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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초다! 우리가 가자다!… 한국 시민들의 밤샘 외침

한겨레21, 2025년 10월7일 전쟁 고통에 연대하는 밤샘 ‘비질’ 동참…“팔레스타인 인권 유린 막지 못하면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어”
등록 2025-10-10 16:09 수정 2025-10-20 11:47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는 밤’을 시청하고 있다. 한 참석자가 영상을 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는 밤’을 시청하고 있다. 한 참석자가 영상을 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요. 뜬눈으로 지새우며 ‘아침이 오기는 할까’ 생각하죠. 밤은 길고 공포스러워요. 밤이 올 때마다 우리 딸 힌드를 생각해요.”

가랑비를 맞고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다른 이의 시야를 가릴세라 몸을 웅크린 채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가족들의 끔찍한 학살 증언이 쉴 새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자 전쟁 발발 2년이 되던 2025년 10월7일, 시민 70여 명이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 모여 알자지라의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는 밤’(The night won’t end)을 시청했다. 다큐는 2024년 1월 이스라엘군의 총알 세례로 가족을 잃고 부상한 6살 아이 ‘힌드 라잡’이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다 숨진 사건을 다뤘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구급차 승인에만 3시간을 끌었고 마침내 승인받고 출동한 구급차에도 총을 쏴 구급대원 2명을 사살했다. 힌드와 마지막까지 통화하던 어머니는 오열했다. “아이가 구해달라며 우는데 구하러 갈 수 없는 게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아가야, 부디 날 용서해주렴….” 이 장면을 보던 한국 시민들도 눈물을 훔쳤다.

2025년 10월7일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연대 시민들이 알자지라 제작 다큐 ‘끝나지 않는 밤’을 시청하고 있다. 화면에 나온 어린이는 이스라엘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도 구조되지 못해 숨진 6살 어린이 힌드 라잡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5년 10월7일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연대 시민들이 알자지라 제작 다큐 ‘끝나지 않는 밤’을 시청하고 있다. 화면에 나온 어린이는 이스라엘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도 구조되지 못해 숨진 6살 어린이 힌드 라잡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스라엘군의 비인도적 전쟁 범죄

 

가자 전쟁 2년 동안 6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죽었다. 이 중 2만 명이 18살 미만 아동·청소년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병원과 학교, 피란촌을 가리지 않고 폭격했다. 식수와 전력 차단은 물론 가자로 들어가는 구호물자까지 끊어 주민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었다. 식량을 배급받으려는 이들을 총으로 쏴 수백 명씩 사살했다. 폭격과 굶주림 등으로 가자의 아이들은 매일 28명씩 죽어가고 있다.(유니세프 2025년 8월 발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한국의 시민들이 이날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폭력의 증인이 돼 기억·기록·공유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가자의 고통을 나누고 연대를 다짐하는 자리에 한겨레21도 함께했다.

“저는 2년 전에야 기나긴 인종 청소의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팔레스타인에서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가는데 제 일상이 너무나도 편안한 게 죄책감이 남더라고요. 전쟁 1년 추모 집회에서 굶어 죽은 아이 이름을 적는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맘때가 되니 다시 생각나서요. 그 아이들 이름을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2023년생 마리암 와샴 앗-샤아라위, 2024년생 터우픽 아사아드 터우픽 루칸입니다.” 연대 시민 ‘검은’(이하 활동명)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려 참석자들이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려 참석자들이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이날 비질에 참석한 시민들에겐 저마다 그런 계기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이 올리브를 따러 가려면 검문을 통과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가 편안히 누리는 일상이 왜 이들에게는 불가능한가’ 묻게 됐죠. 미약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도움을 보탤 수 없을까 해서 집회에 나오게 됐어요.” 경기도 수원에서 온 인권교육 활동가 ‘상드’가 말했다. “한 어린이가 폭격 속에서 엄마를 울면서 찾는 소리를 영상으로 접하게 됐어요. 몇 명이 얼마나 죽었다는 숫자적 정보보다 고통받는 소리를 직접 들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연대 시민 ‘딸둥’이 말했다.

개신교인으로 살며 무슬림에 편견을 가졌음을 고백한 참석자도 많았다. “15개월 뒤면 환갑이 되는 옥성호라고 합니다. 40년을 개신교인으로 살다보니 이스라엘인은 의롭고 훌륭한 사람들이고 이슬람은 다 악마, 괴물, 테러 집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시온주의 창시자를 알게 돼 이스라엘이 그간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인식이) 막 깨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더 이른 나이에 현실을 알고 여기 나와주신 걸 보면 정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재생산 정의도 없다’

 

