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발달장애인 성폭력 수사가 습관성 겉핥기에 그치는 이유는

연구자 실태 조사 결과의 16% 불과한 피해자 특정… 입문 수준 ‘전문수사관’ 교육·일회성 조사 한계
등록 2026-02-19 20:13 수정 2026-02-24 15:28
생활지도 등을 빌미로 여성 장애인들과 강제 성관계를 맺거나 유사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 등(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피보호자 간음 등·장애인복지법상 폭행)을 받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김아무개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2026년 2월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생활지도 등을 빌미로 여성 장애인들과 강제 성관계를 맺거나 유사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 등(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피보호자 간음 등·장애인복지법상 폭행)을 받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김아무개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2026년 2월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강화군이 우석대에 의뢰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여성 이용인 17명과 퇴소인 2명 등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명 전원(퇴소인 1명 조사 못함)이 시설장 김아무개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해진다. 이에 반해, 2025년 9월24일 압수수색으로 본격화한 수사를 통해 경찰이 성폭력 피해자로 특정한 이는 2026년 2월18일 현재까지 3명에 불과하다. 우석대와 경찰 조사 사이의 간극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장애인 성폭력 76%가 발달장애인 대상

경찰은 색동원 시설장인 김씨의 색동원 거주여성에 대한 성폭력 의혹 제보를 접수하고 2025년 5월 내사에 착수했다. 당시 경찰은 장애인 성폭력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3~4개월에 걸쳐 피해자로 추정되는 장애여성 두세 명과 신뢰관계(라포)를 형성한 뒤 그들로부터 김씨의 성폭력 가해에 대한 진술을 확보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절대다수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가 발표한 ‘성폭력피해자 지원현황 분석 보고’를 보면, 2023년 상담소가 지원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1932명 가운데 발달장애(지적·자폐 장애)인이 1472명으로 76.2%를 차지했다. 지적·자폐성 장애를 지닌 피해자가 75% 이상인 흐름은 2015년 이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의 피해를 장애 유형별로 분류하는 곳은 전성협이 유일하다. 2022년부터 여성폭력통계를 발표하는 성평등가족부나 장애인 실태조사를 하는 보건복지부는 이를 별도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사기관은 지적장애 피해자를 어떻게 수사하고 있을까. 이번 색동원 조사에서 경찰은 애초 오랜 기간 신뢰관계를 쌓고 진술을 받은 2명과 고기능 발달장애 여성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7명의 색동원 거주 여성 및 2023년 퇴소 여성에 대해서는 내사 착수 이후 7개월이 넘는 기간에 별다른 진술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석 국무총리가 2026년 1월19일 페이스북에 색동원 사태를 두고 “신속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진실규명과 피해구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뒤인 1월26일부터 닷새 동안 빠르게 17명의 진술조사를 마쳤다. 1명당 짧게는 20분, 길게는 180분 전후로 해바라기센터(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24시간 통합지원센터) 전담 경찰관이 색동원에 거주했던 피해 지적장애인들을 조사한 것이다.

이 ‘신속한 조사’를 통해 추가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진술한 피해자는 0명이다. 1월29일 지역의 해바라기센터에서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은영(50대·가명)씨는 시계를 정확하게 읽고 오늘 날짜를 알고, 자신이 색동원에 입소한 때와 지금 나이 등도 정확하게 말한다. 글씨도 잘 쓴다. 이은영씨를 조사한 해바라기센터 전담 경찰관은 학대 피해 의심 ‘아동’의 진술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개발돼 2010년 국내에 도입된 미국 국립아동건강발달연구소(NICHD)의 조사면담 기법을 활용해 85분 동안 질문하고 그 답변을 받았다.

지적장애인 맞춤형 수사 교육 없어

NICHD 조사면담 기법은 흔히 질문자의 질문에 따라 쉽게 유도되는 특성(피암시성) 등을 보이는 아동의 진술이 오염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자발성과 구체성을 띠도록 고안됐다. 장애인의 정신적 연령이 아동과 비교됨에 따라 학대 의심 장애인을 조사할 때도 이 기법이 사용돼왔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알리는 라포 형성 단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기’ ‘추측하지 않기’ 등 규칙 설명 단계, 규칙을 적용해 진술훈련을 해보는 단계, 개방형 질문으로 시작해 구체화·초점화하고 구체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개방형 질문으로 재확인하는 사건 관련 면담 단계 등으로 구성됐다.

NICHD 조사면담 기법에 따라 조사받은 이은영씨는 진술 후반부에 색동원 시설장 김씨에 대해 “자존심을 건드려요”라고 말하고 김씨에 대해 “이분 보기만 해도 아파요” “무섭게 생겨서” 등의 답변을 했지만, 왜 무섭게 느끼는지, 김씨의 사진을 왜 치우라고 말하는지와 관련해서는 끝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혹은 경찰이 구체적인 답변을 끌어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장애인 조사의 경우 ‘신속한 일회성 조사’로 진술받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 장애인을 오랫동안 조력해온 박선경 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및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 공동위원장)는 “색동원 피해 장애인은 대부분 20년 이상 시설에서 생활해온 분들이다. 자연스럽게 말해본 경험 자체가 드물고, 시설 생활로 인해 여전히 시설 내 권력자가 소리 지르는 모습이나 언제든 그 힘센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본능적 두려움이 경험적으로 각인돼 있다”며 “이분들을 대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10~15분의 라포 형성 시간이 진짜 안전감을 주고, 개방형 질문으로 ‘자,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해보세요’라고 말하면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현실에서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수사관들이 NICHD 조사면담 기법을 각 지적장애인의 특성에 맞게 전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NICHD 조사면담기법을 연구해 보급한 마이클 이(E). 램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NICHD 조사면담기법이 학대 아동 조사 등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등을 쓴 책 ‘텔 미 왓 해픈드(Tell me what happened)에서 NICHD 연구기법이 지적장애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인터뷰를 잘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잘 설계된 인터뷰’에 대해서 이미선 동양대 교수(경찰범죄심리학)는 “지적장애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단일한 프로토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한 능력을 가진 지적장애인의 개별적인 인지적·의사소통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한 뒤 답변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거나 맥락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지적장애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사관에게 전문 교육을 해야 하지만,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실시하는 장애인 수사기법 교육은 ‘아동장애인조사기법(전문수사관) 과정’ 등이 있긴 하지만 아동과 장애인 교육이 중첩돼 있고 지적장애인 맞춤형 교육은 별도로 없다. 관련 수사를 주로 해온 한 전직 경찰은 “개방형 질문 등이 두세 시간 교육받는다고 몸에 익지 않는다”며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화 교육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은영씨를 대리하는 최인해 변호사(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사무차장)는 “피조사자가 특정한 키워드를 말해도, 수사관이 그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효과적인 초점화된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충분히 진술 능력이 있음에도 1회차에 조사가 종결돼버려서 추가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언어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 필요

경찰은 1월31일까지 20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고, 2월19일 시설을 거쳐간 이용인 87명으로 조사 대상을 넓힌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 대상을 넓히는 것보다 심층 보고서에서 피해를 진술한 이들에 대한 ‘지적장애인 맞춤형 수사가 필요하다’는 게 피해자를 조력하는 변호사와 색동원 공대위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선경 상임대표는 “지적장애인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진술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다”며 “일시와 장소에만 집착해 피해 장애인이 내놓는 그 외의 모든 ‘언어’를 외면하지 말고, 장애인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는 등 현재의 수사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