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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살을 선택한 미국

박노자 교수의 ‘야만 시대의 귀환’
등록 2026-02-20 14:00 수정 2026-02-21 20:35


 

 

“거의 조폭을 방불케 하는 사기꾼 기업가”가 어떻게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됐을까. ‘야만 시대의 귀환’(한겨레출판 펴냄)에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압승을 일탈로 보지 않는다. 거래를 미덕으로, 공격성을 능력으로, 공감 결여를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온 신권위주의 사회에서 트럼프 현상은 ‘정직한’ 결과다.

그는 1920~1970년대 민주화의 주역이던 미국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점에 주목한다. 트럼프의 백인 노동자 득표율은 66%였고, 중남미계 남성(55%)도 열혈 지지층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중남미계 여성 득표율 역시 38%를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2020년 선거 때보다 8%포인트 높아졌다. 4년 사이 노동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비백인 인종 집단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왜 변해가고 있을까. 박 교수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각자도생’식 삶에서 원인을 찾는다. 제조업 쇠퇴와 함께 1960년대 30%에 이르렀던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0년대 중반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조차 공공부문(32%)을 제외하면 민간부문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에 불과하다. 파업 건수도 1974년 424건에서 2024년 31건으로 줄었다. 미국의 평균적 노동자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노조 미가입 20~30대”이고,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경제적 생존”이다. 약 65%가 저축도 거의 못한 채 월급날까지 버티는 삶을 산다. 이들이 그나마 타자를 만날 공간은 종교시설이다. 타자들과의 공통분모는 ‘보통의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다. 소수자 권리를 침범하더라도 보안·경찰 기능을 강화하는 국가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 이유다.

트럼프의 민족주의적 배외주의가 반영된 정책 흐름은 ‘국가 자살’의 성격이 짙다. 이민자 마녀사냥, 외국인 학생의 감금과 추방은 미국 발전의 동력이던 이민자 기반의 인력 공급 모델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유럽 등 기존 우방 지역을 겨냥한 고율 관세 도입은 여전히 정상적인 무역 질서를 지키는 중국의 영향력을 키울 뿐이다. 혁명에 준하는 시민 저항에 나서지 않는 한, 미국이 러시아와 유사한 선거형 신권위주의 체제로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미국 관련 불확실성이 증폭하는 시대는 한국인에게 위기이기만 할까. 자주국방, 중국군과의 신뢰 구축, 남북관계 정상화 등을 포함해 외교·안보·경제의 지평을 넓힐 기회이기도 하다는 게 박 교수의 제안이다. 352쪽, 2만2천원.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공원의 탄생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신명진 지음, 신명진 옮김, 한뼘책방 펴냄, 2만4천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조경가이기 이전에 공원을 통해 불평등·과밀·폭력성·소외 등 도시의 병리를 완화하려 한 사회개혁가였다. 이 책은 옴스테드의 글 7편을 처음 한국어로 옮긴 기록이다. 그는 공원을 도시의 윤리·건강·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장치로 보았다. 공원이 “인공적 미보다 자연의 질서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민원과 개발 논리가 공원의 방향을 좌우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경고처럼 읽힌다.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8800원

안정적인 도시 생활 속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낀 청년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숲속 오두막을 고치며 삶을 다시 짓는 기록이다. 전기와 와이파이 없이 망치질과 수리, 공동노동을 이어가며 그는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를 묻는다. 도시의 시간에서 한발 물러서자, 오두막은 도피처가 아니라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가 된다.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박이대승 지음, 오월의봄 펴냄, 2만9천원

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고, 한국 사회는 분열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정치철학자 박이대승은 오늘의 사회를 서로를 설득할 공통의 기준을 잃은 공동체로 진단한다. 판단 근거는 사라지고 입장만 남은 자리에서 분노는 정치적 동원이 되고 권리는 요구되지만 책임은 뒤로 밀린다. “개인의 권리를 정당화하는 언어체계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기능을 멈춘다”는 그의 분석은 트럼프의 미국과 분열된 한국을 동시에 설명하는 불편한 답변이다.

 


마음

조정 엮음, 도서출판 님 펴냄, 1만2천원

표준말이 ‘무엇’을 말하는 언어라면, 고향말은 ‘누구’를 드러내는 언어다. 제주에서 전라·경상·충청·강원·평안도까지 전국 각지의 말로 15명이 편지를 썼다. 고향말로 쓴 문장은 설명보다 정서를 먼저 전한다. 감정은 숨길 수 없고, 말하는 이의 자리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적인 언어로 밀려났던 고향말은 이 책에서 사랑과 상실, 사회를 사유하는 공적 언어로 돌아온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언어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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