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아마존 한복판에 ‘포드란지아’를 세웠다. 자동차 타이어 생산에 필요한 고무의 안정적인 공급을 목적으로 지어진 이 도시는 정글 속에 공장, 병원, 골프장까지 미국의 것을 이식했다. 화목한 가정을 기반으로 한 결점 없는 도시를 지향했던 포드는 직원들의 음주, 도박, 사창가 출입을 불허하며 사생활을 통제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그의 새로운 유토피아는 결국 처참히 무너졌다. 정글의 생태와 원주민의 문화를 무시한 채 자본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려 했던 오만함 때문이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 또한 유토피아를 꿈꿨다. 실제 그는 남편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함께 파라과이에 유대인이 없는 아리아 사회 ‘누에바 게르마니아’를 건설했다. 유럽 문명의 타락과 혼혈 사회를 거부한 이들은 노동과 규율, 금욕과 민족적 순수성을 기반으로 한 폐쇄적 독일 사회를 이상향으로 삼았지만, 역시나 실패하고 말았다.
‘네, 그런 곳이 정말 있습니다’(페데리코 구스만 루비오 지음, 조구호·남진희 옮김, 알렙 펴냄)는 멕시코 작가이자 문학 연구자인 저자가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했던 ‘실패한 유토피아’의 흔적들을 따라가는 책이다. 미국식 산업도시 ‘포드란지아’, 독일인들의 인종우월주의 공동체 ‘누에바 게르마니아’는 물론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들이 브라질에 세운 공동체 ‘콜로니아 세실리아',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기반으로 이상 공동체를 꿈꿨던 ‘예수회 선교구’, 혁명과 예술이 공존했던 니카라과의 ‘솔렌티나메’, 멕시코시티 외곽 쓰레기 매립지에 지어진 신자유주의적 미래도시 ‘산타페’ 등 7개 도시를 통해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어떻게 소비되고 변질됐는지 돌아본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동명의 소설에서 그려낸 ‘이상향 사회’에서 유래했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체계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꿈꾼다.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실험해온 이유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는 유토피아의 본래 뜻처럼 실패하거나 변질됐다. 그렇기에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지은이는 완벽한 사회가 현존하지 않을지라도,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폐허가 된 이상향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성찰하게 하는 반면교사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340쪽, 2만원.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제복 입은 시민
이재승 지음, 앨피 펴냄, 2만8천원
법철학자가 군인 인권과 군사법제를 주제로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내란과 계엄 문제를 비롯해 군인의 표현과 독서의 자유,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전쟁 저항, 군대 내 자살과 폭력 문제 등을 다룬다. “제복 입은 시민이란 민주적 가치에 충성하는 시민으로서 무기를 든 결연한 존재”이며 “헌법과 민주주의에 충성하는 국민의 군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박설영 옮김, 김영사 펴냄, 1만7800원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난민 출신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타자성’에 몰두해온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보며, 타자에 대해 쓴다는 것의 의미와 윤리 등 수많은 면을 집요하고 방대하게 묻는 자서전이자 문학비평서다. ‘희비극이 교차하는 타자성의 즐거움’이라는 부제가 상징하듯, 타자성은 혼란과 고통을 주면서도 예술과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국가선택
우원규 지음, 미래의창 펴냄, 1만8천원
국가는 더 이상 개인에게 맹목적인 희생이나 충성심을 강요할 수 없다. 전세계 대부분 국가가 젊은 인구의 급감을 동시에 겪고 있는 탓이다. 그 거대한 전환을 각국의 사례로 포착한다. 어떤 나라는 조용히 버림받고, 어떤 나라는 전략적으로 선택받는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이는 한국과 한국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방향을 제시한다.

오월의 초상
김민정 찍고 씀, 눈빛 펴냄, 4만원
5·18 민주화운동 유족과 생존자 60명의 초상 사진과 그들의 증언을 엮은 사진집이다. 5·18 광주 지역 첫 사망자인 김경철의 어머니 임근단씨, 도청 앞에서 남편을 잃고 시신을 놓치지 않으려 주검 썩는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웠던 정동순씨, 첫딸을 출산한 날 남편의 계엄군 총격 사망 소식을 마주해야 했던 고선희씨 등의 모습과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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