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명분부터 ‘개소리’… 미 정보기관도 이란 핵무기 개발 없다고 봐

협상 타결 코앞에서 중동 전역을 불구덩이로
등록 2026-03-05 22:28 수정 2026-03-09 09:41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소도시 미나브에서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소도시 미나브에서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이다. 포탄이 날아들고 미사일이 퍼붓기 시작하면 거짓이 난무하고 진실은 묻힌다.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공격에 나섰다. 중동 전역으로 전운이 번지고 있다. 공습과 피해 상황이 속속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세를 쏟아낸다. 진실은 점점 가려진다. 그러니 잊지 말고 물어야 한다. 이것은 정당한 전쟁인가?

트럼프가 주장한 이란의 네 가지 혐의

“조금 전 미군이 이란에서 대규모 전투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목표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해 미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28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동영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8분 남짓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침공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흡사 검사가 공소장을 읽는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혐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난 47년 동안 이란 정권은 “미국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며 미국과 미군, 수많은 나라의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유혈과 대량살상을 자행했다. 둘째, 레바논에서 예멘, 시리아와 이라크까지 이란 정권은 테러조직을 무장 훈련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셋째, 이란은 세계 최악의 테러 지원국이다. 최근에는 거리시위에 나선 자국민 수만 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넷째, 이란은 핵무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2025년 6월 이란의 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한 뒤 협상을 추진했지만,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었다. 사악한 독재정권이 미국과 미국의 핵심 안보이익을 더 이상 위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미사일 제조시설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이란 해군도 전멸시킬 것이다. 이란이 절대 핵무장을 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구급요원들이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구급요원들이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와 경찰에게 말한다. 무기를 내려놓고, 완벽한 면책특권을 누려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확실한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이란 국민에게 말한다. 자유의 시간이 여러분 앞에 있다. 일단 몸을 피하라.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밖은 매우 위험하다. 도처에서 폭탄이 떨어질 것이다. 미군이 군사작전을 멈추면 정부를 장악하라. (…) 여러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겠다. 미국은 압도적인 힘과 막강한 군사력으로 여러분을 지원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여러분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때다. 풍요롭고 찬란한 미래가 여러분 앞에 있다. 이제 행동에 나설 때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란 핵합의’ 일방 폐기 뒤 ‘백기투항’ 요구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2025년 6월24일 ‘이란과 핵무기 생산’이란 제목의 짤막한 보고서를 내놨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12일 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날이다. 미국 정보당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평가를 근거로 보고서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다. 보고서는 “이란은 2003년 말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고 이후 재개하지 않았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 또는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썼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체 평가도 의회조사국 보고서 내용과 일치한다.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은 2025년 3월26일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는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국가안보국(NSA) 등 연방정부에 딸린 18개 정보기관의 분석을 종합한 것이다. 당시 개버드 국장은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003년 자신이 중단시킨 핵무기 개발 계획 재개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란 뜻이다.

이란은 미국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1), 유럽연합(EU) 등과 오랜 협상을 거쳐 2015년 7월 이른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 핵합의)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이란이 보유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추가 제재에 나섰다.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주민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경찰서 곁을 지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주민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경찰서 곁을 지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합의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미국은 △IAEA의 이란 핵프로그램 전면 사찰 및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폐기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중수로 가동 중단 △탄도미사일 개발·시험 중단 △억류 중인 미국인과 미국 우방국 국적자 전원 석방 △헤즈볼라·하마스·탈레반·알카에다·예멘반군 등 중동 테러조직 지원 중단 △시리아 파병군 전면 철수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내 미국 우방국 위협 중단 등 모두 12가지에 이르는 재협상 조건을 제시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을 요구한 셈이다.

협상 중재한 오만 “전례 없이 중요한 합의 임박”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에서도 이란과 새 협상을 모색했다. 2025년 4월 들어 이란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주장한 ‘12일 전쟁’ 이후에도 미국과 이란은 협상을 지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가 오만을 중재자 삼아 이란 쪽과 ‘간접 협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란 침공 불과 하루 전인 2026년 2월27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협상 진척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란 쪽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관망하던 태도에서 돌변한 게다.

