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시감 가득한 책 제목이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기점으로 180년 가까이 이어져온 질문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울리케 헤르만 지음, 강영옥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제목만 보면 카를 마르크스 이론의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쯤으로 짐작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지은이는 마르크스를 티 나게 비판한다. 가령,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시작되는 ‘원시적 축적’의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로 노예제를 꼽은 것에 대해 “(미국에서) 노예가 거의 없던 북부만 산업화된” 것을 들어 반박하는 식이다. 책 속에 넘치는 반증의 일례다.
심지어 지은이는 마르크스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한다. “자본주의가 축복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최고의 찬양은 하필이면 마르크스에게서 나왔다.” 마르크스는 당대의 눈부신 기술 발전을 보며 ‘생산력’ 향상을 혁명의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생산력 향상은 곧 ‘성장’이다. 성장이 멈추면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고, 공산주의도 도래할 수 없다.
다만 마르크스와 지은이가 확고하게 공유하는 게 있으니, ‘자본주의의 종말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상이하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근거로 들지만, 지은이의 근거는 기후위기다. 기후위기가 심화해 세상이 끝난다면 자본주의도 종말을 피할 수 없다. 논점은 성장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로 옮아간다.
지은이가 직격하는 대상은 도널드 트럼프류가 아니다. 녹색성장론자들이다. 친환경에너지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과 다르지 않다. 지은이는 아무리 친환경에너지 가격이 내려가도 자본주의가 현재 성장을 위해 투입하고 있는 화석연료 체계의 비용보다 낮아질 수 없음을 도장깨기 하듯이 논증한다. 녹색성장론은 인류를 구할 수 없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채택한 ‘민간 주도 계획경제’에서 대안의 단서를 찾는다. 당시 영국 정부는 무엇을 생산할지 정했으나, 기업들은 여전히 개인 소유였다. 이 체제에서 영국 국민은 21세기 선진국들의 권장량보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자신이 제시하는 ‘생존경제’ 모델로 1978년 수준(독일 기준)만큼 부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정교하게 따져볼 문제다.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당장 자본주의 이후 모델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348쪽, 2만1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다극세계가 온다
페페 에스코바 지음, 유강은 옮김, 돌베개 펴냄, 2만1천원
트럼프 정부가 벌인 ‘관세 세계대전’은 미국 일극 패권의 위험성을 드러냈다. 동맹국 대부분은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인도·브라질 등 이른바 ‘다극세계’ 선도국들은 맞대응했다. 양극화·총기·마약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쇠퇴에 대비해 다극세계는 빠르게 힘을 키워왔다. 브라질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가 기록한 세계질서 대격변의 장면들.

뾰족하게 다정할 것
신혜림 지음, 유유 펴냄, 1만7천원
시비에스(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의 신혜림 피디가 어떻게 ‘구석진 이야기’를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만들었는지 글로 풀었다. ‘4월은 제주’ ‘용돈 없는 청소년’ 등 굵직한 기획들로 상을 받은 신 피디는 “내가 이래요”가 아니라 “이 사람 좀 보세요”란, 남을 특별하게 만드는 접근이 기획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야생의 존재
케기 커루 지음, 정세민 옮김, 가지출판사 펴냄, 3만8천원
동물은 자연을 정화하고 꽃가루를 나르고 인류를 실어날랐다. 상어, 늑대, 수달 등 아홉 가지 동물군은 매년 64억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인간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창으로 동물을 공격해왔지만, 동물은 눈부신 경이로움으로 지구를 지켜왔다. 저자는 인류가 단지 과학이라는 창으로 동물을 찌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인류의 몸에 동물과 함께한 연대의 기억이 4만 년 동안 새겨져 있음을 파헤쳤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최은정 지음, 갈매나무 펴냄, 2만1천원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인 저자는 ‘최초’ ‘단독’ 등의 수식어를 달고 주목받는 ‘빛나는 우주 기술’ 뒤편의 우주 불평등과 전쟁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우주 공간에서 첨단 감시·정찰위성 경쟁을 본격화하는 등 우주의 패권화, 민간 기업의 진출로 인한 우주의 자본화가 현실이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은 불가능할까. 저자가 던지는 긴박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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