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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음모론에 빠졌나

등록 2025-02-21 22:21 수정 2025-02-27 06:52
내란죄 피고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2024년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선관위 해킹 관련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KTV 갈무리

내란죄 피고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2024년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선관위 해킹 관련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KTV 갈무리


2024년 12월3일 밤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는 장면을 봤을 때, 나는 우리 사회의 공기가 순간 쨍하고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만큼 12·3 내란은 누구에게나 의외였고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의외의 충격과 마주할 때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에는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른 국정 최고책임자에 대한 분노도 있을 것이고, 계엄 이후 한 치 앞도 예측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공포도 있을 것이며, 해석할 수 없는 계엄의 이유 앞에 던지는 필사적 물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가운데 필사적 물음을 던지는 시민 일부가 계엄의 이유를 해석하려다 음모론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자 전상진에 따르면, 음모론은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음모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빈틈없이 착착 맞아 들어갔을 때만 성립 가능한 ‘과잉 합리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상계엄에 따른 내란이라는, 2020년대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사태를 이해하려는 데 필사적인 사람일수록 음모론은 매력적인 해석의 기제가 된다.

윤석열과 우파 유튜버들은 시민들의 이런 절실함을 이용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2024년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 점검에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다. 이후 우파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이 음모론이 급속히 확산했다. 이렇게 유통된 음모론은 필사적 물음을 던지던 사람들에게 내란사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돕는 열쇳말이 됐다.

잘못된 이해라는 표현을 쓴 건 한겨레21 취재 결과, 윤석열이 주장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중요한 배경을 생략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음모론은 2023년 7월부터 두 달 동안 이뤄진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국정원은 당시 선관위로부터 서버 접속 계정·권한·주소·취약점 정보를 모두 받은 뒤에 ‘모의 해킹’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해킹에 실패했고, 이후 선관위에 보안시스템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해킹에 성공했다. 선관위의 보안시스템을 억지로 취약한 쪽으로 몰아간 셈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 ‘부정선거 음모론, 유통의 왕 윤석열’)

한국 사회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2012년 대선 이후 방송인 김어준씨가 제기한 ‘케이(K)값’ 의혹에서 비롯했다. 이 음모론 역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패배 이유를 알기 위한 지지자들의 필사적 물음을 이용한 것이었다. 윤석열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여기에다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을 동원해 음모론을 조장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질이 나쁘다. 사회 여론을 이끄는 방송인이 음모론을 유포해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 것도 문제지만,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가기관을 동원해 음모론을 유통하는 건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까지 붕괴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유통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허물을 가리고 내란으로 드러난 제6공화국 체제의 허점을 보완하는 작업까지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있다. 한겨레21은 이런 무기력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낱낱이 검증하고 그 뿌리를 끝까지 추적해봤다. 이번호는 필사적 물음에 대한 한겨레21의 응답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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