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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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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와 세계시민 연결한 18년… ‘항해’가 최선의 대안이었다

가자지구의 장벽을 허무는 파도, 멈추지 않는 항해 운동 18년
등록 2026-06-25 21:46 수정 2026-06-30 14:05
2010년 12월2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귀항한 ‘마비 마르마라’호를 시민들이 맞이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9명의 얼굴이 담긴 펼침막이 배에 걸려 있다. REUTERS

2010년 12월2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귀항한 ‘마비 마르마라’호를 시민들이 맞이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9명의 얼굴이 담긴 펼침막이 배에 걸려 있다. REUTERS


2006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치른 총선은 “중동 역사상 가장 투명하고 민주적인 선거”(국제선거감시단)였다. 하마스의 사회복지 네트워크와 저항 노선을 지지했던 팔레스타인 민중은 하마스에 압승을 안겨줬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가자지구에 장벽을 쌓아 봉쇄했다. 1948년 이후 쉬지 않고 이어지던 팔레스타인 인종 말살을 위한 주도면밀한 기획의 일환이었고, 가자지구에 대한 고사 작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스라엘 점령군은 국제사회의 규탄 성명도, 유엔 결의안도 무시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던 17개국 활동가들은 “육로를 봉쇄한다면 국제해양법을 근거로 가자지구 앞바다로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항해를 기획했다. 민간인들이 지중해에서 가장 큰 전력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해군을 뚫고 가자지구로 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의 시선과 윤리적 정당성’이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고사 작전

 

항해 모금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업이나 정당, 국가의 기부금도 받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자금 출처가 모호할 경우 이스라엘 당국이 ‘테러’ 프레임을 씌워 운동을 차단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활동가들은 전세계를 돌며 설명회를 열었고, 소액의 후원금이 쌓여 계좌를 채웠다. 이 돈으로 중고 소형 선박 한 척과 노후한 나무 어선 한 척을 얻고, 배의 이름을 ‘자유 가자’호와 ‘리버티’호로 불렀다. ‘리버티’는 1967년 6월8일 중동전쟁 당시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의 어뢰 폭격을 받아 미군 34명이 사망했던 미 해군 ‘리버티’호를 본떠 지었다.

키프로스에서의 첫 항해는 출발 전부터 난관을 맞았다. 항구 주변에 탑승자들을 촬영하고 동선을 감시하는 정체불명의 정보요원들이 배회했다. 활동가들은 1988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추진했던 구호선 ‘알아우다(귀환)’호가 출항 직전 모사드의 폭탄 테러로 침몰했던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매일 밤 교대로 배에 남아 폭발물이 설치되지 않는지 불침번을 서야 했다. 설상가상 이스라엘의 외교적 압박을 받은 키프로스 당국은 선박 안전 점검,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출항 허가를 지연시켰다. 활동가들은 국제해양법을 들이밀고 항의하며 행정적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려야 했다.

여든한 살의 수녀, 유대인 역사학자, 저널리스트 등 민간인 46명은 이스라엘의 전파 방해와 군사적 위협을 뚫는 등 험난한 항해 끝에 2008년 8월23일 가자 해안에 도착했다. 점령과 봉쇄 이후 바깥 세계 사람을 보지 못했던 가자 주민 수만 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이들을 눈물로 환대했다. 항해자들은 이스라엘의 허가증 없이 가자에 갇혀 있던 팔레스타인 학생들과 중증 환자들을 태우고 공해로 귀환하는 기적을 이뤘다. 이 성공에 고무된 활동가들은 2008년 말까지 다섯 차례 추가 항해를 성공시키며 봉쇄에 실질적 균열을 냈다.

초기 항해 때 국제 여론을 의식해 길을 열어주던 이스라엘 정부는 2008년 말 가자지구 초토화 작전을 기점으로 태도를 180도 전환했다. 이에 맞서 전세계 시민사회 단체들은 연대체를 구성해 ‘가자자유선단’(Gaza Freedom Flotilla)을 조직했다. 2010년 5월, 40개국 600여 명의 민간인 활동가가 배 6척에 1만t의 의약품과 건축자재를 싣고 출항했다. 선단이 이스라엘 영해도 아닌 공해상을 항해하던 5월31일 새벽, 헬기와 군함을 동원한 이스라엘군이 선단 6척 중 ‘마비 마르마라’호를 습격했다.

