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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 시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실리콘 유토피아】
국제 경쟁 논리와 애국주의에 가려진 데이터 인권과 AI 민주주의 상실 경계해야
등록 2026-07-02 21:36 수정 2026-07-06 10:45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2026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2026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소버린 인공지능(AI)’(AI 주권)이라는 불분명한 용어가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원래 소버린 AI는 서구의 빅테크 기술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컴퓨팅 역량에 기반해 모국어와 고유문화를 구현하고 국민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독자적 AI 모델 개발의 필요성으로 대두했다. 이전의 그 어떤 디지털 기술에 견줘봐도 AI는 언어와 문화 상징의 학습과 합성에 탁월하다는 점에서 AI의 기술 주권이 곧 문화 주권의 방어로 여겨진다. 세계 AI 질서를 주도하는 미·중 기술 패권 현실에서 보자면 우리의 언어와 문화에 맞춤한 AI 기반 모델을 찾자는 문제의식은 꽤 타당해 보인다.

소버린 AI 논의가 더 가열된 데는 최근 있었던 큰 사건이 영향을 끼쳤다. 2026년 6월15일 미국 상무부가 갑자기 국가안보를 이유로 AI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사의 최신 AI 모델인 ‘미토스 5’와 ‘페이블 5’에 대해 외국인 접근을 전격 차단했다. 그 근거는 앤트로픽 서비스에 연결된 한 협력업체가 페이블 5의 안전장치를 뚫는 ‘탈옥’에 성공하면서 당장 중국 등이 사이버공격에 악용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우려 때문이었다. 참고로, 미토스 5가 기업 전용 사이버보안에 특화된 AI 모델이라면, 페이블 5는 이를 기반으로 일반 사용자용으로 성능을 조정한 AI에 해당한다.

사건이 터지고 보름 정도 지나 서비스 접속 통제가 일부 풀렸다. 미국 영토 내 “믿을 수 있는” 외국 기관이나 기업에만 부분 철회가 이뤄졌다. 어찌 되었건 이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더라도 첨단 AI 모델 접근에서 언제든 군사 안보 등의 이유로 강제 차단당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이 우리 고유의 기술 역량에 기댄 소버린 AI가 시급하다고 보는 AI 애국주의나 기술 자주론적 입장에 더 큰 명분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다.

 

미토스 5가 촉발한 ‘AI 쇄국’ 움직임

 

소버린 AI 현상은 국내 ‘디지털 주권’의 역사적 계보 안에 있다. 멀리 거슬러 가면, 1980년대 서구 컴퓨팅 질서에 기술 자주권으로 맞서려 했던 ‘한글화’ 운동을 꼽을 수 있다. 군부 정권에 맞서 싸웠던 사회 민주화 열풍에 영향을 받은 당시 풀뿌리 컴퓨팅 자유문화는 꽤 급진적이었다. 컴퓨팅 한글화 운동은 주로 아마추어 이용자, 대학 피시(PC) 동아리, 컴퓨터 과학자 등 일반 시민의 자발적 모임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서구에서 수입된 디지털 컴퓨팅 기술을 토착화된 방식으로 변형하고 재해석했다. 이를테면 한글 문자 코드, 한글 전용 문서편집기, 피시통신용 한글 프로그램 등을 자체 제작하며 무료로 대중에 보급했다.

1990년대 말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 또한 이를 잇는 중요한 계보에 있다. 이는 한글과컴퓨터 회사가 당시 경영 악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회사의 문서편집기 아래아한글을 양도하려다 국민의 공분을 사며 사태가 확산된 경우다. 이 운동은 외국 빅테크 자본에 맞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거국적으로 연대해 국산 한글 전용 문서편집기를 지켜냈던, 흔치 않은 ‘디지털 애국주의’ 사례로 기록된다.

2010년대 들어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면서, 디지털 주권 개념에 지정학적 의미가 추가된다. 빅테크의 국내 시장 진출과 더불어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데이터의 국경 이동이 쉽게 이뤄지면서 국가 사이의 ‘데이터 주권’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 정부가 구글의 지도 서비스를 위한 국내 초정밀 지도 반출 요청을 여러 차례 거부한 것이 대표 사례다. 아주 최근에야 우리 정부는 구글에 정제된 형태로 지리 데이터 반출을 허락했다.

이제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주권 개념이 ‘소버린 AI’로 명패를 다시 바꿔 달았다. 초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AI의 특성상, 서구의 지능형 기술 언어나 문화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우리 말과 문화의 맥락에 맞춘 AI 개발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 현 정부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독자적인 AI 파운데이션 모델”, 이의 줄임말 ‘독파모’ 개발을 독려하는 정황은 기술 주권의 국가주의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6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6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디지털 주권’ 역사 속 소버린 AI

 

소버린 AI는 이렇듯 1980년대 이래 진행된 디지털 주권의 사회사적 흐름 안에서 관찰되지만, 오늘의 모습은 이전과 결을 달리한다. 우선 디지털 주권을 외치는 주체가 그동안 크게 달라졌다. 초기 디지털 주권 운동과 달리 소버린 AI에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풀뿌리 기술 정서보다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위시해 관련 기술관료 집단과 대기업의 욕망이 대신하고 있다.

