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한 달이 흘렀다. 희생자들의 장례식과 발인을 마치고 유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도 모자란 시간이다. 유족들의 시간은 2022년 10월29일, 그날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박가영(19)씨의 어머니 최선미(49)씨는 아직도 가영씨를 서울에서 충남 홍성으로 데려오던 구급차 안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이상은(25)씨의 어머니 강선이(52)씨는 딸의 무덤 앞에 가면 “다시 돌아와달라”고만 되뇐다고 한다.
참사 발생 한 달 가까이 지난 11월22일에야 처음으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 30여 명이 언론 카메라 앞에 섰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이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품에 안고 나왔다.
심리 전문가들은 유가족들의 마음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데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초반 한 달에서 석 달 사이가 후유증이 악화되는 걸 예방할 수 있는 굉장히 핵심적인 시기거든요. 사회적 지지나 인정이 부족하거나 2차 가해가 계속 이어진다면 후유증이 장기화할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됩니다.”(최현정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11월22일 기자회견 직후에 관련 기사 수백 건이 쏟아졌다. 기사마다 적게는 수십 건, 많게는 수천 건의 댓글이 달렸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댓글도 많았다. <연합뉴스>의 한 기사([이태원 참사] “사망 원인 모르고 어떻게 보내나”… 유족 첫 기자회견)엔 댓글 5800여 개가 달렸는데,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 대부분이 유가족 요구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를 향한 비난은 참사 직후부터 이어졌다. ‘서양 축제’인 핼러윈에 이태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잘못이라거나, 왜 국가가 나서서 진상규명을 하고 배상까지 해야 하느냐는 등의 비난이 주를 이룬다.
최진영 한국심리학회 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은 “(비난하는 이들은) 마치 이태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위험이 발생할 것을 알고 간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고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며 “‘나는 저런 곳에 갈 일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이태원 방문자를 자신과 구별하려는 심리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누구든 비난은 할 수 있고 혼자 생각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지만 모든 사람이 보는 곳(온라인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등)에서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금 유가족을 향한 사회적 태도는 “슬픔에 잠기고 힘든 사람에 대한 배려의 문제”여야 한다고 최 회장은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 더구나 사회적 참사로 인한 급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무분별한 온라인 비난 등으로 유가족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아들 이지한씨를 잃은 조미은씨는 한국방송(KBS)과의 인터뷰에서 참사 이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무언인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악성 댓글이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왜 놀러 갔냐, 부모는 왜 잡지 못했냐.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태원에 그럼 놀러 가지 공부하러 갑니까.” <한겨레21>과 인터뷰한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도 “우리 아이가 희생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만든 가해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데 ‘쟤네(희생자) 때문에 이 나라가 우울해’ ‘쟤네 때문에 세금이 많이 나가’ 이런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참사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재난 상황에서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혐오표현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분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가중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이러한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여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상규명에 앞서 정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먼저 언급한 점도 2차 가해를 가중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정부는 참사 직후 유가족 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장례비 지원 등 구체적인 액수를 공개했다. 이런 정부 발표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는 반드시 비판 댓글이 달렸다. 최현정 교수는 “배상 금액이 나오면 비난하는 환경이 가중된다”며 “정부나 책임자들이 배상부터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진상을 규명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밝히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첫 순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유가족들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현정 교수는 “세월호 참사 2년 뒤 진행한 연구에서 유가족분들이 굉장히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었다”며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국가에서 어떤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자 처벌 등 ‘정의 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세월호 유가족) 후유증의 장기화와도 관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진행한 ‘세월호 재난 1년 후 유가족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정신건강 서비스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가족 중 14.7%만이 심리적 어려움에 도움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유가족들은 심리적 개입을 받지 않는 이유로 ‘고인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때문에’(27.7%),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25.2%) 등을 꼽았다. 또 진상규명 등의 문제를 선결 과제로 인식해 치료 시기를 미루는 경우(24.8%)도 많았다.
유가족이나 생존자 주변의 노력도 필요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유가족들이나 생존자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에요. 그렇게 이해하고 주변에서도 다시 삶에 복귀할 수 있도록 여유를 제공하는 게 중요해요.”(최현정 교수)
다만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회복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최진영 회장은 ‘이제는 좀 회복할 때 된 거 아니냐’라는 말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 심리적 자원과 사회적 자본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어요. 반대로 심리적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심리적 후유증이)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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