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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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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못해서 다행이다

항상 연애 중인 자신을 꿈꾸는 고교생의 이야기 <나는 공부를 못해>
등록 2018-07-03 17:17 수정 2020-05-03 04:28

의 도키다 히데미는 제멋대로 사는 고등학생이다. “나는 공부를 못해”라는 말을 자랑처럼 떠벌린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딱 질색이라 어른 말을 무시하기 일쑤다. 똑똑한 어른 말보단 잘생긴 어른 말을 더 신뢰해, 강압적인 선생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침묵은 멋진 태도가 아니라고 엄마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항상 지갑에 콘돔을 넣고 다니며,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학생이 섹스를 하다니, 선생이 혼내면 “그건 저의 프라이버시일 뿐, 섹스를 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줄 생각이라면 곤란합니다”라고 대꾸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선생 처지에서 보면 아주 불쾌한 학생이다. 열등하고 불량한 학생을 넘어서서 ‘선생을 가르치려 드는’ 당돌한 학생이다. 당연히 공부를 못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항상 연애 중인 자신을 꿈꾼다. 심지어 오늘도 연애 중인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만 하는 우등생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꼬장꼬장한 고정관념이 예언한 미래

대학에 가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도키다는 묻는다. “그 훌륭한 사람이 당신입니까?” 도키다의 초등학교 선생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선생을 바라보는 아이. 선생에겐 비웃음처럼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때로 선생인 그도 모르는 게 있었으니까.

“네가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분명히 아버지가 없으니까 저렇다고 할 거야. 그런 건 싫지?” 도키다가 사회에 잘 순응하는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어린 도키다는 울며 대답했다. “선생님은 교활하군요.” 도키다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어머니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는 그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가난하다고 놀리는 아이는 맞아도 싸다고, 나라도 실컷 패주겠다고 말하는 도키다의 어머니를 보며 선생은 생각했다. 이러니 아이가 불량할 수밖에.

빛바랜 티셔츠와 구멍 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가난한 행색, 불우한 가정환경. 그런데도 그늘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 선생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 아이에겐 당최 정이 가지 않았다. 어른의 품이 필요 없는 아이라니, 이 상태로라면 아이는 분명 비뚤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웃질 않나, 도를 넘어선 장난을 치고도 사과하지 않는 아이였다. 잘못에 벌을 주려 머리를 쥐어박을 때면 아이는 반문했다. “선생님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자 선생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점점 더 세게 도키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싫었다. 아이라고 다 좋아할 순 없었다. 도키다의 말이 맞았다. 선생은 혼을 낸 게 아니라 화를 낸 거였다.

어른들은 도키다가 뭘 해도, 무슨 말을 해도 불행하게 쳐다보았다. 좋은 일을 하면 “아버지 없이 자랐는데 대단하다”고 하고, 나쁜 일을 하면 “아버지가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했다. 어머니가 그 모양이니까, 집이 가난하니까, 그래서 저 모양 저 꼴이라고. 이미 불행하지만 앞으로도 불행할 거라고 예상했다.

“난 예정된 길을 걷는 인간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도키다의 삶은 처음부터 그 꼬장꼬장한 고정관념이 예언한 미래에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의 말대로라면, 도키다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불행한 미래에 살고 있었다. 그 미래를 떨쳐내려고 도키다는 수없이 되뇌었다. “나는 나다.”

선생 앞에서도 할 말을 다 하는 학생이라서, 도키다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도키다는 교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도키다도 그런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았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도키다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좋은 대학에 가려는 시도가 고정관념에 순응하는 선택처럼 보였을 테고,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행동 같지도 않았을 테니까.

17살의 내가 대답한다 “나는 나다”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일종의 특권의식이야. 반성하는 게 좋을걸.” 친구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사실은 너도,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잖아. 무지하게 우월감을 품고 있으면서 일부러 멍청한 듯이 행동하잖아.”

불우한 아이들은 불량해지고, 불량한 아이들은 불행한 어른이 될 거라는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삶, 그건 비단 도키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을 불우하게 여기고, 불량하다 느끼고, 불행할 거라 믿는다. 나 역시 그러했다. 많은 아이가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는 나다”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각자의 질문을 모색한다.

나는 지금의 나보다 열일곱의 나를 훨씬 믿는 편인데, 이유는 명백하다. 그때의 내가 거짓을 훨씬 잘 간파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 내가 몸만 자란 어른에 불과해서 그런 게 아니다. 현재가 지속되듯 미래 역시 지속되기 때문인데, 다 자란 내가 종종 내 선생이 되어 나를 협박한다. 이러다 망하지, 이러다 외로워지지, 이러다 울고 말지. 그러면 열일곱 그때의 내가 대답한다. 나는 나라고. 그러면 적어도 나 자신에겐 화내지 않게 된다. 좀 못 살아도.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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