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전하는 책의 진심이주란의 소설집 에서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명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제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던 어떤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때 그 언니와 많은 술을 마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설 속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더 적확하게 말...2018-08-31 00:10
꿈꿀 때가 가장 젊을 때툭하면 뭔가를 세어보던 때가 있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가늠해보는 시기였는데, 그게 뭐든 간에 되도록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만 사는 일이, 살아왔던 날들이 비교적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상실과 결핍에 대한 거였다. 내게 없거나 모자란 것, ...2018-08-07 16:50
불행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늘 괴롭다. 그땐 정말로 바닥을 쳤다 싶은 시절을 떨쳐내기는 만만치 않다. 삶의 호시절을 그려보아도 썩 즐겁지가 않다. 지금의 처지를 제2의 전성기라고 믿고 싶지 않은 탓이다. 삶의 호재를 즉시 알아챌 만큼 강렬하고 명백한 호시절을 누리는 사람이 ...2018-07-17 17:20
공부를 못해서 다행이다의 도키다 히데미는 제멋대로 사는 고등학생이다. “나는 공부를 못해”라는 말을 자랑처럼 떠벌린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딱 질색이라 어른 말을 무시하기 일쑤다. 똑똑한 어른 말보단 잘생긴 어른 말을 더 신뢰해, 강압적인 선생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침묵은 멋진 태...2018-07-03 17:17
최악의 가짜 인생는 신문의 인생 상담 코너를 맡은 어느 기자의 이야기다. 기자의 필명은 미스 론리하트. 독자는 미스 론리하트를 삶에 대해 좀 아는 중년 여성일 거라 짐작하지만 사실 그는 남자다. 젊은 미혼 남자.“당신에게 고민이 있나요? 조언이 필요하세요? 미스 론리하트에게 편지를 보...2018-06-12 16:48
나는 늘 더, 더 원했다의 주인공 힐다는 남다른 영적 감각을 지녔다. 타인의 과거 행적과 심리 상태를 알아맞히는 신묘한 능력, 이를테면 상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뭔지 쉽게 알아챈다. 그저 두 눈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 단번에. 힐다의 ...2018-05-29 15:08
신이 매기에게서 훔쳐간 것들매기 모런은 어느 노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어서 천국에 가면 생전에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담은 자루를 건네받을 수 있다고,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까지 모조리 돌려받을 수 있다고. 심지어 아무 거리낌 없이 남에게 주었다가 다시 돌려받고 싶었던 물건도...2018-05-15 17:30
오늘부터 존재하지 않겠습니다의 주인공 비에른은 사무원이다. 최근 그는 직장을 옮겼다. 그가 원한 바는 아니었다. 상사가 일종의 해결책으로 권했는데,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만 두고 보자면, 상사는 비에른이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이직은...2018-04-27 01:46
실패한 형의 이름으로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아버지를 험담하면 듣기 싫었다. 아버지가 두고두고 욕먹을 짓을 했어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깎아내리는 소리는 듣기 괴로웠다. 명절에 할머니가 친척들 앞에서 어머니의 잘못을 트집 잡으면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내가 듣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게 싫었다....2018-04-17 10:12
이야기의 처음에 산다“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첫 페이지에 실린 문장이다. 후기에는 “쉽지 않았던 시절에 오히려 내 삶이 더 풍성해졌던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그럴 수 있게 ...2018-03-29 11:35
그는 정말 악인인가이기호의 를 읽은 ‘누군가’는 책 속 주인공들을 가리켜 죄다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 법적 처벌이 가능한 살인, 강도, 사기와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비겁하고 이기적인 데가 있다. 피해자 편이 아닌 피의자의 편에 섰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시험...2018-03-04 01:42
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될 운명을 가졌다. 부모의 죽음은 불가피해서 모든 부모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원하는 장례 절차를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유산 분배도 일찌감치 알리는 일이 흔하다. ‘나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농담인 듯 진담인 듯 ...2018-02-08 20:35
개자식, 영철이들김엄지의 첫 번째 소설집 에는 주인공이 김영철인 소설이 두 편 있다. ‘삼뻑의 즐거움’과 ‘영철이’이다. ‘삼뻑의 즐거움’의 영철은 16살 아들 팔광과 둘이 살고, ‘영철이’의 영철은 결혼한 지 7년 된 아내와 갈색 개 한 마리, 이렇게 셋이 산다. 심지어 갈색 개의 ...2018-01-27 14:40
내 집 빈방에 여자가 산다“작은 빌라에서 살아가는 오십 대 남자를 상상해보라.”일찍이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남자의 얼굴. 그런 얼굴을 가진 오십 대 남자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미간에 깊은 골이 파여 성마른 표정을 가졌을 확률이 크지만, 정반대의 얼굴을 가졌을 가능성도 크다. 남자의...2018-01-07 00:04
과거를 생략하고 싶다면미야모토 데루가 쓴 의 첫 문장은 ‘전략’이다. 앞 내용은 대강 생략한다는 말이다.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굳이 과거의 일을 꺼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문일 수도 있겠다. 으로 유명한 미야모토의 는 10여 년 전 이혼한 두 사람이 우연히 재회한 뒤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5...2017-12-01 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