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구호 선단 활동에 참여한 해초(본명 김아현) 활동가가 2026년 6월1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굶주림은 사람을 척추도, 두뇌도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하는데 꼭 독감 후유증이랑 비슷하다. 해파리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피를 다 뽑아내고 대신 미지근한 물을 넣은 것 같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 5년간의 빈민 생활을 토대로 쓴 자전 소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년)에서 자신이 겪은 굶주림을 묘사한 문장이다.
“당신, 소중한 독자여- 당신이 아무리 민감하다 한들, 당신의 마음이 아무리 열려 있다 한들- 이 느낌을 당신이 정말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굶주림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거리를 두고 서술될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그것을 살아내봐야 한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 이후 현지에서 겪은 참상을 글로 옮긴 에세이집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2026년)에서, 지은이 알라 알카이시는 자신이 수없이 묘사한 굶주림의 본질을 그렇게 네 문장으로 응축했다. 알카이시는 이 책에서 오웰의 위 문장도 인용했는데, 90년 어간의 시차를 건너 두 작가를 연결한 것은 다름 아닌 ‘직접성’이다. 그 누구도 이 직접성의 감각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는다.
오늘도 그의 일상은 가자지구와 연결돼 있다. 연결의 촉수는 그의 머리를 지나 가슴 한가운데까지 뻗어 있고, 그가 어렵사리 잠들었을 때도 눈을 뜬 채 자주 악몽으로 출현한다. 그의 일상과 가자지구의 연결은 그의 몸이 이스라엘 점령군(이스라엘군)을 경험한 데서 비롯됐다. 직접성의 감각은 그렇게 생성됐다.
“두 번의 ‘항해’를 하고 난 제 몸이 뭔가를 목격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스라엘 땅, 아니 이스라엘이 78년 동안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개인적인 연결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그것은 역사책이나 소설책을 통해 얻은 식민지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는 거였어요. 제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조금은 낙관적으로 상상했고, 이스라엘군 개개인에게까지 식민지 점령의 역사가 너무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죠.”
‘고민’은 애써 고른 표현처럼 보였다. ‘회의감’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더 진지해지고 섬세해졌다 할까….”
그는 2026년 5월14일 튀르키예 항구 마르마리스에서 가자 구호선단에 올라 출항했다가 5월19일 이스라엘군에게 나포됐다. 그러고는 24시간 남짓 ‘감옥선’에 갇혀 있다가 5월20일 추방됐다.

2026년 6월1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해초 활동가.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6월16일, 해초(본명 김아현·‘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활동가)를 만났을 때, 지친 기색은 가리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났다. 그의 몸에는 물리적으로 새겨진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군의 주먹질을 당해 뚫린 고막에는 아직도 패치(얇은 조각)가 붙어 있다고 했다. “어느덧 통증보다는 먹먹하고 불편한 느낌이 크다”는 말에 시간의 치유력을 믿기로 했다. 나포 당시 겪은 폭력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고 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다. 그때 일을 환기하는 게 힘드냐고 물었다. 그는 “원래 그런 걸 잘 안 느끼는데, 심리적인 부담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깊은숨 한 번 내쉬고는 3주 전 악몽의 시간으로 기꺼이 제 몸을 밀어 넣었다. 피해자이자 연대자로서의 증언이 시작됐다.

2026년 5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소속 활동가 김동현, 해초, 이승준(왼쪽부터)씨가 가자지구로 항해에 나서기 전 모습. 해초 제공
“제가 탔던 ‘리나 알나불시’호는 54척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나포됐는데요. 뒤로 갈수록 이스라엘군의 폭력이 더 세졌다고 해요. 감옥선으로 끌고 가면서, 또 형식적인 여권 검사를 거치면서 모든 항해자를 구타했어요. 그건 시작에 불과했죠. 불이 꺼진 컨테이너에 밀어 넣고 나서도 아무 설명 없이 구타부터 했어요.”
해초는 무장 장갑을 낀 손으로 맞았으나, 다른 항해자들은 곤봉이나 긴 총으로 구타당하기도 했다. 남성들에게는 예외 없이 테이저건이 사용됐다. 컨테이너 안은 몸을 옴짝달싹하기도 힘들 만큼 비좁았다.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조차 누울 수 없었다. 피곤해도 잘 수 없는 것이나 하루에 한 번 얼다 만 빵밖에 먹을 수 없는 배고픔보다 고통스러운 건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다의 추위였다. 이스라엘군은 겉옷을 한 장만 입게 했다.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하면 그냥 대소변을 모아놓은 창고 같은 데로 데려갔고, 화장지나 물도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요구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무슨 절차처럼 구타를 반복했어요. 그것도 같은 부위만. 그 때문에 항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뼈가 부러졌어요. 구타만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몇 시간마다 컨테이너 밖으로 불러내서 한데 몰아넣고 물대포를 쏘거나 섬광탄을 터뜨렸어요. 고무총탄도 쐈어요. 녹색 레이저 불빛이 머리와 가슴 위로 돌아다녔어요. 같은 부위를 반복적으로 조준사격해서 심각하게 부상당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나포되기 전에 교육받은 안전지침 가운데 ‘조준할 때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자칫 머리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출혈이 심해도 치료는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부상 부위가 벌어지게 고문이나 다름없는 스트레스 자세를 강요했죠. 항해자들에 소속된 의료진이 쓰레기로 버려진 비닐로 감싸는 게 전부였어요.”
