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고 있는 가수 이랑.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가수 이랑은 재주가 많다. 노래를 만들고, 단편영화를 찍고, 만화를 그린다. 에세이집만큼 네컷 만화책도 갖고 있다. 이랑 이전에는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가사로 노래를 만들듯이 글도 잘 쓴다. 그 잘 쓴다는 글은 전형성의 글이 아니라 ‘미친년’의 글이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야기장수 펴냄)는 비약하는 논리로 중얼거리고, 생경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포용하는 미친년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미친년들’ 중 첫 번째로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대학교 때 정신과를 찾아갔다. “삶의 의미를 못 찾겠어서”. 부모를 모셔오라고 해서 엄마의 엄마와 함께 다시 찾아갔다. 엄마의 엄마는 집안사람들에게 “저년 때문에 내가 정신과를 다 갔다 왔다”고 했고, 엄마의 오빠는 ‘우리 동생이 미쳤는데 네가 잘해봐라’라며 친구를 떠밀었다. 그렇게 엄마는 결혼했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산에 가서 고함을 지르면 ‘화병’이 낫는다 해서 그렇게 하다가 강간범에게 맞아 입원한다. 그 뒤 장롱 속에서 이불에 고함을 지르고 가래를 뱉었다.
‘미친년들’ 중 두 번째로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우선 분홍색과 하트에 미쳐 있었다. 장녀 콤플렉스가 있는 언니는 일하지 않는 아빠와 일해본 적 없는 엄마, 두 아들(외삼촌)에게 돈을 다 줘버려 빈털터리가 된 외할머니를 부양했다. 외할머니 병원비도 모두 언니 몫이었다. 미국의 사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알림장’을 써서 돌리려 했지만, 자살한 뒤 고치고 고쳐서 예의 바르게 늘어진 ‘알림장’이 발견됐다. 이랑의 진단에 언니는 ‘소진사’했다. ‘난 견딜 만큼 견뎠고 난 더이상 빚이 없어, 세상에.’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미친년들’ 중 세 번째에 이랑이 있다. 유체이탈을 한다. 어린 시절 괴로울 때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곤 했다. 언니가 쓴 알림장을 바로 사촌들에게 보내버렸다. 엄마가 가래를 뱉은 빨간 플라스틱컵을 물로 헹궈 갖다주었다. 미친년들의 역사를 쓰기 위해 엄마를 인터뷰하고 언니의 기록을 찾았다.
아픔의 대변자가 된 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죽음의 경계에서 구조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오히려 매일 밤 죽고 싶다는 열망과 그 길로 가려는 몸과 마음을 죽도록 참고 있는 것은 나인데, 사람들은 그걸 알까.’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그는 그의 쓸모, ‘미친년’의 쓸모를 조금씩 알아간다. 10년 전 쓴 노랫말처럼 좋은 이야기를 하는 ‘신의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야 그나마 여기서 덜 헤매지 않을까’ 싶어 ‘미친년’ 가이드가 되었다.
“이 앨범과 곡은 제가 남들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할 줄 아는 것뿐인데요,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입니다.”(3집 인터뷰 중) 264쪽, 1만7800원.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인생여전
양성민 지음, 돌베개 펴냄, 1만8천원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20여 년간 조선, 건설, 제조, 농업, 장의, 택배, 시설관리 등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일용직이나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배경은 하나같이 노동인권이 가닿기 어려운 사업장들이지만, 글은 힘과 유머가 가득하다. 읽는 맛이 각별한데,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노하우 등 실용적인 내용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뿡 빵 뻥: 한 글자 의성의태어의 뜻과 꼴
장세이 글, 강병인 글씨, 이응 펴냄, 1만7천원
옷, 꽃, 숲, 꾀…. 발음뿐 아니라 표기의 꼴까지 사물의 특성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단어들이다. 이 책은 그런 특성을 가진 단음절의 의성어와 의태어만을 모아 예리한 영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안목 높은 독자가 한 글자 한 글자 오래 머금다 따듯이 호 내뱉기를, 뿡 뀌고 빵 터지고 뻥 차올리던 순간의 환희를 글로서 맛보기를” 기대한다.

흩어진 것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여문주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8천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 내 사망자 수가 최소 1500명을 넘어섰다. 이 시점에 프랑스 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연구소에 소장된 ‘린겔블룸 아카이브’를 연구한 신작이 나왔다. 편지, 일기, 배급표, 사탕 껍질 등 바르샤바 게토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죽어간 유대인들의 무수한 흔적은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질문을 던진다.

극우의 시대
폴 하이드먼 지음, 신재일 옮김, 이글루 펴냄, 2만원
2016년 ‘트럼프 1기’의 실패 이후,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국회의사당 폭동으로 미국 정치에서 ‘파멸’을 맞을 줄 알았던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보수 이념은 물론 공화당 전체를 자신에게 굴복시키며 재선에 성공했다. 저자는 정당이 기업 엘리트에 굴복하고, 이어 공화당을 굴복시킨 기업 엘리트가 트럼프에 굴복하게 된 과정을 ‘해명’한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란 “일본과 협의 거쳐 호르무즈 선박 통행 허용 용의”

장동혁 “경선 하도록 해달라”…이정현 ‘중진 공천 배제’ 제동

트럼프 “이란 작전 축소 검토”…“호르무즈는 이용국이 경비해야”

이 대통령, ‘그알’에 “사과하라” 직격 이유…8년째 괴롭힌 ‘조폭 연루설’ 출발점

1회당 평균 이용객 ‘0.98명’…이게 수도권 전철역이라고?

김상욱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 확정

국힘 전 대변인 “이 대통령 조폭연루설 논평 사과…‘그알’도 바로잡길”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20/53_17739970232338_20260320502380.jpg)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

한겨레가 ‘천궁-Ⅱ 대박’ 기사 안 쓴 이유

대전 공장 화재 사망 11명으로 늘어…실종 3명 수색작업 계속










![마침내 극우에 표 던진, 공장노동자 내 어머니 [21이 추천하는 새 책]](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original/2026/0102/20260102502102.jpg)
![‘인류 죽음의 전문가’가 되짚는 남편의 죽음[21이 추천하는 새 책]](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original/2025/1225/20251225502552.jpg)






![[단독] 급식실 ‘1억짜리 조리 로봇’ 수발드는 노동자들… “업무 더 늘어” [단독] 급식실 ‘1억짜리 조리 로봇’ 수발드는 노동자들… “업무 더 늘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19/53_17738796643712_2026031950049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