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재난이란 그저 하루빨리 수습하고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부턴 ‘계속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유해정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작가가 ‘피해자의 눈’을 통해 보는 참사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는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유 작가는 “정부의 참사 대응 행정이 어땠는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참사로 무엇을 상실했고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에 관한 서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다. 정부가 선포한 ‘국가애도기간’이 끝나고 이태원역 근처 상점도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참이다. 얼굴을 드러내고 나와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입을 통해서다.
이태원 참사가 ‘계속 기억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과거 참사 피해자와 연구자 등 8명의 이야기를 두루 들어 정리했다.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서 ‘아빠, 나 합격했어’ 하고 울먹이던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날아왔는데 너는 갈 수가 없구나.”
2022년 11월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첫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강남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 참사 희생자 이상은(26)씨의 아버지가 기자들 앞에서 딸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목이 메었다. 그는 상은씨가 “맞벌이하는 부모가 걱정할까봐 투정 한 번 하지 않은 딸”이었다며 “살아 있을 때 더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날 김인홍씨와 이지한씨, 이민아씨 등 참사 희생자 6명의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들의 생애를 꺼내놓아 소개했다.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24)씨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한씨가 어머니를 위해 부른 노래 음성파일을 들려주며 “지한이가 이렇게 저와 추억이 많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희생자를 애도한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가 그들의 죽음으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산 자의 애도는 죽은 자와 관계성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사회적 참사와 애도에 대해 오래 연구한 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의 말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가운데 대다수는 참사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구체적인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익명으로 남아 있다. 미국 켄터키주립대학 학생 앤 기스키(20)씨 등 외국인 희생자들의 생애가 미국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고 켄터키주립대학 등이 추모식을 따로 열었던 것에 견줘보면, 한국 희생자에 대한 공개 추모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참사를 희생자 책임으로 모는 2차 가해가 퍼지며 실명 공개를 꺼린 분위기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정부가 유족들에게 신상 공개와 관련한 의사를 묻지 않은 탓이 컸다. 대통령실은 참사 직후인 10월30일 국가애도기간을 긴급 선포하면서 분향소에 희생자 신원을 담은 위패와 영정사진을 따로 비치하지 않았다. 민변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은 “어떻게 위패도 영정도 없이 분향소를 차리느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문화연구자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학과)는 “우리 사회가 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을 정부가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공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도리어 애도하는 방식을 국가가 통제하고 지정하면서 추모 담론이 실종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6가지 요구안도 내놨다. 먼저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가 아닌 정부와 지자체, 경찰에 있다’는 명확한 입장을 정부가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2차 가해에도 단호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유가족을 보호해달라고 했다. 아울러 △유가족과 생존자를 포함한 참사의 모든 피해자가 서로 소통할 기회와 공간을 보장할 것 △희생자 이름 공개 의사를 유족에게 신속히 확인해 추모 대책을 마련할 것 △성역 없이 책임자를 조사할 것 △피해자 참여를 보장하는 참사 전후 진상규명을 할 것도 요구했다.
참사 24일 만에 나온 요구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유가족에게 희생자 명단을 제공하지도, 유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하지도 않았다. 유가족들이 처음 모인 것은 11월15일 민변 쪽이 주도한 유가족 간담회로, 이미 참사 17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통상 참사 유족들은 합동분향소나 정부 브리핑 참석 등으로 한데 모이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이태원 참사의 경우 희생자가 여러 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세월호 참사의 단원고등학교처럼 공통으로 속한 집단도 없어 유가족끼리 만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다른 유가족들을 몇 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비밀공작 하듯이 말이에요. 가장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서로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은 유가족인데 (서로) 만날 기회를 차단했습니다.” 희생자 이민아씨 아버지의 말이다.
유가족이 모였다는 것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진상규명을 향한 구심점이 생겼다는 뜻이다. 채경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단체 ‘빅팀스’ 사무국장은 “남은 의혹을 진상규명하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유가족들이 서로를 빨리 확인하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정부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피해자들한테 명단을 안 줘서 피해자들끼리 힘을 합치거나 중지를 모으기 어려웠는데 이태원 참사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뒤늦게 정부는 관련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유가족 만남을 실무 선에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국가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유가족) 대응 방법을 터득하지 않았겠느냐. 신속하게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희생자를 탓하는 여론을 방치하고 유가족들은 따로 못 모이게끔 하는 대응 방식 말이다”라고 말했다.
정권을 향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유가족은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커진다. 박상은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은 “재난은 그 자체로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정치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체제 유지를 원하는 정부·기업이나 사태에 책임 있는 이들이 유가족의 요구를 억압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이 무분별한 인신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희생자 고 김형주씨의 딸 김선애씨는 2년 전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한창 뜨겁던 시기에 유명 정치인이 빈소에 방문했다가 유족들과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직후 그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유족을 욕하기 시작하면서 여론이 돌아서고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이태원 참사도 유족 배·보상 논의가 시작되자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이 출현했다.
진상규명을 향한 지난한 싸움의 과정에서 유족들이 고립되기도 한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족 대표 민동일씨는 “처음에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다 ‘(진상규명)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시간 지나니 나 몰라라 하더라. 누굴 벌주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자세히 밝혀서 재발방지를 하자는 건데 실상은 가장 절박한 사람들(유가족)만 마지막까지 싸우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족들이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도록 옆에서 지지하는, 사회적 참사에 대응하는 시민사회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해정 작가는 “유족들이 익명에 기댄 온라인 악성 댓글을 읽고 상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그들의 목소리를 언론에 노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고 교감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간 사회적 참사는 일상 복귀를 외치는 조급한 목소리 속에 쉬이 잊혔다.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끝까지 요구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전문가들은 참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연대를 꼽는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평화교양대학)는 “세월호의 경우 기성세대의 죄의식과 더불어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굉장히 넓었고 진상규명의 사회적 장애물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태원 참사도 그런 힘이 모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시험대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가득 채운 꽃과 편지를 어디서,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다. 추모공간을 혐오시설로 취급해 외곽으로 밀어내고 추모비만 겨우 세우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추모공간은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를 포함해 그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참사를 기억하고 자기 자신과 연결 짓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더욱 시민들 일상 속에 있어야 하는데 상인 등 지역공동체가 그 불편을 견디고 감수할 힘이 있을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시민의 일상 공간에 추모공간을 만든 사례는 경기도 안산시 도심에 짓고 있는 4·16생명안전공원이 유일하다.
용산구청은 이태원역 앞 추모공간을 임시로 유지하는 한편 11월18일부터 시민자원봉사자단체 ‘이태원 추모 시민자율봉사위원회’, 서울시 등과 어떻게 기록물을 보존하고 참사를 기록할지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작점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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