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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행렬을 부르지 못하네

여성이 겪는 가장 극단적인 폭력의 총합 ‘페미사이드’ 상편… 2016년 1월~ 2021년 11월 427건의 3500쪽 판결문 분석
등록 2021-12-30 07:06 수정 2022-12-09 07:03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직후인 2016년 5월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살해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침묵 행진이 열려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직후인 2016년 5월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살해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침묵 행진이 열려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소녀들의 주검은 2021년 5월 충북 청주시의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발견됐다. 10대들은 용기 내어 성폭행 피해를 알리고 진실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2021년 7월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 건물에서 20대 여성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회초년생인 그는 교제했던 남성의 폭행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뒤인 8월에는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범죄자가 여성 두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각각 40대·50대였던 그들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러 나왔다가 살해됐다. 또 다른 50대 여성은 2021년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살해당했다. 30년 동안 ‘아내폭력’(아내에 대한 폭력)의 공포에 떨다가 두 명의 소중한 자녀를 둔 그는 결국 남은 생의 자유마저 빼앗겼다.

나이와 지역, 계층을 가리지 않고 여성들이 죽어나간다. 남성들에 의해서. 이 죽음엔 코드가 있고 패턴(유형)이 있다. 특정한 범죄 패턴이 드러날 때 수사 당국은 그 범죄에 ‘이름’을 붙여 대중에게 경각심을 준다. 연쇄살인, 연속살인, 보이스피싱…. 별의별 범죄에 모두 이름이 붙는데, 국내에서만 한 해 100명 넘는 여성의 목숨을 빼앗는 이 범죄엔 아직 이름이 없다. 너무 오래돼 익숙한 죽음이 돼버린 탓이다.

현상은 제대로 붙여진 이름을 통해 실체를 얻는다. 여성이 겪는 이 가장 극단적인 폭력을 세계는 ‘페미사이드’(여성을 일컫는 라틴어 ‘femina’와 살인을 뜻하는 영어 ‘homicide’의 합성어)라 부른다. 국내에선 흩어져 있던 살해-공포와 분노가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 응집됐다. 페미사이드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기 위한 ‘프레이밍’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폭력의 코드와 패턴을 알아내고, 중지시키기 위한 ‘방법론’이자 ‘구호’다.

<한겨레21>은 그 코드를 풀기 위해 언론보도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남성이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들을 추적했다. 2016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1심 판결이 선고된 427건의 사건, 3500쪽의 판결문을 분석했다. 페미사이드는 아직 국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주제다. 파편화되고 개별화돼 있던 여성살해 범죄를 이렇게 종합적으로 취합해 기록하는 보도는 국내에선 첫 시도다. 국외에서도 영국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서 민간 차원의 분석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판결문에 담긴 처참한 폭력의 기록을 독자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 윤리를 깊이 고민했다. <한겨레21>은 폭력을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언론 상업주의를 지양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이란 이름으로, ‘데이트폭력’이란 이름으로 한없이 얕고 가벼워진 페미사이드의 폭력성을 전하는 것이 더욱 긴박한 책임이라고 봤다. 아울러 세계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페미사이드 규탄’ 시위 소식도 전한다. 사랑하는 딸과 엄마를 잃은 이들의 목소리도 법정 안팎에서 들었다. 다음호(제1394호)에 하편 보도가 이어진다. 막을 수 있었던 500개의 페미사이드. 이 기획은 그 범죄의 흔적을 좇은, 일종의 ‘역학조사 보고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페미사이드 기사 모아보기


1부 어디나 강남역

‘지금’까지도 지난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76.html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행렬을 부르지 못하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75.html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살해됐는데요?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72.html

죽을 만한 일은 없었다 [페미사이드 500건 분석]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57.html

아무도 모른다,여성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3.html

헤어진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1354.html

카이네 메어, 니 우나 메노스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1349.html

2부 가장 친밀한 살해

맞는 아내 넘쳐나도 한번도 인정 못 받은 ‘정당방위’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51.html

30년간 ‘인질극’ 같은 결혼의 끝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58.html

“헤어질 거면 같이 죽자” 문자는 예견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59.html

마포구 교제살해 유족의 물음 “왜 살인이 아니란 말인가”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2.html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공모자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8.html

3부 변방에서 죽다

‘장애여성다움’에 가둔 그 보호는 가해였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53.html

가장 오래된 폭력, 가장 사소한 죽음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7.html

존엄의 벼랑 끝에서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9.html

오늘도 법정에 간다, 죽음이 모욕당하지 않도록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73.html

4부 들리지 않는 비명

함께 떠난 두 소녀, 살릴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90.html

“복종해, 빌어” 메시지창 가득한 비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91.html

“함께 죽자” 가장 파괴적인 남성성의 결말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401.html

5부 살아남을 미래를 위하여

생존자의,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97.html
‘배우자’인지도 모르는 젠더 범죄통계, 바로잡는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98.html
교제 살인과 술자리 시비 살인이 같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94.html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stop-femicide.hani.co.kr)에 접속해 확인해보세요.

한겨레21 페미사이드 특별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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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으로 긴급한 구조·보호 또는 상담이 필요한 경우 여성긴급전화 ☎️1366 에 전화하면 365일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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