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23일 김병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발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스피지수가 일정한 가격 구간 안에서만 오르내리는 ‘박스피’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다. 기업 실적이 나쁘거나, 글로벌 환경이 유독 우리에게만 가혹해서는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 결정적 문제는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 부동산이 부동의 자산 증식 수단이었고, 증시는 늘 부차적이었다. 증시 동력은 반도체와 수출 경기 의존이 과했고, 정부의 정책 목표에서도 증시 부양은 독립적 목표가 아닌 부동산과 물가 관리의 하위 범주였다. 개인투자자가 늘어도 시장을 주도하기 어려웠고, 소유주 중심 지배구조인 대기업은 이익을 내도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인색했다. 이 모든 구조적 제약이 한국 증시의 상단을 압박하는 구조적 걸림돌이었다.
2025년 6월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코스피는 즉각 반응했다. 6월5일 코스피는 2.66% 급등하며 새 정부 출범 효과를 시장에 각인했다. 탄핵된 정부의 ‘기저 효과’가 반사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상승 랠리는 2주간 이어졌다. 6월20일에는 저항 없이 3000선을 탈환했다. 3년6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6일 만에 오랜 ‘박스피’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재빨리 거기에 올라탔다. 정책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스스로 ‘개미투자자’의 정체성을 밝혔던 이재명 대통령은 증시를 경기의 부산물이 아닌 ‘정책 대상’으로 보는 인식을 드러냈다. 부동산 투자를 규제해 자산 흐름의 방향을 바꾸고, 상법을 개정해 기업의 이익을 자본시장으로 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개인투자자를 증시 부양의 핵심 주체로 삼겠다는 정책 기조의 변화에 ‘동학 개미’의 투자 심리가 반응했다. 박스피를 고착시켜온 조건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상단이 열리는 시장’의 시대가 개막했다. 가격 상단(저항선)이 뚫려서 위로 더 갈 수 있는 상황이 열렸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있었던 ‘바이 코리아’ 열풍 이후 수십 년 만에 개인 주도 시장이 다시 열리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2025년 8월25일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상법개정안 통과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5년 7월3일 상법 개정안(1차)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장이 또 한 번 반응했다. 한국 상법은 오랫동안 이사회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규정해왔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판단에 대한 사법적 견제 장치가 약했고, 이는 소액주주의 이익 침해와 낮은 배당의 이유가 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었다.
하지만 국회가 기업의 저항을 뚫고 상법을 개정하자,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익 강화에 대한 기대는 ‘동학 개미’를 넘어 외국인과 기관의 시선을 돌려놓았다. 7월15일 코스피는 3215를 돌파하며 3년10개월 만에 3200선을 넘어섰다. 주가는 하루 만에 4% 급등하며 삼성전자는 8만원대를,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30만원대를 넘었다. 현재까지도 주식시장을 쌍끌이하고 있는 반도체 대형주 랠리의 시작점이 이때였다. 7월30일에는 역사상 최고치인 3254를 기록했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코스피 화양연화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7월 한 달 사이 고점은 계속 경신됐다. 글로벌 자본이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한 덕이 컸다. 외신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25년 하반기 이후 한국을 ‘지정학적 리스크가 과도하게 반영된 시장’이자 ‘제조업 역량을 실제로 보유한 몇 안 되는 중간재 강국’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할수록, 완결형 제조 역량과 안정적 제도 환경을 동시에 갖춘 국가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며 한국을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역시 한국 증시에 대해 “정책 신뢰 회복이 촉매였지만, 구조적 매력은 산업 포트폴리오에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를 축으로 조선·자동차·2차전지로 이어지는 제조업 전반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고, 외국자본이 한국 증시를 단기 변동성의 대상이 아닌 장기 자산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쌍끌이 랠리의 맥락이다.