처음부터 소버린 AI라는 구호는 국내 유력 AI 기업들이 국제 기술 시장 경쟁을 빌미로 정부 규제 완화나 막대한 AI 투자 자원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 활용됐다. AI 패권 시대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을 지키려면 바로 ‘토종’ AI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재명 정부 들어 해당 테크기업의 소버린 AI 주창자들이 관련 부처 요직에 자리 잡으면서, 이제 이들 기업의 주권 논리가 국가 성장의 핵심 구호이자 국가 의제가 됐다.

소버린 AI는 완전한 기술 자립론이나 국경 안쪽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기술 폐쇄론과도 거리가 있다. 표면적으로 소버린 AI 추종자들은 대개 AI 열강과의 기술 경쟁과 자주권 확보를 강조하지만, 실제 그 실현 방식에서는 미국 빅테크 제국의 AI 공급망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지위에 있다. 물론 우리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자체 AI 모델 개발, 클라우드 서비스 등에서 일정 부분 기술 자립을 꾀할 AI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AI의 엔진 격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에, 첨단 파운드리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에, 핵심 반도체 장비는 네덜란드 에이에스엠엘(ASML)에, 주요 생성형 AI 서비스는 실리콘밸리의 초거대언어모델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입지는 첨단 자본집약적 AI 기술을 쥔 빅테크의 초국적 공급망에 의존하면서도, 미·중 AI 기술 패권의 틈새시장을 통해 수익을 보장받는 지정학적 지위를 열망한다고 볼 수 있다.

 

AI 동원령 속 홀대받는 ‘AI 시민권’

 

궁극에는 소버린 AI가 주로 우리 내부 모순을 감춘 채 주로 외부의 기술 위협만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소버린 AI 구호는 국외 빅테크에 맞서 자력으로 기술을 키우는 것만이 살길이라면서, 일종의 전 국민 AI 동원 체제를 발동한다. 문제는 이것이 AI 학습용 데이터 자원 조달을 위해 필요하다면 거의 모든 민간 데이터를 포획하려는 국가와 ‘토종’ 기업의 무차별적인 AI 동원령이란 점이다. 이로 인해 내국민의 정보 인권이 희생되고 실종된다.

이번 AI 접근 차단의 외부 충격에 소버린 AI 의제가 크게 부각된 것에 비해, 여전히 ‘AI 시민권’이란 내부 문제는 계속 홀대받고 있다. 오히려 지금처럼 AI의 자본 생산성조차 불확실하고 국외 지정학적 변수에 취약한 AI 생태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무엇이 진정 ‘AI 주권’을 다지는 길인지 되물어야 한다.

우선 소버린 AI를 행할 실질적 주체는 누가 돼야 할지 제대로 따져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이보다 시민 주체가 AI 기술의 향방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 이제껏 시민은 데이터 주권의 주체라기보다 AI 학습용 데이터 자원으로만 여겨졌다. 어떤 공공 AI 모델을 갖고 ‘독파모’를 구상할지, 진정 시민의 동의 절차를 밟아 데이터를 학습시키는지, 공동번영의 사회 원칙 아래 AI 데이터 수익을 제대로 나누는지 등 정작 다뤄야 할 사회 의제는 실종된 듯싶다.

다음으로, AI 주권 경쟁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생태 파괴 문제이다. AI 독자 모델의 과열 경쟁은 전력과 용수, 토지, 희토류 등 대규모 환경 비용과 에너지 소모와 연결된다. 우리는 이미 서구 빅테크에 질세라 국가와 대기업이 합작해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와 데이터센터를 전 국토에 경쟁적으로 짓는, 이른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내놓은 상태다. 이는 국내 에너지 수급과 지역 환경에 큰 부담을 안길 것이다. 지나친 소버린 AI 경쟁으로 말미암아 현세대가 책임지지도 못할 과도한 자원 낭비와 생태 파괴를 조장하고 있다.

 

이광석 교수

이광석 교수


대체 누구의 주권을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기업 욕망에 갇힌 소버린 AI와 독파모는 자국어와 고유문화의 발전을 구현하는 데 만능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실상 단일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 언어와 문화에도 지역 방언, 세대별 언어 감각, 젠더와 계층 언어, 이주민 토착어, 다국어 등 연산처리나 학습이 어려운 다문화적 질감이 함께 섞여 공존한다. 설사 토종 대기업이 국산 초거대언어모델을 단독 개발하더라도 ‘표준 한국어’의 자동화된 연산 질서 아래 이들 소수 언어, 문화적 방언이 쉽게 무시되고 빠르게 퇴화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AI 독파모에서 ‘우리 고유의 가치’를 누가 정의하고 코딩할 것이냐는 근본적 질문까지 제기되면, AI 주권은 바깥으로부터 우리 것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자동화된 위계 권력과 문화 불평등 구조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AI 가속 논리가 기술 주권과 애국주의의 외피를 쓰고 공적 논쟁에서 면제되는 순간, 우리는 정작 AI 시민 주권에 무심해지거나 AI 민주주의와 점점 멀어지는 불운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진정 우리 사회에 소버린 AI를 제대로 안착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AI 성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희생이나 대가로 작동하는가, 그리고 대체 누구의 주권을 말하는가를 말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미래이후연구소장

 

*이광석의 ‘실리콘 유토피아’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드림과 인공지능(AI) 신화에 연동된 우리 사회의 기술 낙관주의와 그 최면 상태를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이와 함께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AI 환상에 맞서 저항하는 법과 대안 실천의 상상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로 삼는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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