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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7년, 안내도 지침도 없이 각자도생된 임신중지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직 걸겠다” 빈말 속 국제 표준 외면한 현실이 살인죄 재판 만들어
등록 2026-07-03 17:23 수정 2026-07-06 14:48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가 2026년 3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 34~36주차에 임신중지를 한 일로 살인죄로 기소된 권아무개씨의 무죄 선고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가 2026년 3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 34~36주차에 임신중지를 한 일로 살인죄로 기소된 권아무개씨의 무죄 선고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직을 걸겠다는 각오로 임기 내에 추진하겠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26년 6월22일 보도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임신중지약(유산유도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 의약품 도입 허가는 성평등부가 아닌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업무다. 그런데도 원 장관은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을 위해 미룰 수 없는 문제”라며 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장관직을 걸면서까지 유산유도제 도입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원 장관의 인터뷰 발언은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이 정작 살인범으로 몰려 재판받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며 형법상 일부 ‘낙태죄’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했다. 이 결정으로 형법상 해당 조항은 2021년 1월1일자로 그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는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는 그 어떤 실효성 있는 보건의료 체계를 7년째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직을 건 약속, 법정에 선 현실

국가의 직무유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한 여성이 과거 형법상 ‘자기낙태죄’(징역형 기준으로 징역 1년 이하)보다 처벌 정도가 더 무거운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로 기소되고 있다. 똑같이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을 위해 미룰 수 없는 문제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을 거는 고위공직자는 아무도 없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임신 34~36주차에 임신중지를 한 권아무개(27)씨는 2025년 7월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제1601호 참조)

권씨는 2024년 6월 산부인과 병원장 윤아무개(81)씨와 집도의 심아무개(62)씨로부터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 두 의사는 제왕절개술로 권씨 배 속에서 살아 있는 아이를 꺼내 사망하게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행위가 살인이라며 2026년 3월 윤씨에게 징역 6년, 심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권씨에게도 유죄 판결(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의료진이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사망하게 할 수 있음을 인식 또는 예견했으면서도 이를 용인했다’, 즉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제1604호 참조) 권씨는 항소했다.

국제 기준은 있는데, 한국 지침은 없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보건의료 체계의 부재와 무관심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시술에 빠뜨린다. 그 현실이 6월2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산부인과 의사 오정원씨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 능력이 있는 시기인 임신 20주차 또는 임신 24주차 이후에 임신중지를 할 때는 태아가 살아 있는 상태로 배출되는 것을 최대한 예방하라는 것이 국제 가이드라인의 권고사항’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현재 서울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교실에 재직 중인 오씨는 과거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등으로 근무하면서 60여 건의 임신중지 수술을 집도했다. 그중 30%가량이 임신 2분기(15~28주) 이후 여성을 상대로 한 임신중지였다.* 사유는 산모 혹은 태아의 장애, 산모가 청소년 또는 성폭력 피해자인 경우 등으로 다양했다. 대부분 다른 의료기관에서 많게는 5회 이상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산모였다.

*임신을 세 기간(삼분기)으로 나누어 보통 임신 1주에서 14주를 1분기, 15주에서 28주를 2분기, 그 이후를 3분기로 지칭한다.

오씨가 언급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하나씩 살펴보자.(아래 표 참조) 먼저, 세계보건기구(WHO)가 2022년 발표한 임신중지 가이드라인(임상지침)은 “임신중지 방법은 주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임신은 주수와 관계없이 모든 시기에 안전하게 종결될 수 있다”며 “임신중지가 가능한 주수의 제한은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주수 제한은 특히 취약 계층이나 후기(보통 28주 이상)에 임신을 인지한 여성들의 임신중지 접근을 지연시킨다”며 “이는 모성 사망률의 증가와 열악한 건강 결과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이 지침의 권고사항을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알리고자 2023년 발간한 실무 지침서는 ‘태아의 이상 여부와 관계없이 임신 20주 이후 임신중지의 경우 태아가 살아 있는 상태로 배출되는 징후를 방지하기 위해 태아의 심정지 유도를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사용하는 약물로는 염화칼륨과 디곡신, 리도카인이 있다.

