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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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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과정 기록한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
등록 2018-02-08 20:35 수정 2020-05-03 04:28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될 운명을 가졌다. 부모의 죽음은 불가피해서 모든 부모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원하는 장례 절차를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유산 분배도 일찌감치 알리는 일이 흔하다. ‘나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농담인 듯 진담인 듯 협박 투로 말할 때도 있다.

좀더 적나라한 경우도 적지 않다. 죽음에 직면한 부모의 두려움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도 분명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부모의 전언은 대부분 훗날 자식이 겪을 경악과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에서 비롯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생생한 상실로 체험하는 당사자는 결국 망자의 가족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 역시 부모의 죽음을 경험했으며, 자식 역시 우리의 죽음을 겪는다. 우리는 그들의 사인(死因)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가족력으로 남아 내 죽음을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어쩌면 부모의 사인이야말로 남은 자식에게 가장 유용한 유산일지 모른다.

기록으로 남긴 아버지의 죽음

은 미국의 저명한 작가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다. 필립 로스가 56살이던 해,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 1988년이었다. 그보다 앞선 1981년 어머니가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보다 훨씬 전인 1942년에는 할아버지 샌더 로스가 뇌졸중으로 죽었다. 책은 아버지가 뇌종양을 진단받고 투병하다 죽기까지 1년여간의 일을 담았다. 그는 작가답게 아버지의 죽음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으며, 그런 자신이 어쩐지 꼴사납다고 느끼면서도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저 가벼운 안면신경마비를 앓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한쪽 귀까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백내장을 앓던 아버지는 누구보다 건강한 축이었다. 의사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자, 그러지 말고 복 받은 것들을 헤아려봐라.”

그 말인즉슨, 비록 한쪽 눈이 멀고 한쪽 귀가 안 들리고 얼굴 반쪽이 마비된 것만 빼면 당신은 충분히 건강하지 않은가, 라는 반문이었다. 86살에 비하면, 말이다.

안면신경마비는 증상임과 동시에 장애였다. 아무리 뺨을 당겨보아도 입술은 수평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 주름이 깊어진 거라고 믿기엔 익숙히 보아온 병증이었다. 뇌졸중으로 죽은 샌더 로스의 말년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며, 그 노력에도 미처 삼키지 못한 음식물이 다물어지지 않는 입아귀로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셔츠와 바지를 버리지 않으려면 목에 냅킨을 둘러야 했다. 살이 급격히 빠졌으며 설상가상 백내장까지 심해져 앞을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상황이 그토록 심각해진 뒤에야 아버지는 아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았다. 안면신경마비, 그것이 진짜 병명은 아니었다.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 수 없으나 너무 커서, 어느 쪽이든 죽을 수밖에 없는 종양. 수술로 제거할 순 있지만 75%는 살아남는 반면 10%는 수술대 위에서 죽고 나머지 15%는 수술 직후 죽는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75% 확률로 살아남는다 해도 회복은 어렵고 더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는 게 의사의 결론이었다.

의사의 말을 전하는 일은 아들의 몫이었다. 필립 로스는 어떻게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풀이하려 애썼다. 아들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주치의였던 것처럼 아버지의 질문에 답했다.

“뭐,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땅을 떠나니까.”

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아들에게 이해시키려던 마음이었을까. 그는 여러 기억을 떠올렸다. 1944년 복막염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던 일, 의사는 멀쩡하다고 했으나 아버지인 그가 우겨 아들 필립 로스를 겨우 살려낸 일. 그들 가족이 합심해 병을 물리치고 이겨낸 일들. 마치 가족의 역사가 죽음과 고통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줄거리인 양,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를 그렇게 해석했다. 조금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견디고 버티는 방식으로 수술과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온전히 아버지의 선택이었으나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생사에 대한 선택을 회피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떻게든 정확하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남겨두는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없을 때도, 나를 창조한 아버지를 재창조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은 기록으로 남았다. 뇌졸중, 협심증 말고도 뇌종양이라는 사인이 그들 가족의 병력에 선명하게 덧붙여졌다.

가족이란 질병의 공동체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때, 의사는 빠트리지 않고 가족 병력을 묻는다. 부모의 사인뿐만 아니라, 대를 거슬러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사인도 잊지 않고 묻는다. 마치 그들의 사인이 내 몸의 의미심장한 증상들의 원인인 것처럼. 마치 그들이 죽기 전 내 몸에 자신들의 병을 전달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조부모는 뇌혈관 질환으로 돌아가셨다던가, 외조부모는 암으로 돌아가셨다던가 등등의 대답이 이어지면 의사는 내게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엄중히 경고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결국 가족이란 질병의 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증상은 달라도, 병기(병을 앓은 기간)는 달라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같은 병을 함께 앓아왔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함께 아파할 것인데, 상황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우리’라서, 그런 것 같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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