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의 스토킹 살인 사건 발생 이후인 2026년 3월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흰색 경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 차에서 김훈(44)이 내렸다. 맞은편 차에 타고 있던 피해자는 전동드릴을 들고 접근하는 김훈을 보고 다급하게 스마트워치를 눌렀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전동드릴은 이미 운전석 창문을 파고들고 있었다. 창문이 깨졌고, 김훈이 피해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곧장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피해자를 살해했다. 2026년 3월14일 오전 8시57분께 피해자의 직장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많은 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인다. 신고가 더욱 심한 폭력 피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해자가 나의 신상을 잘 알고 있다면 그 공포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친밀한 관계’ 속 폭력이 가시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그 두려움을 뚫고 ‘김훈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는 네 차례의 신고와 한 차례의 고소로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할 만큼 했다. 그러나 국가는 ‘예고된 살인’을 또 방치했다. 이 사건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젠더기반폭력(젠더폭력) 대응에 매번 실패하는 국가의 무능을 드러낸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피해자는 살 수 있었다.
전·현 연인 또는 배우자 사이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의 본질은 ‘강압적 통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규칙과 명령에 따를 것을 강요하는 학대를 지속하고, 이 폭력 구조 안에서 피해자가 공포를 느끼며 자율성을 빼앗기는 상태를 말한다. 그 행위는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지인이나 가족을 못 만나게 고립시키고, 일상을 감시하며, 모멸감을 주거나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는 식의 심리적·정서적·경제적 폭력으로도 나타난다.(주석 1)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 2008년 3월~2016년 6월 발생한 친밀한 파트너 살인 사건 112건을 분석한 결과, 단 1건을 제외한 99%에서 가해자의 강압적 통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주석 2) 이처럼 강압적 통제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폭력 또는 살인을 예견하는 뚜렷한 전조 증상이다. 여러 연구를 통해 이미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2012~2015년 영국에서 벌어진 372건의 친밀한 관계 여성 살해 사건을 분석했더니 8단계로 구성된 가해자의 행동 패턴이 거의 모든 사례에서 발견됐다.(아래 표 참조) 이전 관계에서 스토킹이나 학대를 저지른 전력(1단계)이 있는 가해자는 새로 만난 상대방과의 관계를 빠르게 발전시키며 상대에게 헌신을 요구했다(2단계). 이후 가해자의 전방위적인 감시, 위협적 분위기 조성 등과 같은 강압적 통제가 피해자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3단계). 그런데 피해자의 결별 요구처럼 가해자 입장에서 그의 통제력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자(4단계) 가해자는 폭력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스토킹, 자살 위협 등 다양한 폭력 수단을 동원했다(5단계). 그런데도 통제력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가해자는 살인을 해결책으로 여겼다(6단계). 이후 구체적인 살해 계획(7단계)을 세우고 실제 살인(8단계)으로 나아갔다. 단 모든 가해자가 이 8단계를 모두 밟는 것은 아니라고 이 연구는 말하고 있다.(주석 3)

디자인주 이다은 팀장
수사기관이 이 같은 강압적 통제 맥락에서 김훈이 한 여러 가해 행위를 봤다면, 즉 피해자가 희생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별개의 ‘점’이 아닌 연결된 ‘선’으로 여겼다면 여성 살해라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김훈의 살인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기북부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 등을 토대로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어제 새벽부터 싸우다가 맞았어요. 남자친구가 술에 취해 자고 있어서 도망 나왔어요.” 피해자는 2025년 5월11일 오전 8시57분께 김훈을 112에 신고했다. 첫 번째 신고다. 김훈이 자신을 “칼로 죽이려고 했다”고도 말했다. 출동한 경찰은 긴급임시·긴급응급조치 통합 판단조사표를 작성하며 피해자를 면담했다. 피해자는 김훈이 평소 거친 언행을 일삼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무서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담·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의 김수정 소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신체적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종하려는 목적 아래 자행해온 여러 형태의 폭력 중 하나”라며 “가해자는 가족 또는 반려동물 위협 등 피해자가 두려워하는 요소를 활용해 피해자를 통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훈은 결별을 요구한 피해자에게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혔다. 두 사람 관계를 사실혼으로 본 경기 구리경찰서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근거로 김훈을 상대로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라’는 임시조치를 집행했다. 이어 김훈을 5월26일 특수상해죄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그런데 당시 경찰은 검찰에 구속영장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김훈이 신병 구속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사이, 피해자는 김훈을 피해 구리시에서 남양주시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러나 김훈은 피해자를 찾아냈다. 피해자는 김훈이 설계한 ‘지옥’에 다시 갇혀야 했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도 11월26일 김훈을 상해죄로 ‘불구속’ 기소하며 김훈은 강압적 통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수위는 높아졌다. 그는 피해자 집에 홈캠(가정용 감시카메라)을 설치해 피해자를 감시했다.
