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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인신매매 ‘설계범’

중간착취 불가피한 기술연수생·계절노동자 제도… 저임금에 기댄 산업정책의 결과는 ‘국익’ 잠식
등록 2026-02-03 08:24 수정 2026-02-04 06:39
2025년 9월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가 계절노동자 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이날 강원도 양구의 필리핀 계절노동자 90여 명의 임금체불 사태와 관련해 “인신매매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제공

2025년 9월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가 계절노동자 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이날 강원도 양구의 필리핀 계절노동자 90여 명의 임금체불 사태와 관련해 “인신매매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제공


 

한국 사회에서 인신매매, 특히 이주노동의 영역에서 인신매매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부 악덕 사업주나 브로커 때문만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법무부가 주도해 설계하고 확대해온 비자 제도 자체에 있다. 다시 말해, 인신매매는 우연한 범죄가 아니라 법무부 비자 정책이 낳은 구조적 결과다.

 

모든 위험은 개인에게 떠넘기고

 

법무부가 시행하는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 조선업 등 특정 분야에서 연수비자(D-4-6)로 입국시켜 기능인력(E-7-3)으로 전환하는 제도 등 다수의 비자 체계가 태생적으로 브로커 개입을 차단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송출국에서의 모집, 비용 부담, 정보 접근, 체류 자격 유지의 불안정성까지 모든 위험을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면서, 국가는 ‘비자 발급’이라는 가장 손쉬운 역할만 한다. 이 공백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브로커다. 국가는 빠져 있고, 노동자는 취약하며, 중간착취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 구조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고용허가제(E-9)와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고용허가제는 송출국 정부와 협약 국가가 직접 인력 선발과 송출 과정을 관리하고, 민간 브로커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제도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고용허가제 역시 사업장 변경 제한 등 심각한 한계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송출 과정의 투명성이란 측면에서는 산업연수생 제도에 견줘 명확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1990년대 법무부 지침으로 도입된 이후 2007년 폐지될 때까지 줄곧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법무부는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알면서도 같은 방식의 비자를 계속 만들어내고 확장해왔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처음부터 대규모 정책이 아니었다.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시작된 뒤, 별다른 사회적 검증이나 관리 체계 확충 없이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히 확대됐다. 현재 계절노동자 유입 규모는 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를 넘어설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자 규모가 커지는 동안, 법무부는 관리 실패와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체계적으로 회피해왔다. 비자는 찍어내듯 발급하면서, 그 비자가 어떤 현장을 만들고 어떤 착취를 낳는지에 대해서는 “현장 문제” “지방정부 문제” “개별 일탈”로 떠넘긴다.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가 도입·확대한 조선업 등 기능인력 비자(E-7-3) 역시 인신매매와 노동착취 위험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선업 등 특정 분야의 인력난을 이유로 도입·확대된 E-7-3 비자는 ‘숙련 인력의 합법적 유입’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브로커 개입, 과도한 송출 비용 부담, 허위 계약, 임금 착취가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나아가 E-7-3 비자를 미끼로 연수비자(D-4-6) 단계부터 인신매매 피해를 겪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산업연수생 제도의 부활과 다르지 않다.

 

미국 ‘인신매매 개입 상품’ 수입 전면 금지

 

반인권적 이주노동 정책으로 이미 실패가 확인된 산업연수생 제도의 부활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이 제도를 유지·확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산업 경쟁력과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면죄부처럼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과 국익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 제도가 과연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잠식하는지 근본적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1월23일 울산 타운홀 미팅에서 “조선 현장의 노동강도가 상당히 셀 텐데, 최저임금을 주니까 우리(내국인) 고용은 할 수 없고, 그 사람들(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액이니까”라며 “그런 방식으로 국내 조선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볼 때, 저임금 구조에 의존해 인력난을 해소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하향 경쟁에 기반한 산업 유지 전략은 기술 고도화와 생산성 향상을 지연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청년실업의 관점에서도 이 문제는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보상 구조가 고착된 상태에서는 내국인 청년들이 해당 산업을 회피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을 이주노동자로 메우는 방식은 ‘청년 고용 확대’라는 과제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산업 인력 구조의 이중화를 심화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와 산업 경쟁력 약화를 동시에 고착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인권 이슈를 넘어 통상, 무역, 기업 책임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현대판 노예제와 노동 인신매매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단순한 범죄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조달부터 완제품 유통에 이르는 일련의 체계와 과정) 전반의 위험 요소로 인식한다.

특히 미국의 관세국경보호청은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되는 상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제도를 이미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기업이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그 상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인신매매나 강제노동이 확인되면 해당 기업은 즉각적인 수출 차단과 거래 중단이라는 실질적 제재를 받게 된다. 유럽연합 또한 기업에 공급망 전반에 대한 인권 실사 의무를 부과하는 법제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이른바 ‘공급망 실사 책임’(Supply Chain Due Diligence)의 시대에는 “하청의 문제” “현장의 일탈”이라는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농축산업·제조업·건설업 등에서 이주노동자의 인신매매가 확인될 경우, 그 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한 기업 전체가 책임의 대상이 된다. 인신매매는 이제 개별 사업장의 불법행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인권 관리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국외 언론, 한국 이주노동 실태 예의주시

 

법무부가 주도하는 비자 제도를 통해 유입된 이주노동자들이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한국의 산업과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고위험 공급망’으로 분류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수출 제한, 투자 회피,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미국 정부, 국제기구, 인권단체, 국외 언론은 한국의 노동 인신매매 실태와 정부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행 법무부의 비자 정책은 산업 경쟁력과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값싼 이주노동에 의존해 인력난을 메우는 방식은 단기적 비용 절감일 뿐, 기술 고도화와 청년 고용을 가로막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산업을 ‘고위험 공급망’으로 노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위험이 구조적으로 내재된 제도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이제 국가는 비자 발급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비자가 만들어내는 착취의 구조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인권을 희생한 산업 정책은 결국 국익을 잠식한다. 비자 정책을 이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할지에 대한 선택을 더는 미루면 안 될 것이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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