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도 일기’는 롤랑 바르트(1915~1980)가 어머니를 잃은 다음날부터 2년 가까이 쓴 일기다. 아포리즘처럼 간결하고 직관적인 문장으로 빛나는 하루치 글들에는 어머니의 부재에서 오는 극한의 슬픔이 배어 있다. 그가 가까스로 상실을 감당하기 시작할 때의 나이는 예순넷이었고, 어머니를 뒤따라 눈감은 건 일기를 마치고 6개월여 만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빼어난 자취를 남긴 이 프랑스 지식인은 정작 어머니와 끝내 ‘분리’되지 못했던 듯하다.
바르트의 후세대인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1953~)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을 때(2017년)의 나이도 예순넷이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2023년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어머니의 죽음과 책 출간 사이 6년 세월이 바르트가 일기를 써간 시간과 달랐으리라 추론하는 건 썩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이 ‘분리 이후’의 감정 기록이 아니라, 그 감정을 딛고 길어 올린 어머니의 생애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고, 열네 살에 하녀가 됐으며, 가정부와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늙어서는 지방 도시의 연금 생활자로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이렇게 축약된 것보다 어머니의 생애는 훨씬 복잡했다. 오랫동안 노조원으로 지내며 파업에 동참할 의지를 가진 정치적 존재였다. 다만 노조와 활동가들로부터 소외를 경험했다. 나이 들수록 불신은 혐오로 향해 가고, 마침내 극우정당에 표를 던졌다.
좌우 이분법 어디에도 배치될 수 없는 이 노동계급 여성은 예산 삭감에 시달리는 공공 요양원에서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노년을 보내다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지은이는 프랑스의 신자유주의화와 우경화가 늙은 어머니의 정신과 신체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규명하는 한편, 노인들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이 ‘어머니에 관한 사회적 전기’로 평가받는 이유가 아닐까.
바르트와 같은 성소수자이면서도, 에리봉이 바르트만큼 어머니와 애타는 관계가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베를린 아카데미상’을 받은 전작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이미 밝혔듯이, 노동계급 가족을 떠나 지식인으로 산 생애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신과 가족의 삶을 연결해 사회를 읽는 특유의 성취가 이번에도 가능했을 터이다. 366쪽, 1만8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드롬 펴냄, 2만2천원
1848년 아내 엘렌은 백인 남자 주인, 남편 윌리엄은 흑인 노예로 꾸며 ‘해방 여행’을 감행했다.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기차, 역마차, 증기선을 이용했다. 한국계 작가인 저자는 ‘자유’를 향한 이 대담한 여정을 부부가 165년 전 남긴 기록을 토대로 철저히 고증했다. 2024년 전기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제정신병자들
오은교 지음, 문학동네 펴냄, 2만5천원
한국문학장에서 연애소설 실종 사태는 왜 일어났는가.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등을 겪으며 2010년대 중후반 점화된 ‘페미니즘 리부트’ 국면에서 “남성과의 인간관계 자체가 현실적 공포로 체험되는 가운데 스릴러가 여성주의 서술 문법으로 부상”하고 “레즈비언십이 대안적 기표로 채택됐다”. 한국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날카롭게 직조하는 해방적이고 회복적인 평론집.

내 영혼의 델리카트슨
드와이트 가너 지음, 황유원 옮김, 오월의봄 펴냄, 2만2천원
읽는 일과 먹는 일은 프로슈토와 멜론처럼 “그야말로 단짝”이라는 뉴욕타임스 서평가의 맛있는 독서 일대기. 마요네즈 잔뜩 뿌린 샌드위치를 들고 책을 읽었을 저자의 모습이 생생하다. “음식 이야기를 과하게 하면 속물이 된 기분”이라면서도,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식도의 쾌락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영국 청교도 전통에 훼손된 사회주의”라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어쩌면 새벽
임가은·강선영 등 지음, 아템포 펴냄, 1만9800원
경험이 쌓이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일도 육아도 전쟁. 좋은 엄마도 되고 싶고, 일도 잘하고 싶은 여성들의 속은 텅 비어간다. “나를 위해 단 5분도 시간을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여섯 워킹맘은 새벽에라도 ‘내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자주 실패하라”는 메시지가 여느 미라클모닝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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