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신문의 인생 상담 코너를 맡은 어느 기자의 이야기다. 기자의 필명은 미스 론리하트. 독자는 미스 론리하트를 삶에 대해 좀 아는 중년 여성일 거라 짐작하지만 사실 그는 남자다. 젊은 미혼 남자.
“당신에게 고민이 있나요? 조언이 필요하세요? 미스 론리하트에게 편지를 보내면 당신을 도와드릴 겁니다.”
매주 그의 앞으로 많은 편지가 오지만 사연은 엇비슷하다. 살아가는 일의 고통을 고백하고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내용들.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미스 론리하트의 조언이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그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런 끔찍한 운명을 감당해야 하나요?”</font></font>솔직히 미스 론리하트야말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형편이다. 오늘은 몸의 병으로, 내일은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날마다 읽는 그에게 세상은 이미 죽었다. 5월이 지나도록 공원 잔디밭에 새순이 돋아나지 않은 것만 봐도 그러했다. 그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공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바짝 마른 땅속에 잠든 씨앗들이 싹이라도 틔우지 않겠냐, 세상에 봄이라도 오지 않겠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는 중이다.
모든 이야기가 기구하고 불우했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인 어린 여동생이 성폭행을 당했지만, 엄마가 알까봐 무서워하는 어느 어린 오빠는 이렇게 물었다. “이런 일이 당신의 가정에 벌어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지만 미스 론리하트는 가정을 꾸려본 적 없다. 침대 하나,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가 전부인 방, 기다란 그림자가 가득 들어찬 방에서 혼자 살았다. 구두는 반드시 침대 밑에 벗어두어야 하고, 연필은 테이블 위에, 넥타이는 보관함에 두어야만 했다. 가로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어야 하고, 보도블록은 일정한 크기로 이어져야만 했다. 반드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 규칙을 그는 ‘질서’라고 불렀다. 질서를 유지하며 산다고 여기지 않고, 질서를 위해 싸우며 살고 있다 믿었다. 이런 일이 당신의 가정에 벌어졌다면? 미스 론리하트는 그저 상상하는 일에도 지친 상태다.
‘모든 게 지겨운 여자’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지난 12년 동안 아이를 7명이나 낳았다. 의사는 다시 출산을 할 경우 죽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남편은 의사의 말을 무시했다. 결국 8번째 임신을 한 여자는 이러다간 아이를 낳기 전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너무 무섭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미스 론리하트에게 도움을 청하며 덧붙였다. 좋은 답변을 기다리며.
편지는 곧장 미스 론리하트의 서랍 속에 처박혔다. 미스 론리하트는 타인의 결혼 생활에 관심 없다. 약혼녀에게 청혼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그때부터 줄곧 그녀를 피해왔다. 분노와 짜증이 치밀 때만 약혼녀 집을 찾아가 비아냥댔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녀가 욕하지 않아서였다. 아마 어딘가 아픈 모양이라고,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다 낫기만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약혼녀에게 미스 론리하트는 한심한 년이라고 막말을 했다. 죄책감이라곤 전혀 없이, 결혼을 계속 미루면서 모든 분노를 그녀에게 쏟아냈다. 그런 그가 ‘모든 게 지겨운 여자’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끔찍한 운명을 감당해야 하나요?” ‘절망녀’는 물었다. 그녀는 16살인데 태어날 때부터 코가 없었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 겁먹고 그녀 역시 거울을 볼 때마다 겁이 난다. 주말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지 싶다고 말한다.
미스 론리하트는 길가의 노인을 졸졸 따라가선 조롱한 적 있다. 호의를 베푸는 척 커피를 사주면서 “당신은 변태지요? 그렇죠?” 쉼없이 물어댔다. 공포에 질려 흐느껴 울기 시작한 노인의 팔을 잡아 비틀면서, 당신의 스토리를 말해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삶이 슬프고 괴로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팔을 비틀고 있다는 기분에 푹 빠친 채로.
‘절망녀’가 알지 못한 미스 론리하트의 진실은 누군가를 절망으로 밀어붙이는 일에 더 능숙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font></font>“고민이 있나요? 조언이 필요하세요?” 그 말은 신문의 발매 부수를 늘리기 위한 광고에 불과했다. 미스 론리하트는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농담에 가까웠다. 미스 론리하트의 칼럼을 자청했을 때만 해도 그에겐 꿈이 있었다. 신문외판원을 그만두고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문장만으론 칼럼니스트가 될 수 없고 심지어 발행 부수를 늘리지도 못했다.
미스 론리하트는 진실 앞에서 가짜의 언행으로 대처했다.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는 걸, 자신이 우스워진 걸 잊고 싶어서였는데 그럴수록 더 우스워졌다. 하지만 자신의 조언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보단 그게 나았다. 분노하고 비웃기라도 해야만, 모든 희망 앞에서 냉담하게 굴어야만 자신이 가짜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가짜라는 걸 아는 가짜, 그가 최악의 가짜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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