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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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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 정국

등록 2024-11-23 20:09 수정 2024-11-26 17:25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4년 11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4년 11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교착은 어떤 상태가 굳어서 조금의 변동이나 진전 없이 멈춰 있는 형국이다. 2024년 11월 한국 정치가 정확히 교착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이미 붕괴했다. 대학 곳곳에서 대통령 하야나 임기 단축 개헌을 요구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스스로 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만 던져놓고 더 이상 뭘 어쩌라는 거냐는 태도를 보이는 대통령 아닌가.

여의도 정치는 그런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멈추게 할 그 어떤 조처도 하지 못한 채 마비돼 있다. 윤 대통령과 맞설 생각이 없는 한동훈 대표와 여당은 탄핵은 물론이거니와 김건희 여사를 수사할 특검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야당 역시 의석을 모두 합쳐도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이 난망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는 여러 가지를 말한다. 우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붕괴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인 검찰의 선택적 기소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장모 최은순씨의 사문서위조 혐의와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사실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고발됐다. 검찰은 이 대표와 달리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선택적 기소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이 대표가 처한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검찰 수사보다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나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과 같은 언론의 고발 보도들에서 비롯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2024년 8월 당대표 경선에서 역사상 최고 기록인 85.4% 득표를 몰아주며 ‘이재명 당대표 일극체제’를 만들었다. 당 지도부 역시 친이재명계 일색이어서 이렇다 할 견제 세력을 가진 당내 경쟁자도 없다. 이번 1심 선고와 더불어 다섯 개 이상의 재판을 앞둔 이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 위기가 고스란히 민주당 전체의 위기가 된 까닭이다.

문제는 민주당 전체의 위기가 민주당 내부 위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양극체제를 만들어놓은 한국의 정치 제도에서 민주당의 위기는 곧 야권 전체의 위기로 확장된다. 민주당을 견제할 이렇다 할 경쟁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의 색깔과 크게 다르지 않고, 진보정당은 힘이 없거나 몰락했다. 그러니 야권 전체도 교착상태다.

이 교착상태를 풀고 통치권력의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여의도 밖에서 분출하는 시민의 정치밖에 없다. 2016년 12월 광장 곳곳에서 청년학생 대회와 시민 대행진, 청소년시국대회, 빈민·장애인대회, 전국노동자대회, 여성대회, 농민대회, 평화대회 등을 연 232만 명의 시민들이 정당과 정파를 막론하고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런 정치가 분출하려면 조건이 하나 충족돼야 한다. 광장 곳곳을 채웠던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시민들만큼이나 다양한 정치 세력이 새로운 정치 체제를 함께 그리며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축제가 끝난 뒤 환멸과 교착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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