한번 알아차리니 일상의 많은 것이 전쟁과 연결돼 있었다. “케이팝에 관여하는 미국 쪽 시온주의자가 많아요. 케이팝은 마치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 대중을 사로잡는데 그 이면의 이야기를 알고 나서 더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작은악마’) “취미 작가인데 트위터에서 팔레스타인을 조롱하는 그림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 그림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연대 시민 A) “2023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을 만났는데 활동가님들이 자몽 음료수를 보고 ‘이스라엘산 아니냐’면서 성분표부터 보시더라고요. 팔레스타인과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연결하려 하는 투철함이 인상 깊었습니다.”(팔레스타인평화연대 미음 활동가) “퀴어 문화 축제에서 핑크워싱(이스라엘이 퀴어친화적인 국가로 선전하는 것) 개념을 처음 알았습니다. 퀴어친화적인 척하면서 사람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어요.”(연대 시민 케이)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젠더·노동 등 다른 사회운동에도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어 타리 활동가는 개인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운동이 탈식민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발견했다. “ 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허용되는 퀴어의 권리에 고민이 깊을 때였어요. 이것이 왜 아랍 세계나 무슬림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와 연대하고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이 저를 바꾸는 활동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 운동이 퀴어 운동과 별개가 아니라 한 몸이 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토착민의 생태계가 뿌리 뽑히는 시대에 개개인의 재생산권이 온전히 보장될 리 없다.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이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손쉽게 살해하는데 생명 존중이 될 리 없다.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임신 중에도 물과 의약품, 위생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는 이런 일들이 모두 “재생산하는 몸을 겨냥한 폭력”이라며 “참상을 끝내고 모든 삶이 그 자체로 귀하게 여겨지는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힘쓸 것”이라고 선언했다.(10월2일 선언문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 정의도 없다’)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비질 ‘끝나지 않는 밤’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리나가 가자에서 죽은 친척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울음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비질 ‘끝나지 않는 밤’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리나가 가자에서 죽은 친척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울음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노동운동도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연대 시민 ‘스테키’는 최근 현대차 구사대 비정규직 폭행 사건이 있었던 현대그룹이 이스라엘에 굴착기(HD현대건설기계)도 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굴착기는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만드는 데 쓰였다. “현대·기아그룹은 비정규직 불법 파견과 구사대 폭력 부당 징계 등 문제가 정말 많은 기업인데요. 제가 (현대) 트위터 계정을 찾아내서 만행을 규탄했더니 다른 분들도 ‘현대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고 있다’면서 같이 규탄하고 계셨어요.”

다른 나라 주민을 억압하는 기업이 노동자를 존중할 리 없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시민 조찬우씨는 “평소 노동해방을 외치면서 살아가지만 우리가 당장 마주한 사업장 문제뿐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을 통해서도 모든 이가 자유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려 참석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10월7일 밤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평화행동 주최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맞아 ‘10월7일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을 보내는 비질 ‘끝나지 않는 밤’’이 열려 참석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확산하는 국제 연대는 직접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평화 활동가 해초는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가자 주민들을 도울 구호품을 실은 ‘천 개의 매들린호’ 가자 구호 선단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탑승했다(관련기사☞ “국가가 하지 않는 것을 민간인이… 해초 석방, 한국 정부가 촉구하라”). 이스라엘이 구호품 육로 공급을 차단하자 150여 명의 평화활동가가 해상으로 전달하려 한 것이다. 해초 활동가는 10월8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앞서 10월1일 먼저 구호물품을 싣고 간 ‘글로벌 수무드 함대’(GSF)도 이스라엘 당국에 나포됐다. 그레타 툰베리 등 470여 명의 활동가 대부분이 구금된 뒤 추방당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국에만 갇힐 수 없어요. 우리가 ‘한국만의 평화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는 달성될 수 없으니까요. 극우세력들이 개별 국가의 해결만을 얘기하는 시대에 평화를 위한 수많은 사람의 국제 연대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해초님도 가자지구에 음식을 전달하러 갔잖아요. 그렇게 서로의 해방이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멈추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해방 시위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0월4일(현지시각) 영국에서 시민 400여 명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갔다. 영국 경찰은 “집회가 반복되면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도 냈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10월8일 평화 활동가들이 이스라엘대사관을 향해 “체포된 활동가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외치자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계장은 “대사관 100m 이내 구역은 집회가 금지된다. 계속 구호를 외치면 불법 집회로 간주한다”고 엄포를 놨다.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은 해초 활동가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되자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여행 금지 지역을 방문하면 여권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음을 고지하려 했다”고 밝혔다. 국제법을 위반하는 이스라엘은 그대로 두고 평화운동만 통제하겠다는 취지다.

‘가자선단 나포 및 활동가 구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2025년 10월8일 서울 중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즉각 민간 선박 나포를 중단하고, 활동가 구금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가자선단 나포 및 활동가 구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2025년 10월8일 서울 중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즉각 민간 선박 나포를 중단하고, 활동가 구금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시민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 가자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을 막지 못하면 언제든 다른 나라도 비극에 처할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큐 ‘끝나지 않는 밤’에 출연한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규칙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순간 규칙은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 (가자 학살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우리가 만들어온 모든 규칙이 무너졌고 이제는 다시 써야 한다.”

“칼라마르 사무총장의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어요. 한국 사회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 여겨서 관심이 덜하거나 냉소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사실을 이해하면 생각이 달라지는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한국은 20세기에 식민 지배와 전쟁, 국가폭력을 모두 경험했죠. 그렇기에 점령과 지배, 학살로부터 해방된 민주적 국제 체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거예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김원 활동가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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