항해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모든 것이 본질에서 고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적군에 대해서조차 인도적 대우를 명시한 제네바협약은 비교전국·비무장 민간인들 앞에서 깡그리 무시됐다. 국제법은 그곳에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못했다.
해초는 2025년 10월 1차 항해 때도 나포됐다. 그러나 폭력의 수법이나 강도는 1차 때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컸다.
“1차 때는 명목상으로나마 휴전이 가까운 시기여서 이스라엘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구금도 오래가지 않았죠. 이번에는 작정하고 우리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제껏 있었던 항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게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54척의 요트가 항해하는 광경이 궁금했다.
“수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였어요.”
전세계에서 온 시민들의 직접행동이 이룬 이 광경을 해초는 “물결”이라고 불렀다. 54척은 앞서 20척 가까운 배가 항해에 나섰다가 공해도 아닌 그리스 영해에서 나포된 뒤 서둘러 2차로 나선 배였다. 전체 선단 규모는 70척이 넘었던 셈이다. 해초가 포함된 2차 선단은 가자지구에서 약 250해리(약 460㎞) 떨어진 공해상에서 나포됐다. 이스라엘군의 1차 나포뿐 아니라 2차 나포도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해적질’이다.
“(구호선단의) 규모가 규모이다보니 이스라엘도 압박감이 컸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규모와 상관없이 항해는 그 자체로 언제나 이스라엘에 큰 외교적 압박입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싫어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나포하려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가장 큰 부담은 전세계에서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증언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느덧 잔혹한 폐허의 이미지에 마비된 것 같지만, 누군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매개해주면 새롭게 공감하게 되거든요.”
해초의 나포 소식이 들려왔을 때, 또 그가 동료 항해자(이승준·김동현)와 강제송환이나 다름없이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우파 성향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진보적 합리주의자’를 자임하는 이 중에서도 세 사람의 직접행동이 가지는 ‘효과’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이가 있었다. 정부가 금하는 행동으로 부정적 여론만 강화했다는 거였다. 그러나 세계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살해에 항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 가운데 이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무엇이 있을까. 이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잔혹한 폭력이야말로 ‘효과’를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게 아닐까.

2023년 7월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해초가 깃발을 들고 미군 함정 입항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해초 제공
“근대를 지나며 공급망은 걷잡을 수 없이 길어졌다.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이름도 모르는 수백 명의 시간이 쌓여 있지만, 나는 그중 누구의 사정도 알 필요가 없다. 긴 사슬의 양 끝에서 동감은 조용히 증발했고, 우리는 이제 관계가 가격으로 납작하게 눌린 세계에 산다.”(황일우, ‘동감을 살짝 넣은 ‘간접화된’ 세계의 시장’, 한국일보 2026년 6월24일 칼럼)
오늘날 인간은 압도적인 ‘간접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 간접화란 우리가 직접 겪어야 할 일을 다른 사람과 여러 단계의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과정을 뜻한다. 시장경제와 산업화가 이런 간접화를 급속히 확대해, 누군가의 위험·저임금·불안정 노동 위에 다수의 편리와 안락이 세워지는 구조를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 선생은 ‘간접화의 세계’라고 개념화했다.
간접화의 세계는 약자에게 유독 잔혹하다. 황 선생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청년 노동자에 대해 어느 교육 관료가 “그게 자기 자식처럼 생각이 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말한 걸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이며, 슬퍼할 줄도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들과 가장 작은 감정까지 간접화된 사람들의 차이다.”(‘간접화의 세계’, 한겨레 2016년 7월15일 ‘황현산 칼럼’)
가자지구는 간접화의 국제정치 판본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간접화의 세계에 무모하다 싶게 도전한다. 해초는 가자지구에 들어가 굶주리는 그곳 시민들에게 직접 구호물품을 전달하고자 했다.
“가자지구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왜 크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폭력을 겪고 나면 가자지구 사람들이 매일같이, 끝없이 당하는 훨씬 끔찍한 폭력과 고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그건 의식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깝습니다. 오래전부터 미디어로만 접하는 것과 직접 가서 접하는 것은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직접 가보자고 했고요.”
