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우정 검찰총장이 2024년 9월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야수가 풀려났다. 그렇다, 그는 권력을 먹고 사는 야수다. 자기 욕심을 채울 수만 있다면 체제가 망가지는 것은 감수해도 된다고 믿는 그는 야수다. 야수를 풀어준 법원과 그것을 용인한 검찰은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 갑갑하고 황당하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해야 한다는 수사팀의 주장을 대검 지휘부가 사실상 묵살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즉시항고를 해 또 다른 위헌 소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구속집행정지에 대한 즉시항고를 위헌으로 판단했으므로,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 역시 위헌 결정이 날 게 분명해 항고를 포기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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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 총장의 설명은 2015년 검찰의 입장과 배치된다. 2012년 헌재가 구속집행정지에 대한 즉시항고를 위헌으로 판단한 이후 2015년 국회는 보완입법 논의를 진행하면서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도 근거 조항을 없애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과 법무부는 구속집행정지와 구속취소는 다르다는 이유를 들며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는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형사소송법상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 조항은 살아남았다. 즉, 2012년 헌재 결정을 제도에 반영하는 논의는 이미 2015년에 완료된 것이다. 이 맥락대로면 위헌 소지가 있어 즉시항고를 포기했다는 심우정 총장의 설명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에게 특혜를 줬다는 평가를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심우정 총장이 “적법 절차와 인권 보장은 제가 취임 이후 계속 강조해온 검찰의 기본적 사명”이라며 유신헌법을 운운한 것은 가증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보석, 구속집행정지,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는 유신헌법 시대 비상입법기구를 통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는 ‘독재 대 인권’의 대립구도에서 인권의 편에 선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늦게 이들을 민주투사 대접이라도 해줘야 할까? ‘봐주기’를 ‘인권 보장’으로 프레임 전환하려는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이런 식의 시도는 이미 익숙하다. 윤석열의 경우 후보 시절부터 그래왔다. ‘고발 사주’를 ‘제보 사주’로 프레임 전환하려 한 것을 보라. 오늘날의 사태와 관련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야수와 다름없는 윤석열이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로 포장한 일이다. 지금 와서 보면, 이는 윤석열이 실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윤석열은 단지 상대를 권위주의-전체주의 세력으로 몰고 그 대립 효과로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한 것뿐이다. 그러나 상대를 반대하기 위해 우리 편을 총동원하는 게 곧 민주주의인 현실에서 이러한 프레임 전략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이 결과 윤석열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전략은 지금도 작동한다. 풀려난 윤석열은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건 아스팔트 위의 지지자들 덕분”이라고 했고, 구치소에서 생활에 대해 “대통령이 가도 배울 게 많은 곳”이라며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다고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과거 구속 기소당했던 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는 전언(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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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당선시킨 ‘윤석열 연합’ 중 지금도 탄핵 반대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주체를 꼽자면 아스팔트 우파와 극우 유튜브 시청층, 극우 개신교 세력, 국민의힘 내 친윤 주류 등을 꼽을 수 있다. 윤석열의 발언은 정확히 이들을 호출하고 있다.
이들 중 아스팔트 우파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기획과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키웠고, 극우 개신교 세력은 이의 간접적 수혜를 입으면서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대면 예배 강행과 차별금지법 반대 캠페인으로 영향력을 크게 늘렸다. 모두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반대하는 게 주목적인 정치적 기획안에서 성장한 세력이다.
보수정치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대안적 서사를 제공한 집단이다. ‘퍼주기식 대북정책과 사대주의적 대중 외교로 일관하는 사회주의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를 막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기독교를 권위주의적으로 탄압하고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86세대의 내로남불 비판이 유행되고, 젊은 세대가 보수정치에 상대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갖게 되자 앞선 대안적 서사에는 ‘실제 진보적 가치를 믿지도 않는 민주당이 표를 의식해 여성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며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논리가 덧붙여졌다. 일부 지식인은 이게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고 그 빈자리를 권위주의-전체주의적 이론으로 메꾼 86세대 운동권들의 고유한 특징인 양 해설하며 ‘윤석열 연합’의 형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중국-북한-전체주의-민주당 및 문재인 정권-진보-여성주의-차별금지법’이라는, ‘윤석열 연합’이 반대해야 할 개념의 사슬은 이렇게 형성됐다. ‘윤석열 연합’은 단지 이 사슬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할 수 있게 됐고, 아직도 같은 행동 양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이는 말하자면 전도된 1987년 구도의 ‘기만적 자유주의’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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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이를 정당화하는데도, 국민의힘은 이런 윤석열과 확실히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지 여론이 확인되는 것은, 극우 유튜브와 극우 개신교계가 주도하는 대형 집회 덕분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 주요 인사들이 각종 발언과 행보를 통해 앞선 구도의 유지·강화를 계속 시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 국면이 되면 국민의힘도 윤석열과 선을 긋는 등 ‘태세 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수위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설명한 반대의 개념 사슬과 이를 반대하는 동맹으로서의 ‘윤석열 연합’이라는 기본 구도를 국민의힘과 그에 소속된 대권 주자들이 공유하는 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은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심우정 총장이 유신헌법을 거론하며 ‘인권 검찰’로 자신들을 포장한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앞서 언급한 전형적인 ‘기만적 자유주의’의 맥락이다. 물론 구속취소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다면 좀더 적극적인 배려를 한다는 의미에서 즉시항고를 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이 그런 처지라고 보긴 어렵다. 당장 귀가해 김치찌개 저녁 식사 자리를 또 다른 수사 대상인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함께한 것은 증거 인멸 논의 우려를 키운다. 밥 먹으며 농담이나 했을 리 있겠는가?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려 한 권력자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과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그래서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어렵게 만든 자들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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