김훈의 집착과 금전 문제 등으로 고통받던 피해자는 2026년 1월22일 다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두 번째 신고다. 김훈이 무섭다고 했다.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는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맞춤형 순찰을 실시했다. 그런데 경찰이 이날 이후로 피해자 사망 전까지 50여 일 동안 맞춤형 순찰을 진행한 일수는 28일에 불과했다.
“차 밑에 전 남자친구가 몰래 지피에스(GPS)를 부착해놓은 걸 찾았어요.” 1월28일 셀프 세차장에서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발견한 피해자는 112에 신고했다. 세 번째 신고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김훈의 스토킹은 홈캠 설치에 이어 위치추적으로 확장됐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내시대학의 배성신 ‘젠더 및 가정폭력 예방센터’ 연구원은 디지털 기술이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통제하는 새로운 수단이 됐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스토킹은 강압적 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하며, 가해자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지피에스(GPS) 추적과 소셜미디어 감시는 피해자의 이동과 사회적 관계를 제한하는 핵심 도구로 사용된다.”(주석 4)
김훈의 통제는 물리적 제약을 초월한 만큼이나 피해자의 불안을 증폭했다. 피해자는 결국 고소를 결심했다. 2월2일 구리경찰서를 방문해 김훈이 협박한 일, 본인의 상해죄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 허위 진술을 하라고 강요한 일, 집에 홈캠을 강제로 설치한 일, 차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한 일 등을 고소장에 적어 제출했다. 구리서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김훈에게 서면으로 스토킹 중단을 경고하고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통지했다. 잠정조치의 집행이다.
그런데도 김훈의 해악은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는 2월21일 ‘김훈이 제 차 밑에 위치추적 태그를 2개 붙였다’며 추가로 112에 신고했다. 네 번째 신고다. 신고를 접수한 남양주남부경찰서는 현장 출동 경찰관을 통해 김훈이 피해자의 일상을 통제하고 이전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구리서와 남양주남부서가 모두 피해자 신고를 접수한 사실을 알게 된 상급관서인 경기북부경찰청은 2월27일 구리서를 김훈 사건 관할관서로 정해 구속영장과 유치장 유치에 해당하는 스토킹처벌법상의 잠정조치를 신청하라고 지휘했다.

디자인주 이다은 팀장
앞서 살핀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의 단계별 진행 과정에 비추어보면 김훈은 최소 6단계에 접어든, 상당히 위험도가 높은 인물이었다.(위의 표 참조) 그러나 구리서는 지휘를 따르지 않았다. 피해자 차에서 발견된 위치추적 장치가 김훈이 설치한 것이 맞는지, 실제 위치추적 기능을 하는지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을 통해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려 했다는 것이 경찰 쪽 설명이다.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렇게 버려졌다. 그사이 김훈은 피해자의 직장 정보와 범행 도구 구입처를 검색하며 살인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피해자의 용기로 가시화된 김훈의 강압적 통제가 피해자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경고 신호였는데도 수사기관은 이를 외면했다. 구리서의 부실 대응이 문제가 된 이후 일원화된 공보를 담당해온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정 이동길은 구리서가 김훈을 특수상해죄로 송치하기 전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 등을 묻는 말에 “넘어간 건은 답변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1차 수사종결권을 쥐고 ‘책임수사’를 외치는 경찰의 민낯이다.