해초는 실패한 게 맞는가. 오히려 과정으로서의 직접화에 성공한 게 아닌가.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카탈루냐 찬가’, 1938년)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이 시작되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군에 대항하는 공화주의 좌파 정권을 돕기 위해 전세계에서 의용군이 몰려들었다. 오웰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프랑코 정권과 손잡은 독일 히틀러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서구 여느 나라들도 국가가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그들이 탐탁지 않았다. 수많은 의용군이 스페인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서 귀국한 이들도 자기 나라에서 박해를 받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장사를 치른 뒤 산 채로 무덤에 감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류 역사에도 실정법을 비롯한 지배세력의 규범을 몸을 던져서라도 따르지 않는 이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들의 행위는 ‘위반’이 아니라 ‘초과’였다. 그들은 억압의 논리와 구조를 넘어서려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00여 년 전 동학농민군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당대 진보 언론을 자임했던 독립신문은 일본군을 불러들여 그들을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에 참여했한 해초(김아현) 활동가의 여권 행정소송 대응 기자회견이 2026년 6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려 민희(팔레스타인 해방울 위한 항해 한국본부 활동가)가 만료된 해초의 여권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
누군가는 실정법을 지키면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그러나 해초에게는 가자 구호선단에 올라 항해하는 것이 이 시기, 이 분위기에서 가장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전보다 많은 사람이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게 된 것만 해도 큰 성과죠. 팔레스타인을 점령해서 세운 식민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법으로 테러라고 규정해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식민 지배자들에게 테러였듯이요.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땅과 역사를 지키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더구나 국제법으로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살면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고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조건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해초는 한국 정부가 자신의 여권 효력을 정지시킨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 여권법은 범죄 혐의 및 국가안보 등의 사유로 여권 발급 또는 재발급을 거부할 수 있고, 발급된 여권의 반납을 명할 수도 있도록 규정한다.
“한국 말고 어느 나라에도 그런 법 규정은 없어요. 저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국가안보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가 저를 처벌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의 이동을 국가가 규제하고 제한하는 심각한 기본권 침해예요. 세계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것도 그 가장 극악한 행태가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고요.”
해초는 현재 정부를 상대로 여권 효력 회복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일부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작가 가운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있다. 그는 스페인에서 돌아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년)를 펴냈다. 책 제목은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1572~1631년)의 시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다. (…)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서 울린다.”
해초에게 섬과 바다는 무엇일까. 부산에서 태어나 저절로 바다를 좋아하게 됐다는 얘기는 운을 떼기에 맞춤해 보였다.
“섬은 연결을 기다리는 장소입니다. 고립돼 있으니까요. 항해는 고립된 섬을 찾아가서 섬의 이야기를 듣고 섬들의 이야기를 연결해 연대를 만드는 것이고요. 언제나 고립된 곳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장소는 당연히 가자지구죠. 구호선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배를 타고 가자지구에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초가 중학생 때 제주 강정마을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붉은발말똥게 분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해초 제공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먹는 것 같은 운명적 사건은 없었을까.
“글쎄요. 어려서부터 대안공동체와 대안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공동체 사람들과 제주 강정마을에 처음 가게 됐어요. 그 뒤로 방학만 되면 강정마을에서 지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을 일상으로 삼는 삶을 배웠습니다. 제주는 80년 전 어름 4·3 때 집단살해를 겪었고, 그것을 명령했던 미군이 강정 해군기지를 자신들의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려 하고 있어요.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걸 배웠어요. 혐오와 차별이 집약된 것이라는 사실도 배웠어요. 그게 지금의 가자지구고요.”
해초가 배운 게 하나 더 있다. 2021년 강정마을에서 요트 조정을 배웠다. 그러고는 2023년 요트를 타고 제주에서 시작해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 섬들을 거쳐 대만까지 가는 107일 5천㎞ 일정의 ‘공정과 평화의 바다를 위한 항해’(공평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방문지는 하나같이 군사주의로 고통받는 섬들이었다. 가자 구호선단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2025년 5월에는 제주에서 진도를 거쳐 임진각에 이르는 700㎞ 항해를 이끌었다.
“항해는 도보나 삼보일배 같은 투쟁 방식을 배를 타고 가며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몸으로 직접 여기저기를 경험하면서 그 장소와 관계를 맺고 함께 가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죠. 다만 바다는 이미 누군가 점유한 장소가 아니라 모두의 장소라는 것, 날마다 낯설고 경이로운 자연과 마주치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경험한다는 것, 그게 차이인 것 같아요.”

2025년 5월27일 제주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항해를 앞두고 해초가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겨레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항해는 인생에 관한 흔한 은유이기도 하다. 해초가 계획하는 ‘은유로서의 항해’는 무엇일까.
“2학기에는 복학해서 공부를 이어가려고 해요.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저항하는 삶을 사는 이들과 함께요. 취업이요? 이 시대는 돈이 돈을 버는 시대이지 발버둥 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저는 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공동체 생활을 통해 배웠어요. 많은 사람이 겁먹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포기하는 건 아닐까요.”
해초라는 활동명은 강정마을 활동가가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바다에서 활동하는 민초’라는 뜻이란다. 그는 이름대로 ‘진짜 항해’도 사는 내내 계속할 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참! 인생은 항해라는 말, 그건 항해를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말 같아요. 전세계적으로 보면 가자 구호선단에 올라 항해하려는 시민이 아주 많아요. 경쟁률도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한국 시민들도 한번쯤 이 항해에 참여해서 세계 시민과 만나보기를 제안합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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