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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하지 않는 것을 민간인이… 해초 석방, 한국 정부가 촉구하라”

“이스라엘 쪽, 구금 활동가들에게 길면 36시간 동안 물·음식 제공 안해”…‘개척자들’ 등 평화단체 활동가들 기자회견 열고 활동가 구금 해제 촉구
등록 2025-10-08 15:28 수정 2025-10-20 11:49
‘가자선단 나포 및 활동가 구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2025년 10월8일 서울 중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즉각 민간 선박 나포를 중단하고, 활동가 구금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가자선단 나포 및 활동가 구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2025년 10월8일 서울 중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즉각 민간 선박 나포를 중단하고, 활동가 구금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해초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이스라엘 감옥에 구금될 예정입니다. 심문 동안 길면 24시간에서 36시간 동안 물과 음식이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활동가들에게는 벌레가 우글거리는 침대에서 잠을 자게 하기도 하고, 2시간마다 한 번씩 깨워서 일종의 고문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머리를 바닥에 박게 하고 손은 묶은 채 심문을 기다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해초는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해초를 걱정하는 것처럼 해초 역시 그 상황에서 마음에 많은 부대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혜영 강정친구들 활동가가 말했다.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가자 주민을 위해 구호물품을 싣고 떠난 한국인 활동가 ‘해초’(활동명·27)가 탑승한 배가 2025년 10월8일 정오께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등이 밝혔다. 해초는 ‘천 개의 매들린 호’ 가자 구호 선단에 함께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해초가 소속된 평화 단체 ‘개척자들’은 이날 서울 중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선단 나포 및 활동가 구금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낮 12시 현재 (해초를 태운) 알라 알 나자르호가 나포되었다. 선원들은 수감 시설로 이송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스피아 매니저는 이어 “수감된 선원들은 자진 추방을 요청할 것인지 아니면 법적 절차를 밟아 추방당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이를 모든 경로를 통해 알리고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불법 체포를 지탄하고 해초를 조속히 석방하도록 촉구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 했다. 알리 알 나자르호의 명칭은 2025년 5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자녀 9명을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해초 활동가는 나포 전 마지막으로 동료들에게 연락해 “오늘 새벽 2시에 위험구간으로 향하는 항해를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항상 나포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자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처음으로 새를 봤다. 제게 이런 생명은 좋은 징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너무 걱정 마시고 약속드린 대로 한국에 눈이 내리기 전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송강호 활동가는 “건강해 보였지만 서글퍼 보였다. 옷도 깨끗이 갈아입고 뭔가 준비를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함께 가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을 향해 △구금자를 즉시 면담하고 변호사 조력을 받게 할 것 △구금된 활동가들이 필요 물품을 제공받도록 조처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한국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에 강력 항의할 것을, 이스라엘을 향해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중단하고 가자 봉쇄를 즉각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가자 전쟁 2년째가 되는 2025년 10월7일께, 30개국 출신의 150여 명 활동가들을 태운 ‘가자로 향하는 천개의 매들린 호’가 가자 인근 해상에 접근했다. 알리 알 나자르호는 이 선단에 참여한 배 11척의 일원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이 가자로 들어가는 구호물품의 육로 공급을 막자 해상을 통해 구호물품을 전달하려 했다. 앞서 지난 10월1일 먼저 구호물품을 싣고 가자 해상에 도착한 글로벌 수무드 함대(GSF)도 이스라엘 당국에 나포됐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스웨덴 구호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을 포함해 479명의 활동가 대부분이 구금됐다가  추방당했다. 현재는 7명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도 2년 넘게 학살을 지속하는 이스라엘과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를 규탄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많은 국가들이 성명을 발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학살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모였고, 해초님을 비롯한 평화 활동가들이 가자 지구에 구호물품을 전달하러 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국가가 하지 않는 것들을 민간인들이 하기 위해서 떠났는데 이스라엘은 이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성희 강정 평화활동가는 “강정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학살될 때 그 소멸과 멸절에 저항하는 것을 배웠다. 제주의 평화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의 평화, 대만의 평화, 모든 사람들의 평화야말로 진정한 평화라는 것 누구도 소외시키고 멸절되도록 방관하지 않는 것이 평화임을 배웠다. 그것이 강정의 친구 해초가 떠난 배경”이라고 말했다.

자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마들린이 무슨 의미일지 알고 싶어 찾아봤다가 가자 최초의 여성 어부 이름임을 알았다. 마들린은 원래 디자이너를 꿈꾸던 소녀였지만 이스라엘 해군의 공격으로 아버지가 부상을 입자 아버지의 배를 직접 모는 어부가 됐다”고 설명했다. 자두 활동가는 이어 “자유함대연합이 ‘천 개의 마들린’의 이름을 붙였을 때 이는 팔레스타인 민중 전체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또 하나의 마들린을 막아섰지만 앞으로도 수십, 수백개의 마들린이 가자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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