김훈 사건 발생 이후인 3월18일 경찰청은 ‘관계성 범죄 사건관리 강화 계획’을 시행했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 관련 신고 이력, 가해자의 폭력성 징후, 가해자의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및 피해자의 감금 피해 여부 등에 따라 ‘고위험’으로 분류된 스토킹 사건은 접수 7일 이내에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과 함께 스토킹처벌법상의 잠정조치인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유치장 유치를 신청하도록 일선에 지시했다. 김훈 사건도 경찰이 김훈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유치장 유치 잠정조치를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살인으로 이어진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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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성폭력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주석 5) 그간의 경찰 대응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결과다. 이는 스토킹 사건에서 경찰의 초기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연구는 서울의 한 경찰서가 2023년 1월1일~2024년 7월31일 작성한 스토킹 긴급응급조치 판단조사표 226건 중 분석이 가능한 188건을 가해자의 위험도에 따라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분류했다.(위의 차트 참조) 그런데 경찰의 긴급응급조치 결정이 위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도움 요청에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가의 보호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는 고위험 사건이더라도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긴급응급조치를 하지 않는 보호 공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주석 6)
국회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국회는 3월31일 피해자 보호명령제도를 도입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가정폭력처벌법에 근거해 운영 중인 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수사기관이 법원에 잠정조치를 청구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가해자의 접근·연락 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의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운용 실태를 고려했을 때 스토킹처벌법상의 유사한 제도가 과연 피해자 보호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의 스토킹과 자살 협박에 시달린 가정폭력 피해자가 있었어요. 수사기관이 잠정조치를 청구했는데 법원이 기각했어요.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라면 연락을 할 수 있는 일이고, 부부는 서로를 부양하고 돌볼 의무가 있는데 피해자가 배우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하지 않은 점도 고려한다’가 기각 사유였어요. 그래서 피해자께서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라) 법원에 피해자 보호명령을 청구했지만, 그것도 끝내 기각됐어요.” 김수정 소장이 전한 피해 사례다.
최근 제1심 단계에서의 피해자 보호명령 청구사건 기각률은 2020년 26.2%에서 2024년 34.7%로 늘고 있다.(법원행정처 ‘사법연감’) 다음 통계도 법원이 강압적 통제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경찰이 2025년 1월~2026년 2월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유치장 유치를 신청한 사건은 2095건이다. 그런데 법원이 그 신청을 인용한 사건 비율은 31.8%(667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신청 사건의 법원 인용률도 37.0%(986건 중 365건)로 저조한 실정이다.(경찰청이 양부남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이처럼 입법·사법·행정이 모두 강압적 통제의 맥락을 놓치고 있는 상황에서 보호 공백을 메울 근본적인 대책 마련 대신, ‘수사기관이 안 움직이면 피해자가 직접 하라’는 식의 제도 도입을 ‘성과’라고 자평하는 국회의 인식은 비극이 일상화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정부도 강압적 통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인식 전환 포함)에 손 놓고 있다. 김훈 사건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은 가해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방의 생활을 침해해 자율성을 통제하는 행동으로, 강압적 통제의 맥락에서 다수 발생한다.(주석 7) 강압적 통제는 강력범죄의 전조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강압적 통제를 처벌할 법조차 없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처벌하는 해외 입법 사례를 다룬 기사는 2026년 4월28일 오전에 보도될 예정입니다.
□ 참고 문헌
1. 민윤영, ‘강압적 통제 범죄화 10년의 흐름과 샐리 챌런(Sally Challen)의 생애’, 법학논총 제49권 제2호, 2025
2. NSW Domestic Violence Death Review Team, Report 2017~2019, 2020
3. Jane Monckton-Smith, ‘Intimate Partner Femicide: using Foucauldian analysis to track an eight stage relationship progression to homicide’, Violence Against Women, 2019
4. 배성신, ‘보이지 않는 감옥: 기술 매개 강압적 통제와 스토킹’, 여성연구 제124권 제1호, 2025
5. 성평등가족부,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2024
6. 강소영 외, ‘From patterns to protection: a behavior-anchored typology of police-reported stalking and the mediating role of victim help-seeking', Policing: An International Journal, 2026
7. 성평등가족부, ‘2024년 스토킹 실태조사 사전연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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