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가 2026년 4월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자신이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 실태조사’ 연구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헌법에 따라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을 없앨 방법을 밤새워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헌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회와 정부는 성소수자 차별 해소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1년 만에 진행한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은, 교육과 고용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성소수자의 건강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방치하는 국가가 잃어버린, 그리고 앞으로 잃어버릴 미래는 무엇일까. _편집자
성소수자는 존재한다. 다만 몸을 숨길 뿐이다. 다름을 못 견디는 세계에서 이들은 보호색으로 자신을 숨긴다. 거짓과 침묵이 보호색으로 기능한다.(책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희정 지음, 오월의봄 펴냄, 2019)
양성애자 남성 ㄱ(26)씨도 보호색이 필요했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성 간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주위를 환기시켜서 아예 다른 주제로 틀어버리죠. (…) 불편한 기색을 내는 것부터가 약간 이렇게 뭐라고 그래야 될까, 옷장 밖으로 약간이라도 빼꼼 튀어나오는 딱 그런 느낌을 (직장 동료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게 스스로한테는 뭐 좀 괴로운 일이기는 한데, 하지만 혼자 나와서 살고 있고, 밥은 먹고 살아야 되고, 돈은 벌어야 되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26년 4월3일 공개한 연구용역보고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 실태조사’(2025년 11월 발행)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이번 조사와 연구는 인권위가 2014년 12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행한 이후 11년 만에 진행됐다. “국가기관에서 수행한 성소수자 관련 실태조사나 국가적 차원의 통계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이번 실태조사 연구책임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가 한 말이다.
그사이에 직장 환경은 나아졌을까. 이번 조사에 응한 성인 성소수자(2495명) 중 최근 1년 동안 수입 활동 경험이 있다고 밝힌 1898명에게 일터에서의 경험을 물었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임을 숨기거나 속였다’는 응답자가 90.8%에 달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84.5%)은 직장에서 성소수자임을 숨기기 위해 최소 하나 이상의 행동을 했다. 가장 빈번한 행동은 ‘동성의 연인 또는 배우자와 관련한 대화를 의도적으로 피했다’(54.0%)였다. 동성애자가 직장에서 동성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책상 위에 동성 연인 사진을 두지 않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집단별로 보면, 트랜스젠더(내가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출생시 지정성별과 다른 사람) 응답자 사이에서는 ‘화장실 사용을 피하거나 나의 성별정체성과 다른 화장실을 사용했다’가 매우 높았다. ‘옷차림에 주의했다’ ‘목소리나 태도를 조절했다’ 등 패싱(어떤 사람을 특정 집단 구성원으로 여기게끔 외양과 행동을 위장) 행동도 두드러졌다. 이는 젠더 표현(자신의 성별을 복장이나 용모 등 외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지정성별에 맞게 드러내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함을 보여준다. 법학자이자 성소수자인 켄지 요시노 미국 뉴욕대학 법학대학원 교수는 엘지비티(LGBT)가 비LGBT에게 호감을 주는 자아로 동화되도록 강요하는 모든 종류의 압력을 ‘커버링’(Covering)이라 부른다.(책 ‘차별 비용’, 리 배짓 지음, 김소희 옮김, 이호림 감수, 글항아리 펴냄, 2024)

디자인주 손정란 제작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무시, 모욕, 따돌림과 같이 최소 하나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응답자 비율도 65.4%로 높았다. 자신을 양성애자 트랜스남성이라고 밝힌 ㄴ(32)씨는 그의 성별을 알아내려는 직장 동료에게 성폭력을 당한 일을 초점집단인터뷰(FGI·특정 주제에 대해 유사한 경험이나 배경을 가진 복수의 참여자를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같이 알바(아르바이트)하는 남자애들이 (…) (저를 가리키며) 하는 얘기가 ‘쟤 진짜 여자일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왜냐하면, 그 앞에서 저는 이제 여자애로 있으니까.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그러면 ‘우리가 가서 쟤 가슴을 만져보자’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 한 명이 갑자기 오더니 진짜로 제 정면에서 이렇게 가슴을 만지는 거예요. 근데 이게 그냥 툭 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움켜쥐고 놓고 ‘어? 얘 가슴 있다’ 이러고 가요. 완전 이제 패닉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아, 빨리 수술(유방절제술 등 성확정 수술)을 해야겠다.”
최근 5년 동안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성인 1943명 중 절반에 가까운 47.1%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력이나 개인적 배경을 숨겼다’고 답했다. ‘직업 선택의 폭을 스스로 제한했다’고 밝힌 응답자 비율도 30%로 조사됐다.
