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만의 여성 사형수, ‘검은과부거미’의 진짜 이야기

‘희대의 패륜 며느리’를 역사에 편입시킨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
등록 2026-05-14 21:55 수정 2026-05-20 17:57


린위루(45)는 대만에서 연쇄살인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여성 사형수다. 보험금을 타내 도박빚을 갚으려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남편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고, 2013년 사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검은과부거미’(짝짓기 뒤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 ‘희대의 패륜 며느리’라는 낙인으로 대만 사회에 박제됐다.

기자 후무칭(43)이 린위루가 수감된 교도소를 찾은 건 그러고도 9년이 지난 2022년 6월이었다. “(그녀가) 끝내 제대로 질문받지 못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이 말은 사건의 진실이 수사기록, 판결문, 언론 보도에 박제된 것과 다를 개연성을 전제한다. 린위루도 사형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과 별개로 이렇게 묻는다. “왜 언론은 저를 그렇게 보도해야 했나요?”

후무칭은 2년 남짓 린위루를 접견하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척과 이웃, 수사 관계자와 참고인, 교도관과 심리학자, 사형제 폐지 운동단체까지 취재했다. 무시로 의심과 후회,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침략자는 늘 린위루였다. 그는 자기감정에 따라 상황을 쥐락펴락했고, 더러 진술 내용에 심각한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수시로 돈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김주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그 고압선을 타고 나왔다. 공식적으로는 ‘후무칭 지음’이지만, 실은 린위루와의 공저다. 상·중·하 가운데 중편이 린위루가 후무칭의 권유로 쓴 자서전이다. 연쇄살인범 ‘검은과부거미’가 털어놓는 이야기라니, 너무나 통속적이지 않은가.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구분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사형이 확정되고 십수 년이 흘렀다. 보험금을 노린 게 아니라 그야말로 살인적 폭력에서 탈출하려는 최후 수단이었다는 주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서전은 당사자의 진술과 공식 기록을 대조해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이 사건에서 놓친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다름 아닌 사회구조가 강요하고 편견으로 재구성한 범죄다.

후무칭은 린위루의 자서전을 앞뒤로 감싸며 수사와 재판, 언론 보도 등의 문제를 들추고,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거름망 삼아 사건의 본질을 길어올린다. 그리하여 자칫 유별나게 불행한 한 여성의 생애사로 끝났을 이야기를 대담하고 생생한 여러 목소리를 담아 당당히 역사에 편입시킨다. 436쪽, 2만5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영화에 관하여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윌북 펴냄, 2만2천원

윌북의 수전 손택 에세이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써온 영화에 관한 글이 담겼다. 오즈 야스지로, 장뤼크 고다르, 잉마르 베리만 등 감독과 영화에 관한 비평부터, 영화감독으로서 고민이 담긴 인터뷰, 영화와 소설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과 영화 역사의 한 세기를 돌아보는 글, 손택이 꼽은 최고의 영화 톱10 등을 만날 수 있다.

 


5475일, 집으로 가는 먼 길

이종수 지음, 바틀비 펴냄, 2만원

분양사기를 당한 380가구가 15년간 싸운 끝에 1천억원대 잔금을 납부하지 않고 아파트 소유권 등기를 쟁취한 승전의 기록이다. 시행사 허위광고, 시공사 부실공사, 지방자치단체의 수수방관, 사기업과 야합한 국세청의 부당 징세, 법원의 기득권 친화, 파산관재인의 횡포에 맞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5475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력과 복종

강준만 지음, 이글루 펴냄, 2만원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정치 비평서.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은 오랜 세월 권력을 태양처럼 숭배한 사회였고, 여전히 ‘제왕적 우두머리’ 저주의 늪에 빠져 있다. 산증인이 김건희를 신성불가침 영역에 모셔놓고 12·3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다. 이제 정의롭지 못한 ‘복종’과 ‘순응’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탈출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초록

김태훈 지음, 준초이 사진, 남해의봄날 펴냄, 2만3천원

스물다섯 나이에 한반도 땅을 밟은 고 임피제 신부는 평생을 제주에서 가난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던 주민들의 고단함을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굶주림에 지치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힘과 희망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겨, 황무지 땅을 드넓은 초원으로 만들었다. 70년 전통 성이시돌목장의 시작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