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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가 만든 우주적 위기, 우리 모두 ‘포스트휴먼’이 되자

포스트휴머니즘의 실존적 실천론, ‘미로에서 출구 찾기’
등록 2026-04-30 21:29 수정 2026-05-04 17:42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한 대부분의 저작이 그렇듯이, ‘미로에서 출구 찾기’(원제 ‘The Art of Being Posthuman, 프란체스카 페란도 지음, 송은주 옮김, 동녘 펴냄) 또한 드넓은 행간 사이로 익숙지 않은 개념어들이 예고 없이 출몰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이 그만큼 21세기를 대표하는 전위의 사조라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머니즘의 낯섦은 짧게는 근대 이후, 길게는 고대부터 인간이 켜켜이 쌓아온 지식의 기둥이 ‘인간중심주의’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그 기둥이 구성한 위계적 세계관(존재론, 인식론, 윤리)을 해체한다. 위계는 인간 종(種) 내부뿐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해왔다. 저자는 “우리의 생존은 무한한 생태적, 기술적, 우주론적 역학에 의해 지탱된다”는 공존적·공생적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관의 지평을 펼친다.

우주론까지 나오니 언뜻 공상적으로 비치지만, 외려 철저히 현실적이고 유물론적이다. 무엇보다 인류세의 팬데믹과 기후위기, 고삐 풀린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등 인간중심주의가 만든 경계들의 미궁 같은 교란 사태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더는 ‘휴먼’이 아니다. ‘포스트휴먼’이다. 포스트휴먼은 21세기의 실존적 주체다. 그러나 실존적 포스트휴머니즘은 20세기 실존주의와 달리 인간 주체를 강조하지 않는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선언이 있지만, 포스트휴먼 관점에서 인간은 중심 주제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 내 존재의 공명, 정동, 영향을 아우르는 자연-문화적 수렴이다.”

포스트휴머니즘 관련 저작으로서 이 책의 차별성은 이 세계관의 실천성을 천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을 탐색하는 길로서 포스트휴머니즘은 윤리적 실천과 더불어 실존적 여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각별히 철학적 그린워싱을 경계한다. “예를 들어 생명권에 해로운 습관을 바꾸는 대신 그 문제를 가지고 토론만 할 때 철학적 그린워싱이 일어난다.”

책의 구성이 ‘명상 수련’의 형식을 띠는 것도 실천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모두 8개의 명상 주제가 제시되고, 하나의 명상 주제마다 10개 안팎의 해시태그와 함께 질문과 대답 형식의 전개가 이뤄진다. “포스트휴먼 수련은 핵심적인 윤리 시나리오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삶에 대한 현대 철학들은 대체로 행동의 철학이다.” 404쪽. 2만6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10대를 위한 정답 없는 인권 이야기
앙겔리카 누스베르거 지음, 로트라우트 주자네 베르너 그림, 유영미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1만6800원

인권 하면 무언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겪는 선택의 언어다.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부딪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같은 것인데, ‘완성된 정답’은 없다. 균형을 찾아가는 살아 있는 약속일 뿐. 유럽인권재판소가 다룬 33가지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 종교, 평등, 사생활, 기후 같은 권리가 충돌하는 순간을 따라간다.


나이 묻는 사회
정회옥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만원

스스로 젊거나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착각하면서 꼰대짓을 일삼는 40대를 이르는 ‘영포티’는 멸칭일까, 아닐까? ‘할매미’나 ‘잼민이’는? 틀딱충, 연금충, 개저씨, 김여사, 급식충, 초글링 등 연령과 세대를 가리키는 멸칭으로 서로 조롱과 경멸을 주고받는 한국 사회 ‘나이 전쟁’의 실체를 유쾌하게 파헤쳤다.


흉담
전건우 지음, 래빗홀 펴냄, 1만7천원

드라마 ‘살롱 드 홈즈’의 원작자로, 18년 동안 호러·미스터리·스릴러 등 한국 장르소설 전방위를 아우르며 활동한 전건우의 신작 장편소설. 들은 자에겐 악귀가 찾아와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 일명 흉담의 정체를 밝혀 저주를 풀고, 서슬 퍼런 음모를 파헤치는 사특한 이야기가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농업 고수
가나이 마키 지음, 도호 마사노리 취재 도움, 정영희 옮김, 상추쌈 펴냄, 1만6천원

수직 재배 농법을 창안한 도호 마사노리의 무용담에 더해, 이 농법으로 자신의 논밭을 가꾸는 각양각색 실천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핵심은 비료를 줄이는 것이다. 비료를 끊고 식물 스스로가 에너지를 더 활발하게 순환시킬 때 나무와 채소는 건강해지고, 열매는 풍성해지고 맛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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