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성의전화가 2024년 11월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행위극을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여성의전화가 2025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약 22시간마다 여성이 과거 또는 현재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되거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처럼 혼인·교제 중이거나 헤어진 관계뿐만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친밀성을 추구하거나 서로가 친밀한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친밀성의 맥락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가 빈번히 발생한다. 그 살해 과정을 들여다보면 남성이 상대 여성의 일상을 감시하고 간섭해 자유를 빼앗고 타인과 교류하지 못하게 고립시키는 ‘강압적 통제’가 공통으로 확인된다.
앞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009~2013년 친밀한 여성 파트너를 살해해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68명의 인터뷰를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나는 파트너 친구들에게 연락해 내가 없을 때 파트너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볼 권리가 있다’ ‘나는 파트너의 서랍, 핸드백, 주머니를 뒤진다’ ‘파트너가 날 떠난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겠다’ 등 28개 문항에서 하나 이상 동의한 비율이 약 절반에 달했다. 이어 3분의 2가 상대 여성에게 욕설하고 ‘뚱뚱하다’ ‘못생겼다’ 같은 비하 발언을 하며 심리적 학대를 가했다. 5분의 1은 여성 파트너를 살해하기 전에 그를 스토킹했다. 이 연구에서 더욱 눈에 띄는 점은, 여성 파트너를 살해하기 1년 전에 신체적·성적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는 가해자(34명) 중에서도 약 62%가 이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강압적 통제를 했다는 점이다.(주석 1)
강압적 통제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젠더기반폭력으로 나타나는 배경에는 성차별이 깔려 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강압적 통제에서 상대방에 대한 요구는 개념적으로 ‘자격’을 포함한다. 자신이 상대방을 통제할 자격을 가지며 상대방은 자신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믿음에서 강압적 통제가 비롯됨을 의미한다. 이를 친밀한 파트너 스토킹에 적용하면, 성차별적 사회에서 관계를 끝내거나 거부할 권한은 남성에게 있고, 남성에게 속한 존재로서의 여성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는 믿음이 이별을 원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스토킹을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주석 2)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의 배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폭력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젠더 질서와 규범 속에서 감춰져왔던 폭력의 맥락을 드러내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의견(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주석 3)이 나오는 이유다.
강압적 통제가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의 뚜렷한 전조 증상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처벌한다. 2015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처음으로 강압적 통제를 형사처벌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률은 친밀한 관계 내에서 가해자가 반복적 또는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심각한 불안이나 고통, 또는 최소 두 차례 이상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되리라는 두려움을 유발해 피해자의 일상 활동에 실질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강압적 통제로 처벌한다.(중대범죄법 제76조)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1심 법원에 기소된 강압적 통제 사건(2025년 11월 기준)은 2016년 4월~2017년 3월 309건에서 2020년 4월~2021년 3월 1403건, 2024년 4월~2025년 3월 5374건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없던 폭력이 생겨난 게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폭력이 드러난 결과다.
이어 2018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연방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도 2024년 7월부터 강압적 통제가 범죄가 됐다. 한국도 외국처럼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친밀한 관계 내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율하는 대표적 법률로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의 폭력 행위에 스토킹이 포함되지 않거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에 이르지 못하면 피해자는 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가해자가 평상시에 행사하는 심리적·정서적·경제적 학대 같은 비신체적 폭력은 폭행, 상해, 협박에도 해당하지 않아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스토킹 행위가 수반되지 않고, 동거 관계도 아닌 전·현 파트너에 의한 폭력 범죄는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된다”며 “그러나 신고 이후에도 쌍방 폭행으로 처리되거나 피해자의 처벌 불원을 이유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거제 교제살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지적했다.(주석 4)
2024년 4월 발생한 경남 거제 교제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총 11차례(목격자 신고 포함) 경찰에 가해자의 폭력을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더 큰 피해를 우려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수사를 접고 번번이 가해자를 풀어줬다. 그 결과, 피해자는 그의 자택에 무단 침입한 가해자에게 심각한 폭행을 당한 뒤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졌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책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김영사 펴냄, 2026)에서 “연인, 배우자, 파트너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법적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며 “만일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법률이 마련된다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강압적 통제를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고 공권력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연구관은 그러면서 “‘친밀성’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가해자 처벌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반의사불벌죄’ 배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 관련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243.html
<‘김훈 스토킹 살인’은 우발적 사건 아니다>
□ 참고 문헌
1. H. Johnson, L. Eriksson, P. Mazerolle & R. Wortley, ‘Intimate Femicide: The Role of Coercive Control’, Feminist Criminology, 2019
2. 김정혜, ‘강압적 통제로서 친밀한 파트너 스토킹의 특성과 대응 방향’, 여성연구 제117권 제2호, 2023
3.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폭주하는 남성성’, 동녘, 75쪽, 2024
4. 같은 책,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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