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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로윈 축제, 홍대·부산에선? “주최, 언제든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태원 참사에 별안간 ‘주최’ 논쟁, 홍대·부산·대구 등 핼러윈 축제 안전관리계획 살펴보니
등록 2022-11-08 11:06 수정 2022-12-07 06:55
2020년 10월31일 핼러윈데이를 맞은 서울 홍대거리 모습. 연합뉴스

2020년 10월31일 핼러윈데이를 맞은 서울 홍대거리 모습.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데이 행사처럼) 주최자가 없는 경우엔 선제적인 안전관리가 쉽지 않다.”(대통령실)

“핼러윈데이는 주최 측이 없기 때문에 ‘축제’가 아닌 ‘현상’이다.”(박희영 용산구청장)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주최자 없는 축제’라는 점을 지목했다. 참사 2주 전 열렸던 이태원지구촌축제는 사단법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했지만, 참사가 일어난 핼러윈데이 때는 주최자가 없어 정부의 조직적 대응이 안 됐다는 것이다. 주최자 유무에 따라 안전관리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다면, 주최자 없는 축제 참가자의 안전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한겨레21>은 2022년 10월28~31일 핼러윈 행사가 열렸던 서울 마포구와 부산, 대구의 안전관리계획을 입수해 이태원과 무엇이 달랐는지 안전관리 실태를 따져봤다.

핼러윈 방문객 이태원으로 몰리면서 주최 나서

사람을 한데 불러모으는 행사는 안전사고와 범죄 등 다양한 위험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주로 행사 주최자가 이런 위험을 사전 검토해 예방하는 책임을 졌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민형사상 책임이 주최 쪽에 있어서다. 행정안전부가 매년 배포하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도 행사 주최자가 안전관리계획 수립을 도맡고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등이 이를 심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태원과 달리 서울 마포구와 부산시, 대구시에서는 모두 주최자가 있는 핼러윈 행사가 열렸다.

10월29일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걷고싶은거리’에서 열린 ‘핼러윈 in 홍대’는 인근 상인들로 구성된 ‘홍대걷고싶은거리상인협동조합’이 주최를 맡았다. 주최 쪽에 따르면 이날 중앙무대 행사는 400여 명이 관람했고 총 7천여 명이 행사가 열린 거리를 오갔다. 주최 쪽은 사전에 안전관리계획을 세웠다. 계획에는 안전사고에 대비한 응급차량 통행로와 긴급상황 발생시 연락 가능한 경찰·소방·지자체 비상연락망 등이 포함됐다. 주최 쪽이 고용한 진행요원 30여 명이 현장에 배치됐다.

다만 마포구청 쪽은 행사장 안전을 사실상 주최자 쪽에 맡겨뒀다. 안전관리계획을 제출받아 적정성을 따지거나 행사 방문객 수, 현장에 배치된 경찰 규모 등도 파악하지 않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순간 최대 관람객’이 1천 명 이상인 지역축제의 주최자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지자체 심의를 받아야 한다. 안전계획에 미비점이 없는지를 지자체가 검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이번 핼러윈 행사의 경우 유동인구를 제외한 행사장 단순 참석 인원만을 ‘순간 최대 관람객’으로 계산해 안전관리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행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홍대 상인들이 핼러윈 축제의 주최자로 나선 배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대 핼러윈 축제는 2021년까지만 해도 이태원과 다르지 않은 ‘주최자 없는 축제’였다. 그러나 이태원이 입소문을 타면서 홍대 쪽으로 오는 손님이 점차 줄자 2022년부터 상인들이 주최자를 자처해 무대행사를 기획했다. 이와 달리 핼러윈 때마다 인파가 몰린 이태원 쪽은 주최자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 이태원 상인들로 구성된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참사 2주 전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엔 주최자로 나서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그러나 이어진 핼러윈데이 때는 따로 행사나 축제를 기획하지 않았다. 안전관리를 총괄해야 하는 축제 주최자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새로 나타나거나 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위험 인지하게 된 퍼레이드 차량 취소해

10월29일 부산시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핼러윈 퍼레이드 페스티벌’은 부산영어방송재단이 주최했다. 핼러윈 분장을 한 참가자들이 광안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차 없는 거리를 행진했고, 총 5만 명이 방문했다.

행사에 앞서 민간 주최자인 재단이 안전관리계획을 세워 수영구청에 제출했고 지자체는 누락된 안전 조처를 안내했다. 예를 들어 보행자가 행진 대열 사이로 갑자기 뛰어들거나 주거지에서 차량이 나오지 않도록 안내한라는 등의 안전 조처를 구청이 주최 쪽에 안내했다. 안전요원이 모자라면 의용소방대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알렸다. 그 결과 행사 당일에 진행요원 250명과 교통경찰 40명, 의용소방대 113명 등이 배치됐다. 이들은 행진 대열의 종착점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해수욕장 쪽으로 인파를 실시간 분산했다. 원래 도입할 예정이던 퍼레이드 차량은 주최 쪽이 다른 지역의 축제를 사전 답사하면서 위험성을 확인한 덕분에 도입을 취소했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광안리에서 이전에 비슷한 축제가 자주 열렸기 때문에 어떤 조처가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10월28일 대구시 남구 안지랑곱창골목에서 열린 ‘대구 할로윈 축제’는 아예 지자체가 주최자가 된 경우다. 대구광역시 남구청 소속 공무원과 문화·예술·공연기획 전문가 등이 꾸린 협의체인 ‘남구문화행사추진위원회’(위원회)가 주최해 이 행사의 안전 관리 등 각종 실무를 챙겼다. 핼러윈 축제가 지역 상권 홍보 효과가 있다고 봐서 지자체 예산을 투입했다. 96명의 경찰과 안전요원이 골목마다 배치됐다.

특히 위원회는 방문객 인파에 따라 차량통제 방법 등도 외부 연구용역을 맡겨 준비했다. 유동인구를 ‘순간 최대 관람객’에 포함하지 않은 홍대와 달리, 핼러윈 축제 거리를 오간 모든 사람을 참가자로 계산해 사전에 안전관리계획을 구청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날 행사에는 총 5천여 명이 방문했다.

“국민 안전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할 책무”(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는 주최자 유무와 무관하게 국가와 지자체가 진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축제 주최자에게 대부분의 안전관리 책임이 집중돼 있다. 이태원 참사처럼 주최자로 나서는 이가 없거나 민간 주최자의 안전관리가 충분치 않으면 안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문현철 숭실대 교수(재난안전관리학과)는 “주최자가 있고 없고의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가 국민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지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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