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에서 윤석열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린 가운데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극심한 불경기 탓에 하는 일이 힘들다는 얘기를 한참 하던 친구가 대뜸 물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집을 사면 세금을 안 낸다는데 사실이야?” 질문은 하나 더 나왔다. “화교는 특별전형이 있어서 의대랑 법대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던데?”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도 미심쩍은 듯 물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중국인이라는 건 사실이야?”
어디에서 그런 걸 봤냐고 물었더니 입을 모아 “유튜브에서 그러더라”라고 했다. 특별한 정치 성향이 없는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로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 혐오가 정치 성향을 막론한 보편적 시민들에게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이다. 극우 유튜브가 중국(인) 혐오를 매개 삼아 조회 수 장사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단면을 합치면 중국(인) 혐오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쉽게 스며들 수 있는 약한 고리였다는 점도 함께 알 수 있다.
나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하나씩 억측 혹은 오류임을 설명했다. 가구별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양도세와 취득세 중과를 외국인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건 맞지만, 외국인도 당연히 세금을 낸다. 국내에 주택을 보유한 외국인은 극소수이고, 그나마 주택을 보유한 중국인은 대부분 산업공단 인근에 산다. 투기 지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화교특별전형’은 존재하지 않고, 헌법연구관에 외국인 채용은 아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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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구심이 모두 풀린 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짜뉴스라고 해도 사람은 처음 입수한 정보를 쉽게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음모론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할 비난의 대상을 간단하게 선정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윤석열이 부정선거의 배후로 지목한, ‘특혜를 받는’ 중국(인)이 불경기를 더욱 극심하게 만든 내란의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비난의 대상이 정해지면 사람을 차별하면서도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 혐오의 편리한 원인이 된다.
다시 팩트체크부터 시작했다. 한겨레21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5곳(3432명 참가)에 들어가 지난 두 달 동안 있었던 이들의 대화 속 문장 4730개를 분석했다. 채팅방 5곳에선 △부정선거에 중국이 개입했다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특정인이 중국인이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특혜를 받는다 △중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한다 등과 같은 주장이 유통되고 있었다. 확인 결과 이 주장들은 모두 가짜뉴스였다.
하지만 이 주장들이 단순히 가짜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중국(인) 혐오가 쉽게 사라질 것 같진 않다. 한국 사회에 오래 깔려 있던 혐중 정서에다 중국을 적대하는 미국의 정치 전략이 끼친 영향이 더해진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의 급속한 성장이 한국인들에게 중국(인)을 “강력하고도 위협적인 외부의 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파 정치인들과 유튜버들은 이런 상황을 치밀하게 이용하고 있다.(관련기사 <한겨레21> 1554호 표지이야기)
문제는 이렇게 확산하는 혐중 정서가 이주민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성소수자, 해고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혐오를 용납하면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까닭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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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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