 원인에 대해 섣불리 의혹을 제기하기보다 원인 파악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항공기 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규명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데 중점을 뒀다. (왜 복행 선언 2분만에 비상 착륙했을까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647.html) 그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스텔라데이지호 참사(2017년), 이태원 참사(2022년), 오송 참사(2023년), 아리셀 참사(2024년) 등 셀 수 없이 이어진 사회적 참사를 겪은 시민들이 거듭 제기해온 윤리적 보도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했다.

참사의 고통에 나의 고통이 연결돼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애도의 윤리라면, 국가 혹은 사회적 폭력과 마주한 농민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의 싸움이 그들만의 싸움으로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시민의 윤리다. 무도한 권력자가 일으킨 12·3 내란사태 이후 이런 시민의 윤리를 가장 전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남태령 대첩’을 기점으로 약자와 소수자가 고립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응원봉을 든 젊은 여성들이다. 반면 망상적 세계에 빠져 내란을 일으켜놓고도 지지자들을 방패 삼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윤석열과 그가 임명한 관료, 그를 배출한 정당은 정확히 이 젊은 여성들의 반대쪽에 서서 인간 이하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이 가장 먼저 축출하려는 대상도 바로 이 인간 이하의 존재들일 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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