“지금까지 협상 과정을 평가했을 때, 평화협정 체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확신한다.” 같은 날 미국-이란 협상을 중재해온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교장관은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발언을 내놨다. 그는 “협상의 궁극적 목표가 이란이 영구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전엔 달성하지 못한 중요한 합의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알부사이디 장관의 발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내세운 이란 침공의 명분을 근본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란이 무기급 핵물질을 절대 보유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성과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체결한 합의(JCPOA)에는 포함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이란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농축 (무기급) 우라늄도 최대한 농도를 낮춰 핵발전용 연료로 쓰기로 했다. 또 IAEA의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사찰도 받기로 했다. 협상이 최종 타결되면 미국 쪽도 사찰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협상 타결 뒤 90일 안에 사찰단의 방문이 가능해질 것이다. 현재 이란에서 가동되는 유일한 핵물질 생산시설은 테헤란의 연구용 원자로다. 이 원자로에선 의료 목적의 방사성 동위원소만 생산한다. IAEA도 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물질 생산을 중단했다고 확인했다. ”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앞에서 자원활동에 나선 이들이 기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6년 3월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앞에서 자원활동에 나선 이들이 기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무기급 핵물질이 없으면 핵무기 개발도 불가능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제4조는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의 연구생산 및 사용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조약 당사국의 불가양의 권리”를 보장한다. 알부사이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한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직접 설명하고 싶다”며 “3월2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IAEA도 참여하는)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일주일 안에 미국과 이란 간 추가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외교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침공 직후 “예방적 차원의 선제타격”이라고 말했다. 대체 무엇을 ‘예방’하려 했을까? 알부사이디 장관은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는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사무총장 “외교적 기회 날아가” 개탄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됐다. 2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은 영국이다. 3월 의장국은 미국이다. 의장국이 바뀌면, 회의 소집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급히 모인 각국 대사들 앞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란)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가 날아갔다”고 개탄했다. 이어 구테흐스 총장은 “군사작전으로 인해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동과 세계가 벼랑 끝에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은 즉각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왈츠 주유엔 미국대사는 “지금은 도덕적 명확성이 요구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란 정권이 결코,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란은 후티(예멘), 헤즈볼라(레바논), 하마스(팔레스타인) 등 대리 세력을 지원해 오랜 세월 중동 전역에서 유혈과 혼란을 불러왔다. 책임 있는 국가라면 지속적인 침략과 폭력을 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대사는 ‘홀로코스트’를 거론하며 “더 늦기 전에 ‘실존적 위협’을 막기 위해 이란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무기와 테러 지원, 그리고 임박한 ‘실존적 위협’을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게다. 유엔 헌장 제2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국제연합은 모든 회원국의 주권평등 원칙에 기초한다.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국제 분쟁을 국제 평화와 안보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한다.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국제관계에서 어떠한 국가의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거나 국제연합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그 밖의 어떠한 방식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도 삼간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을 “유엔 헌장 위반이자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이어 “이란은 망설임 없이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한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콜롬비아와 파키스탄 쪽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푸충 주유엔 중국대사는 “사태 전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유엔 헌장 원칙 존중을 촉구하고 국제관계에서 무력 사용 및 위협을 규탄한다. 중국은 이란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주권, 안보, 영토 보전이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프랑스·덴마크·그리스 등 유럽 쪽 5개 이사국은 이란의 핵활동과 2026년 1월 시위대 탄압을 비판했지만, 미국·이스라엘 침공의 불법성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 안보리는 결의도, 성명도 내놓지 못했다.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소도시 미나브에서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소도시 미나브에서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0명 가까운 이란 초등학생, 학교에서 폭사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에 인구 7만여 명 규모의 소도시 미나브가 있다. 2026년 2월28일은 토요일이었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금요일이 ‘일요일’, 토요일이 ‘월요일’이다. 주말을 보낸 아이들이 등교했다. 미나브의 샤자레타이예베 여학생 초등학교도 아이들로 북적였다. 학교 인근엔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갑자기 멀쩡한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졌다. 학교 2층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3월1일까지 현장에서 주검 175구가 수습됐다. 희생자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다. 여성 교육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2014년 사상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들이 있었다. 오늘 그들의 삶이 참혹하게 막을 내렸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썼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 인권운동가 단체가 펴내는 ‘이란인권활동가통신’(HRANA)은 “침공 5일째를 맞은 3월4일 오후까지 확인된 이란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183명을 포함해 모두 1114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그러니 이 전쟁은 정당한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