954년 설립돼 130여 개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 산부인과 학술단체인 세계산부인과연맹(FIGO)도 같은 입장이다. 연맹은 2025년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임신 후기에 임신중지를 시행하는 경우 그 이유와 관계없이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가장 낮은 임신 주수에서 태아의 심정지 유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아가 포궁 밖에서 생존할 잠재력이 있는 시점은 일반적으로 임신 24~28주로 간주하나 그것은 가용한 기술적 자원에 따라 달라지며, 절대적인 임신 주수나 태아의 체중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도 태아 생존 가능 연령에 대한 공식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임신 몇 주차에 태아가 포궁 밖에서 생존 능력을 갖는지를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제 표준은 ‘금지’, 한국선 여전히 “긁어내면 된다”

이에 비추어보면, 윤씨와 심씨가 염화칼륨 같은 약물을 투입해 권씨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심정지를 유도하지 않고 태아를 산 채로 꺼내 사망하게 한 일은 국제 가이드라인의 권고에 어긋나는 행위다. 오씨는 법정에서 “의학은 굉장히 빨리 변하는 학문이다. 수술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바로 가이드라인이다. 의료인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국내에는 승인되거나, (국외의 그것이) 번역되거나, 인정되거나, 만들어진 게(후기 임신중지에 관한 임상지침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특히 임신 후기에 임신중지를 할 때는 어떤 약물을 사용하고 어떤 수술을 할지, 어떤 방법으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가 (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산부인과학회가 2020년 펴낸 ‘인공임신중절 교육지침서(매뉴얼)’에는 태아의 심정지 유도에 관한 내용이 없다. 되레 세계보건기구에서 사용을 반대하는 소파술(날카로운 ‘큐렛’으로 포궁 내용물을 비우고 포궁 내막을 긁어내는 시술)을 주요한 임신중지 수술 방법의 하나로 소개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임신 초기(14주 미만)에 임신중지를 할 때 여성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해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소파술 사용을 반대하고 진공흡입술(부드럽게 휘어지는 흡입관인 ‘캐뉼러’를 진공펌프와 연결해 포궁 내용물을 흡입하는 시술)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국제 권고와는 정반대다. 이 사건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5년 12월12일 열린 공판에 남계현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20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가진 산부인과 전문의인 남 교수는 소파술을 여전히 주요한 임신중지 방법으로 설명했다. 그는 법정에서 “흔한 것(임신중지 방법)은 임신 10~15주차에 태아 몸무게가 10~20g으로 작을 때는 ‘자궁’ 입구를 벌려서 숟가락 같은 기구(‘큐렛’)로 해서 (포궁 내막을) 긁으면 된다”며 “시술자에 따라서는 임신 5개월(약 20주차)까지도 소파술을 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임신 20주 이상 시기의 태아를 모체 내에서 약물 주입으로 먼저 사망하게 한 뒤 배출하는 시술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윤씨 쪽 변호인 질문에 “법정에 와서 처음 듣는다”고 답했다. 이것이 한국 의료의 자화상이다. 오씨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필요한 법적·제도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처럼 2019년 헌재 결정 이후로도 임신중지 의료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어느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가 가능한지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다. 유산유도제도 없다. 가까스로 임신중지 시술을 제공하는 의료기관을 찾아도 주수를 이유로 시술을 거부당한다. 주수가 높을수록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특히 임신 후기의 임신중지는 응급수술이 가능하고 분만 시설이 갖춰진 상급병원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데 그간 ‘낙태죄’의 영향으로 임신중지가 음성적으로 행해진 관행 때문에 아직도 대학병원을 비롯한 종합병원에서 임신중지를 거부하고 있다.

‘절박함’은 어떻게 살인죄가 되었나

이런 환경에서 임신 주수가 높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여성이라면 시술 방법의 구체적 내용보다 그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가 가능한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권씨가 의료진이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사망하게 할 수 있음을 인식 또는 예견했으면서도 이를 용인했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산모의 현실적인 경험칙(일상생활의 경험 등을 통해 얻은 판단 기준)에 반한다는 것이 권씨 쪽 변호인의 주장이다.

오씨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이미 여러 차례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당하고 절박한 상태로 오게 됩니다. 임신중지를 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묻지 그 외의 것들을 물어보지 못합니다. 만일 의료진이 임신중지를 해줄 수 없다고 할 때 산모가 돌아가면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는 예상 가능합니다. 더 비공식적이고, 비용 부담이 크며, 더 위험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오씨는 “여러 선택지와 함께 가장 안전하고 적절한 임신중지 과정을 설명하고 동의를 통해 함께 결정하는 것은 의료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권씨는 나중에야 브로커(중개인)로 밝혀졌지만 수술 당시에는 병원 관계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태아가 사산된 상태로 분만된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고, 수술 전에 병원 상담실장 또는 의료진으로부터 구체적인 수술 진행 과정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은 7월23일 열린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관련 기사

□제1601호 포커스_후기 임신중지 징역 6년 구형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803.html
<후기 임신중지 여성에 징역 6년 구형, 안전은커녕 범죄자 낙인 찍는 국가>

□제1604호 이슈_임신중지 여성 '살인죄' 유죄 선고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963.html
<국가의 7년 부작위, 임신중지한 여성을 죄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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