2025년 9월7일 발표한 ‘9·7 부동산 대책’은 결과적으로 ‘돈의 이동’을 가속화했다. 이재명 정부는 거듭 ‘자산시장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흔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주택자 규제와 대출 제한 강화로 부동산 수익률을 구조적으로 낮추겠다는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유동자금은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정부·여당의 강공은 계속됐다. 9월9일에는 2차 상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너무 고점까지 왔다’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9월12일 주가는 3400선에 근접했다. ‘너무 과열된다’는 평가와 ‘아직도 저평가’라는 심리가 본격적으로 엇박자를 보인 시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장기 쌍끌이 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억제 정책은 결과적으로 주식·ETF(상장지수펀드)·펀드로의 자금 이동을 가속하는 통로가 됐다. 개인투자자의 금융자산 내 주식 비중이 빠르게 늘었고,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도 국내 주식과 ETF 비중을 확대했다. 국민연금은 2026년 자금 운용 계획을 변경해 국내 주식 비중 목표를 14.4%에서 14.9%로 상향 조정했다. 약 7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이 시장에 유입된 셈이다. 이 시기를 지나며 2025년 4분기에는 개인투자자들의 ETF 순매수가 월마다 조 단위로 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5년 9월 말, 삼성전자는 ‘9만 전자’, SK하이닉스는 ‘45만 닉스’에 안착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반도체 초격차 시대가 시장의 상수가 됐다. 10월은 여러 의미에서 한국 증시에 상징적인 시기였다. 10월2일 한가위 연휴 직전 마지막 거래일, 코스피는 사상 최초로 3500선을 돌파했다. 연휴 뒤 첫 거래일인 10월10일에는 외국인이 1조원대의 순매수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올려 3600선에 안착시켰다. 10월17일 IMF가 한국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은 상승 흐름에 거시적 명분을 보탰다. 10월27일에는 코스피 4000선이 정복됐다. 정치적 반대자들이 ‘허언’으로 비판했던 ‘주가 5000 시대’ 공약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지 모르겠다는 기대가 팽배해졌다.
‘4만 전자’라고 조롱받던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10만 전자’ 시대를 열었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53만5천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10월30일에 있었던, 이른바 ‘깐부 회동’은 화제성을 넘어 증시 전체에 ‘그린라이트’로 작용했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모빌리티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날 하루, 기관은 약 8천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고, 10월 마지막 날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4100선을 돌파했다. ‘깐부 회동’은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위치를 대중에게 각인하며, 시장 심리와 지수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이 됐다.
11월 초 SK하이닉스가 62만원을 돌파하며 ‘100만 닉스’ 논의가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증시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부양됐다며 증시 조정 국면을 경고했다. 글로벌 상황도 좋지 않았다. 미국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관세 이슈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불확실성으로 상존한다. 그럼에도 코스피는 4000선 아래로 밀리지 않았다. 11월 초 잠시 4221을 기록한 뒤, 밀리고 오르는 흐름을 반복했지만 결국 4000선이 방어되며 단단해진 하방 경직성이 확인됐다.
여기에 AI·자율주행 관련 종목이 편입되며 추가로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그리고 마침내 2026년 1월, 한국 증시는 숫자를 넘어선 질문 앞에 섰다. 반도체 투톱의 동반 상승 속에 1월22일 코스피는 장중 5000을 돌파했다. 닷새 뒤인 1월27일에는 종가 기준 5084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5000선 안착이 이뤄졌다. SK하이닉스는 연간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하며 역대 최대 배당을 발표했고, 삼성전자 역시 16조원대 영업이익을 확정했다.
2월6일 현재, 코스피는 5089.14를 기록 중이다. 코스피 5000은 단순한 고점이 아니다. 개인이 주도하는 시장의 부상, 정부 정책의 전환,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한 자금 흐름이 국제 질서 재편 국면에서 제조업과 반도체 기업의 가치 재평가라는 호재와 맞물리며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다. 운 좋게도 정부의 정책 변화와 글로벌 자산 재평가가 시차 없이 맞물리며 자금 유입 통로가 열린 셈이다. 다만 최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 같은 단일 이슈에도 국내 증시가 즉각 흔들리는 모습은, 코스피가 여전히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취약하거나 의존적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코스피 5000은 도착지가 아니라 시험대다. 이 지점을 구조적 상단으로 굳힐 수 있을지는 글로벌 산업 질서의 변화 속에 기업 경쟁력과 정책 신뢰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코스피 5000은 시장이 한국 경제에 보낸 신뢰의 응답이지만, 신뢰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이제 한국 증시는 예외적인 랠리를 넘어 성숙한 자본시장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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