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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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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때가 가장 젊을 때

76살에 화가 꿈 이룬 할머니 이야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등록 2018-08-07 16:50 수정 2020-05-03 04:29

툭하면 뭔가를 세어보던 때가 있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가늠해보는 시기였는데, 그게 뭐든 간에 되도록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만 사는 일이, 살아왔던 날들이 비교적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상실과 결핍에 대한 거였다. 내게 없거나 모자란 것, 설령 내가 갖고 있더라도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또렷하게 보여서 괴로웠다. 굉장히 중대한 무언가를 잃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잃어버리거나 영영 잃어버린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불안도 컸다. 살아갈 미래보다 살아온 과거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이 불러들인 예감의 실체는 뭔가가 되기도 전에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자각이었다.

나는 옷장에 걸린 코트의 개수를, 현관에 어지럽게 흩어진 신발의 개수를, 책상 위에 쌓인 책의 개수를, 싱크대에 놓인 컵의 개수를 셌다. 양말의 개수를 세고 연필의 개수를 셌다. 그러다 살아온 시간의 일수를 세고, 연애 횟수를 세다가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하고 자동차 주행거리를 날마다 확인했다. 가진 것을 가늠하는 일이 삶의 통계를 계산하는 일로 변화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추억은 충분하지 않았고 희망은 달갑지 않았다. 내가 잃어버린 ‘굉장히 중대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나는 도통 알지 못했다.

“추억은 뒤를 돌아보는 거고 희망은 앞을 내다보는 거지요. 추억은 오늘이고 희망은 내일입니다.” 의 저자 모지스 할머니의 말이다. 그림책이기도 하고 자서전이기도 하고 실용서 같기도 한 이 책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의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애나’는 앤 이모가, ‘메리’는 동명의 메리 이모가 붙여준 것이고, 로버트슨은 아버지의 성이며, 모지스는 남편의 성이다. 살면서 점점 이름이 길어졌는데, 따지자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아둔 거나 마찬가지였다.

76살 되던 해, 할머니는 처음 그림을 그렸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악화되는 바람에 더는 뜨개질을 할 수 없어서였다. 할머니는 실과 바늘을 놓는 대신 붓과 페인트를 쥐었다. 벽지가 모자라서 남는 자리에 그림을 그려넣었던 게 시작이었다. 이후 80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93살에는 미국 주간지 의 표지 모델도 했다. 101살 되던 해에 죽었으니, 대략 25년 동안 화가로 산 셈이다.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모지스 할머니에게 그림은 추억을 재현하는 일에 가깝다. 수십 년 전 보았던 풍경들을 캔버스로 옮기는 동안, 기억은 선명한 오늘로 바뀌었다. 어제를 기억해야만 오늘을 그릴 수 있었던 할머니, 그녀는 지난 추억만을 그릴 뿐 절대 다가올 희망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알록달록하고 북적북적하게, 그림에 대한 할머니의 철학은 그뿐이었다.

“예쁘지 않다면 뭐하러 그림을 그리겠어요?”

할머니는 자신의 기억을 그저 예쁘게 옮기고 싶었다. 시련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잊어버려야 할 무언가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니 할머니의 기억은 전부 액자에 담아 기념할 만한 풍경, 그 자체였다.

그림을 그리기 전, 근 76년 동안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알록달록하고 북적북적, 예뻤을까. 10남매의 셋째였던 그녀는 남자 형제들한테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큰오빠가 처마 위로 올라가면 질세라 부득불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식이었다. 그런 그녀도 당최 맘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수영이었다. 큰오빠와 달리 그녀는 수영을 못했다.

자존심이 상하던 차에, 아버지가 수영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손을 떼자마자 그녀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어지간히 무거운가보다, 웃어넘겼지만 그날의 경험은 두고두고 생각났다. 삶이 크게 달라질 때마다 모지스 할머니는 생각했다. “수영을 하러 바다로 나왔으니, 이제 헤엄을 치거나 가라앉거나 둘 중 하나”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삶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12살부터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의 집 살림을 도왔다. 할머니의 표현대로라면 ‘식모살이’를 한 셈이다. 불행도 잦았다. 고작 감기 때문에 가까운 형제를 셋이나 잃었다. 식모로 일하던 집의 일꾼과 결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73kg씩 버터를 만들어 팔았으며 감자칩을 튀겨 내다 팔기도 했다. 10남매를 낳았으나 다섯이 죽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알록달록 예쁜 삶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기억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로 나의 공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옛일을 기억하는 것을 보통 회상이라고 말한다. 회상이 재현이라면 공상은 상상에 가깝다. 살아온 날들을 공상하기. 기왕이면 알록달록하게. 오래전 모지스 할머니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젯밤에 네 꿈을 꾸었단다.

좋은 꿈이었어요? 나쁜 꿈이었어요?

그야 어떤 미래가 펼쳐지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오래전, 내가 잃어버린 ‘굉장히 중대한 무언가’는 별게 아니었다. 잃어버리기도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뿐,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흉몽이라 여겼을 뿐이다. 깨기도 전에 길몽과 흉몽을 따질 수는 없는 법, 아직 어떤 꿈에 대해서도 단정할 때가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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