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채널 ‘김선태’에 2026년 3월6일 게재된 ‘100만 구독자 감사합니다’ 영상 갈무리. 김선태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인터넷 놀이에는 성지순례라는 게 있다. 어떤 게시물 하나가 급격하게 트래픽이 오르거나 화제가 되면 거기에 우르르 몰려가 댓글을 달며 노는 식이다. 처음에는 뭔가 게시물의 주제와 유관한 이야기가 달리다가 주제보다 트래픽 자체가 더 큰 화제가 되는 순간부터는 그저 방문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전부인 글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성지순례 왔습니다”나 “OTL”처럼 절하는 이모티콘 등이 대표적이다.
정확한 기원을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성지순례 놀이는 꽤 유서 깊은 인터넷 놀이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여러 성지순례 가운데 최근 가장 뜨거웠던 사례는 아마 ‘충주맨’ 김선태의 개인 유튜브 계정 개설과 첫 동영상 업로드에 따라붙은 댓글 순례일 것이다.
김선태는 충북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티브이(TV)’를 이끌며 공공기관 홍보의 문법을 바꾼 인물로 꼽혔다. 퇴직을 선언한 뒤 그는 2026년 3월2일 자기 이름을 내건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고, 첫 영상 ‘김선태입니다’를 올리며 본격적인 개인 활동을 알렸다. 영상이 올라온 직후부터 빠르게 구독자가 늘었고,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성지의 개장을 알렸다.
폭발적인 조회수와 댓글수를 이어나가던 이 성지순례의 현장은 조금 특이했는데, 평범한 사람뿐 아니라 전 직장인 충주시를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의 공식 계정이 몰려들었다는 점에서다. 그냥 축하의 말을 남기기도 하지만 자기 기관을 홍보하거나 협업을 제안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홍보 계정은 그 본질에 충실한 형태로 성지순례를 이어가고 있었다.
앞서 성지순례가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놀이의 일종이라고 했지만, 충주맨 유튜브 사례에서 볼 수 있던 공식 홍보 계정들이 벌인 성지순례는 놀이가 아닌 진짜 ‘성지순례’로 보이기도 한다. 동종업계 바닥에서 정점을 찍어 사실상 우화등선(신선이 되는 경지나 그만큼 황홀한 상태를 비유하는 사자성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충주맨 계정에 몰려와 벌이는 숭배가 그냥 놀이로 보일 리 있겠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인 양, 그의 새 유튜브 첫 영상의 댓글난은 진짜 ‘성지순례’의 장이 되어버렸다.
묘한 점은 이 현상이 그렇다고 진짜 진지한 제의의 현장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관 공식 계정들의 메시지는 협업 제안이나 자신들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진지함을 담지만, 그 톤 자체는 밝고 유쾌하며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말처럼 이 계정들의 성지순례는 절반의 진정성과 절반의 밈 묻어가기가 뒤섞인 상태로 펼쳐진다.

김선태 유튜브에 달린 공식 홍보 계정들의 성지순례 댓글. 김선태 유튜브 갈무리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저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통해 제의와 놀이가 갖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야기한 바 있다. 춤·노래·시 같은 인류 초창기의 예술과 놀이는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일련의 행위이고,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공간에서 특정 규칙에 따른 반복으로 이뤄진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얼핏 비슷해 보이는 놀이와 제의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부분은 그 행위가 지향하는 지점이 갖는 의미의 위상에 있다. 형식만 놓고 보면 둘은 놀라울 만큼 닮았지만, 놀이가 그 자체의 즐거움과 긴장, 형식적 질서 속에서 자족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제의는 그 바깥에 있는 더 높은 의미, 다시 말해 공동체가 승인하는 어떤 신성한 질서나 가치와 접속해 있다. 제의의 참여자는 놀이 같아 보이는 행위를 통해 어떤 권위에 접속하고 소속을 확인하며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받는다.
충주맨 유튜브 댓글난에 벌어진 공식 홍보 계정들의 성지순례는 이런 점에서 단순한 놀이로만 보기 어려운 면을 나타낸다. 그들이 그곳에서 수행한 것은 유행하는 밈에 한마디 얹는 장난을 넘어 업계 스타가 된 한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징적 질서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동시에 그 권위에 접속하려는 일종의 의례적 실천으로도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천한 홍보 스타를 향한 이런 ‘성지순례’는 가벼움의 탈을 썼지만 공식 계정이라는 이름의 묵직한 정장을 입은, 농반진반의 형태를 취한다. 이는 오늘날에 그리 낯선 일만도 아니다. 한쪽에선 놀이의 영역이던 게임 속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버는 세계가 열리고, 다른 쪽에선 엄숙한 공식 홍보 계정이 ‘인터넷 드립’의 문법을 익혀 자신을 드러내는 세계가 열린다. 일과 놀이, 진지함과 유머러스함 사이에 존재했던 경계는 흩어져간다. 서로 다른 질서와 실천이 뒤섞이며 기존 구분을 흐리는 혼종성의 한 장면이기도 할 충주맨 댓글난의 성지순례 역시 놀이와 노동, 밈과 홍보, 유머와 수행이 한데 겹치며 뒤섞이는 동시대 트렌드의 일면이다.
애초에 충주맨이 핫이슈가 된 배경 역시 일과 놀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과 맞닿아 있었다. 충주맨은 전통적인 공공기관 홍보라는 목적을 수행하면서도 놀이의 맥락으로 이를 엮어내며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밈과 드립, 캐릭터성과 인터넷식 반응이라는 트렌드와 하나가 된 듯했던 그의 홍보는 일을 하되 놀이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고, 바로 그 감각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기존에 서로 잘 붙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던 두 감각의 적절한 배합이 성공하며 인정받은 사례가 충주맨이다.
충주맨의 유튜브 개설 뒤에 이어진 공식 계정들의 성지순례는, 놀이와 일의 접붙이기에 성공한 이를 향한 동종업계의 숭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과 놀이가 뒤섞인 홍보의 문법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인물을 향해 같은 업계의 계정들이 농담처럼, 그러나 결코 농담만은 아닌 방식으로 보내는 순례이자 응답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성공적인 레퍼런스를 숭배하면서도 동시에 제의문이 아닌 밈의 방식으로 제례를 진행하는 이 독특한 성지순례는 충주맨을 둘러싼 현상 중에서도 단연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성지순례라는 말을 우리는 이제 인터넷 밈으로 더 자주 쓰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본래 품고 있던 신성함과 장엄함까지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충주맨 개인 유튜브에 줄지어 달린 기관 홍보 계정들의 댓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댓글들이 품고 있던 놀이와 일 사이의 이중성은, 본래의 무게와 인터넷적 가벼움을 함께 품게 된 ‘성지순례’라는 말과 묘하게 맞물린다.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놀이인지 구분이 어려운 시대에, 직접 그곳에 가서 댓글을 단 계정 관리자들은 일의 마음으로였을까, 놀이의 마음으로였을까, 업무로서의 의무였을까, 동종업계 종사자를 향한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도 구분되지 않는, 마치 성지순례처럼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채 미처 구분해 설명하지 못할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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