활동가들은 맨손과 선박 집기로 저항했으나, 이스라엘군은 실탄 총격을 가해 활동가 9명을 살해했다. 부상자에 대한 의료 접근까지 차단되면서 현장은 참혹한 학살의 장이 됐다. 이 참사는 전세계적으로 해상봉쇄의 합법성과 공해상 나포에 관한 격렬한 국제법적 대리전을 촉발했으며, ‘도덕적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한 이스라엘의 가식을 무너뜨렸다. 또한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무너뜨렸던 보이콧·투자철회·제재 운동이 이스라엘을 겨냥해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가자 봉쇄 장벽에 균열을 내다

 

2008년 8월23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앞바다에 다다라 환호하는 항해 활동가들. 출처 자유가자운동

2008년 8월23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앞바다에 다다라 환호하는 항해 활동가들. 출처 자유가자운동


이스라엘은 ‘국가안보’를 근거로 봉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는 민간인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나 의약품을 차단한 것이고, 200여만 명을 조직적으로 고사시키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가 명백하며, 제네바협약 제33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전쟁범죄다. 불법 봉쇄를 강제하기 위해 공해상에서 타국의 배들을 공격하는 행위 역시 불법이다. 따라서 정당방위권은 무단 침입한 이스라엘 점령군이 아니라, 신체와 선박을 지키기 위해 맨손으로 저항한 민간인 활동가들에게 있음이 명백했다. 이번에 해초를 납치한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했던 변명 역시 마찬가지다.

참사 이후 항해 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했다. 미국 오클랜드, 스웨덴,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의 부두 노동자들이 이스라엘 선박의 화물 하역을 거부했고, 니카라과 정부는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전세계적 비난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에 직면한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육로봉쇄를 일부 수정해 반입 가능한 생필품 품목과 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상봉쇄와 여행제한, 수출금지 조처는 그대로 유지해 가자지구는 여전히 수용소로 남았다. 이스라엘은 선단의 출항을 봉쇄하려고 온갖 사법적 괴롭힘과 악의적 선동을 펼쳤다.

항해는 멈추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소형 요트와 어선을 활용해 게릴라식으로 가자 해역 진입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전세계 시민들에게 가자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전했다. 2018년 자유선단연대(FFC)는 1988년 폭파된 ‘알아우다’호를 부활시켜 다시 가자로 띄워 보냈다. 가자지구에서 대량학살이 지속되던 2025년 9월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배 42척과 활동가 462명이 참여한 ‘글로벌 레질리언스 선단’이 닻을 올렸다. 2026년 초엔 팔레스타인 민중의 끈질긴 저항 정신을 뜻하는 ‘수무드’(Sumud)를 기치로 삼아 ‘글로벌 수무드 선단’을 다시 조직했다. 튀르키예 마르마리스항에서 54척의 거대 선단이 가자를 향해 항해했고, 해초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여기에 참여했다.

 

전세계 시민이 행동해야 하는 이유

 

가자를 향한 항해 운동은 단순히 구호품을 배달하는 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엔 결의안이나 강대국 간의 외교적 시도가 무기력하게 실패했을 때, 평범한 시민들이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기 몸을 던져 장벽에 균열을 내고 국제법적 정의를 스스로 실현하고, 지중해라는 초국적 공간에서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폭력을 세계에 폭로하는 직접행동이었다. 물론 이스라엘 당국은 매번 최첨단 해군력과 사법적 규제를 동원해 선박들을 나포하고 활동가들을 구금하며 고문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결국 해방될 것이다. 제노사이드와 국가폭력에 맞선 행동이 지속될 때,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식민주의 체제는 기어이 무너질 것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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