“면접 과정에서 그걸(성소수자 정체성) 숨긴 적이 몇 번 있었어요. (…) 지나고 나서는 숨기면 ‘안 됐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에 돈이 너무 급했어요. (…) 경제적으로 당장 자금이 필요하고 나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말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겼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26살 동성애자 여성 ㄷ씨)
“외국계 회사 위주로, 처음부터 주민번호를 안 물어보는 곳으로 해서 (…) (대학) 4학년 2학기 중간에 한 6~7군데를 붙었는데, 어쨌든 급여를 받아야 하니까 신분증을 내밀어야 되잖아요. 신분증을 드렸더니, 분명 최종 합격을 했다고 했는데 다시 다 취소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법적으로 성별) 정정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대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있어도 취직이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32살 양성애자 트랜스남성 ㄹ씨)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떨까. 16~18살 청소년 성소수자 455명에게 지금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느끼는지 물었다. ‘친화적이지 않다’는 응답률이 83.4%에 달했다. 동성애자 남성 ㅁ(18)씨는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경험한 일을 초점집단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중학교 2학년 때쯤에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서, 몇몇 애들이랑 학교를 끝나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 한 애가 ‘너 왜 게이냐’ 이러면서 저를 땅으로 밀친다든지 그런 일이 있었고. (…) 3학년 때는 사실상 친구가 아예 없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애들이 드러내진 않는데 뒤쪽에서 약간 잘 어울리려 하지도 않고 그런 느낌이 있어가지고. 고등학교 와서는 제가 계속 숨기고 다녔고, 그런 일은 없었어요.”
이처럼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또래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 비율은 60.4%였다. 13~18살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이 응답한 2014년 조사 때(54.0%)보다 괴롭힘 피해 비율이 더 늘었다. 가장 큰 피해 유형은 아우팅(타인이 성소수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공개)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성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하거나 아우팅 및 아우팅 협박과 같은 교사의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률도 11년 전(20.0%)보다 증가한 31.2%로 나타났다.(위의 표 참조)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찍은 ‘낙인’은 그들의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응답자에게 차별과 괴롭힘의 결과로 우울증이 발생했는지 그 여부를 물었던 2014년 조사와 달리, 이번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의 우울 정도를 구체적으로 살폈다. ‘지난 일주일간의 우울 증상’을 20개 문항으로 구성된 우울 증상 척도(CES-D)로 측정한 결과, 성인 응답자 중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비율은 45.8%로 높게 나타났다.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청소년 응답자 비율은 무려 69%였다. 성인 일반 인구의 우울 증상 의심 비율(11.3%)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성인 성소수자의 자살 생각 경험률(39.1%)도 성인 일반 인구의 그것(4.6%)보다 매우 높았다.(아래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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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차별은 성소수자 개인의 삶 전반을 위협한다. 그러나 그 피해는 당사자의 인권침해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능력을 노동시장에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 경제의 손실로 이어진다.
30년 넘게 LGBT 일상을 다루는 경제학을 공부한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애머스트캠퍼스 명예교수(경제학)는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따른 임금 격차와 그 단서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데이터, 각국이 신체적·정신적 질병의 사회적·개인적 부담을 측정하는 공통 척도인 장애보정생존연수(우울증·자살 등의 문제를 겪는 사람이 조기에 사망하거나 열악한 삶의 질로 인해 잃어버리는 수명), LGBT 인구의 추정치(전체 인구의 3~5%) 등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차별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확인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 측정값은 최대치가 아님을 배짓 교수는 짚고 넘어갔다.
측정 결과 각국의 성소수자 배제가 초래하는 경제적 비용(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에 달했다. 우리나라 2025년 기준 명목GDP(약 2663조원)에 대입하면 26조6300억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2026년 한국 국방예산(약 65조8600억원)의 약 40%를 차지하는 규모다. “LGBT를 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만큼 크다”고 밝힌 배짓 교수는 책에 이렇게 썼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환산하면 대부분 1% 안팎이라 처음에는 효과가 미미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첫인상은 오해다. 만약 정부 통계기구와 경제학자가 국가 경제활동에서 지속적인 1% 하락세를 관측한다면 경기침체라 부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호모포비아와 트랜스포비아는 한 국가의 사람들이 생산할 수 있었을 양보다 더 낮은 수준의 경제적 산출량을 지속시키면서 경기를 영구적인 침체에 빠뜨린다.”
정부와 국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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