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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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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미치광이들

가수 이랑이 쓴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등록 2026-03-19 20:56 수정 2026-03-21 11:05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고 있는 가수 이랑.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고 있는 가수 이랑.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가수 이랑은 재주가 많다. 노래를 만들고, 단편영화를 찍고, 만화를 그린다. 에세이집만큼 네컷 만화책도 갖고 있다. 이랑 이전에는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가사로 노래를 만들듯이 글도 잘 쓴다. 그 잘 쓴다는 글은 전형성의 글이 아니라 ‘미친년’의 글이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야기장수 펴냄)는 비약하는 논리로 중얼거리고, 생경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포용하는 미친년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미친년들’ 중 첫 번째로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대학교 때 정신과를 찾아갔다. “삶의 의미를 못 찾겠어서”. 부모를 모셔오라고 해서 엄마의 엄마와 함께 다시 찾아갔다. 엄마의 엄마는 집안사람들에게 “저년 때문에 내가 정신과를 다 갔다 왔다”고 했고, 엄마의 오빠는 ‘우리 동생이 미쳤는데 네가 잘해봐라’라며 친구를 떠밀었다. 그렇게 엄마는 결혼했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산에 가서 고함을 지르면 ‘화병’이 낫는다 해서 그렇게 하다가 강간범에게 맞아 입원한다. 그 뒤 장롱 속에서 이불에 고함을 지르고 가래를 뱉었다.

‘미친년들’ 중 두 번째로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우선 분홍색과 하트에 미쳐 있었다. 장녀 콤플렉스가 있는 언니는 일하지 않는 아빠와 일해본 적 없는 엄마, 두 아들(외삼촌)에게 돈을 다 줘버려 빈털터리가 된 외할머니를 부양했다. 외할머니 병원비도 모두 언니 몫이었다. 미국의 사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알림장’을 써서 돌리려 했지만, 자살한 뒤 고치고 고쳐서 예의 바르게 늘어진 ‘알림장’이 발견됐다. 이랑의 진단에 언니는 ‘소진사’했다. ‘난 견딜 만큼 견뎠고 난 더이상 빚이 없어, 세상에.’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미친년들’ 중 세 번째에 이랑이 있다. 유체이탈을 한다. 어린 시절 괴로울 때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곤 했다. 언니가 쓴 알림장을 바로 사촌들에게 보내버렸다. 엄마가 가래를 뱉은 빨간 플라스틱컵을 물로 헹궈 갖다주었다. 미친년들의 역사를 쓰기 위해 엄마를 인터뷰하고 언니의 기록을 찾았다.

아픔의 대변자가 된 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죽음의 경계에서 구조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오히려 매일 밤 죽고 싶다는 열망과 그 길로 가려는 몸과 마음을 죽도록 참고 있는 것은 나인데, 사람들은 그걸 알까.’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그는 그의 쓸모, ‘미친년’의 쓸모를 조금씩 알아간다. 10년 전 쓴 노랫말처럼 좋은 이야기를 하는 ‘신의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야 그나마 여기서 덜 헤매지 않을까’ 싶어 ‘미친년’ 가이드가 되었다.

“이 앨범과 곡은 제가 남들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할 줄 아는 것뿐인데요,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입니다.”(3집 인터뷰 중) 264쪽, 1만7800원.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인생여전

양성민 지음, 돌베개 펴냄, 1만8천원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20여 년간 조선, 건설, 제조, 농업, 장의, 택배, 시설관리 등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일용직이나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배경은 하나같이 노동인권이 가닿기 어려운 사업장들이지만, 글은 힘과 유머가 가득하다. 읽는 맛이 각별한데,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노하우 등 실용적인 내용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뿡 빵 뻥: 한 글자 의성의태어의 뜻과 꼴

장세이 글, 강병인 글씨, 이응 펴냄, 1만7천원

옷, 꽃, 숲, 꾀…. 발음뿐 아니라 표기의 꼴까지 사물의 특성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단어들이다. 이 책은 그런 특성을 가진 단음절의 의성어와 의태어만을 모아 예리한 영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안목 높은 독자가 한 글자 한 글자 오래 머금다 따듯이 내뱉기를, 뀌고 터지고 차올리던 순간의 환희를 글로서 맛보기를” 기대한다.


흩어진 것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여문주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8천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 내 사망자 수가 최소 1500명을 넘어섰다. 이 시점에 프랑스 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연구소에 소장된 ‘린겔블룸 아카이브’를 연구한 신작이 나왔다. 편지, 일기, 배급표, 사탕 껍질 등 바르샤바 게토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죽어간 유대인들의 무수한 흔적은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질문을 던진다.

 


 

극우의 시대

폴 하이드먼 지음, 신재일 옮김, 이글루 펴냄, 2만원

2016년 ‘트럼프 1기’의 실패 이후,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국회의사당 폭동으로 미국 정치에서 ‘파멸’을 맞을 줄 알았던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보수 이념은 물론 공화당 전체를 자신에게 굴복시키며 재선에 성공했다. 저자는 정당이 기업 엘리트에 굴복하고, 이어 공화당을 굴복시킨 기업 엘리트가 트럼프에 굴복하게 된 과정을 ‘해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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