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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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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빈방에 여자가 산다

원자폭탄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상상과 기억, <나가사키>
등록 2018-01-07 00:04 수정 2020-05-03 04:28

“작은 빌라에서 살아가는 오십 대 남자를 상상해보라.”

일찍이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남자의 얼굴. 그런 얼굴을 가진 오십 대 남자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미간에 깊은 골이 파여 성마른 표정을 가졌을 확률이 크지만, 정반대의 얼굴을 가졌을 가능성도 크다. 남자의 이름은 시무라 고보, 쉰여섯 살, 직업은 기상관측사. 하늘의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엔 무심한 편이다.

냉장고 주스가 조금씩 줄어들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삶이라서, 일부러 남기지 않는 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솔직히 말해서 대단한 사람은 못 된다’는 그의 일과는 매우 규칙적이다. 출근하자마자 위성사진을 분석하고, 관측소에서 보내오는 지도와 보고서를 검토한 뒤 경계 예보 작성이나 해양기상도를 다듬는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다. 멀리 사는 여동생은 거의 왕래가 없다. 퇴근 뒤 저녁은 집에서 혼자 먹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6시를 넘기지 않는다. 비난받을 짓을 하지 않고 한편으로 초라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 살아왔다.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있기 좋아하는 그를 두고 강박증 환자 또는 우울증 환자라고 수군거리지만, 그는 그런 오해가 불쾌하지 않다. 아무도 퇴근을 서두르는 그를 붙잡지 않으니까. 맥주 한잔 하자는 말을 건네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삶에서 기념할 만한 일을 절대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당연히 기억할 만한 일도 없다.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렸다면 이제 그의 집을 상상할 차례, “뱀처럼 꾸불꾸불한 산꼭대기로 기어오르는 물컹한 아스팔트를 떠올려보라.”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여름, “양철과 천막, 기와와 그 밖의 알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도시”에 제멋대로 생겨먹은 길 끝에 서 있는 빌라. 그가 태어난 해와 건축연도가 엇비슷할 정도로 낡은 집. 집에는 방이 여러 개지만 대부분 비어 있다. 빈방 벽장에는 이불 몇 채뿐이어서 그가 드나들 일은 없다. 그래서, 시무라는 몰랐다. 근 1년째 어떤 여자가 그의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냉장고 음식이 사라지고 주스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시무라는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출근 뒤, 그는 고요한 집 안을 비추는 카메라가 전송하는 화면을 주시했다.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너무 예민했던 걸까, 너무 피곤했던 걸까, 시무라는 자신을 의심했다. 집은 잘 잠가서 유리창을 깨고 문고리를 잡아뜯지 않는 한, 누구도 쉽사리 침범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몸집의 여자가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시고 밥을 짓고 창가에 서서 볕을 쬐었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 여자는 그의 집에 침입한 게 아니었다. 거기 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자기 집이었던 것처럼.

소설 의 온전한 첫 문장은 이렇다. “아주 일찍,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하고 나가사키 변두리의 제멋대로 생겨먹은 거리, 작은 빌라에서 살아가는 오십 대 남자를 상상해보라.”

시무라 고보를 상상하기 전에, 나가사키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려야 했다는 걸,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1950년 전후에 태어나 여전히 나가사키에 사는 사람들, 시무라가 그러하고, 시무라의 집에 숨어 살던 여자가 그에 속한다. 기상관측사가 아니더라도 수시로 하늘을 살피고 집 밖의 기척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여자에게 나가사키는 “어느 8월9일에 여러 조상들이 죽고 다시 생겨난 세상”이다. 매미 울음이 온종일 이어지고 간간이 우라카미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고 그보다 드물게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는 나가사키의 한낮. 1945년 8월9일, 그날의 나가사키도 무더운 한여름이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리는 대축일이어서 우라카미 성당에는 수많은 신도가 모였다. 성당에서 700m 남짓 떨어진 곳,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이 피폭으로 죽어갔다. 수많은 집이 무너졌다. 여자의 가족은 살던 집을 떠나 변두리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여자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세상 위로 난 발코니가 있는 방, 그가 세례를 받은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방.

여자는 시무라 이전에 그 집에 살던 사람이었다. 원폭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어른이 되었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여자는 고아가 되었다. 가엾은 도둑이 되어 그 방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여자는 원자폭탄을 투하한 나라를 증오하며 실패의 이력을 쌓았다. 증오도 피폭의 부작용일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 고통은 나날이 커졌다. 쉰여덟 살의 실업자. 편의점 쓰레기통을 뒤져 근근이 끼니를 잇는 노숙인.

나가사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자는 그 집이 자기를 기억한다고 믿었다. 여자의 말처럼 집이 사람을 기억한다면, 도시 또한 그러할까. 여자가 돌아온 뒤, 시무라는 “도무지 내 집에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떠났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얼마나 돌아가기를 원할까. 한 예로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있다가 간신히 살아난 수만 명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여전히 피폭의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의 저자, 에릭 파이는 프랑스인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시무라 고보를 상상하라 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더 이상의 상상을 거부할지 모르겠다. 대신 그들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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