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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민주주의’ 이후의 정치가 뭔가 석연치 않다 느끼는 당신에게

내란·탄핵 넘어선 정치에 남겨진 숙제를 기록한 ‘광장 비판’
등록 2026-05-28 22:09 수정 2026-06-04 07:58


12·3 내란이 일어난 지 딱 일주일 뒤인 2024년 12월10일. 극한 위기 한가운데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은 법안 두 건을 조용히 합의 처리했다. 상위 1% 주식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한다는 세법 개정안이었다. 금투세 폐지를 주도한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비판에 맞서 “코스피가 4000대를 가게 되면 시장 참여자들도 기꺼이 금투세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코스피는 8000대를 넘어서고 있다. 금투세 재도입 논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광장 비판’(조형근·천정환·연혜원·안희제·홍명교·정고은 공저, 코라초프레스 펴냄)은 내란과 탄핵을 거치며 다시 증명된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와 문제를 다룬 책이다. 조형근은 앞서 언급한 장면이 “민주주의와 불평등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했다. 내란을 막아낸 지금의 국회가 자유시장 경쟁을 통해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를 위한 민주주의에 갇혀 있다는 얘기다. 조형근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하고 있는지 서술하며 “자유시장 경쟁은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형식적 참정권의 부여와 절차적 공정성을 넘어 주권자들 사이에 실질적인 평등을 확보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지금 체제에서 배제돼 있다고 선언한다.

천정환은 내란 당시 계엄포고령에 대학 휴교령조차 없었던 현실을 짚으며 대학이 이미 ‘비정치의 공간’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연혜원은 ‘응원봉 집회’가 퀴어문화축제의 실천에 빚지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다만 ‘더 나은 인간성’과 ‘좋은 시민성’의 언어로 퀴어함을 길들이려는 시도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살핀다. 안희제는 지난 대선 정국에서 2030 남성 보수화의 아이콘이었던 이준석의 세대론을 해부했고, 홍명교는 두 거대 정당의 ‘실패한 민주주의’로 인한 공백을 꿰찰 진보좌파가 어떻게 ‘민주당 하청업체’나 ‘국힘 이중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는지 그 이유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의회 안의 진지’와 ‘현장의 운동’을 결합한 이중 권력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고은은 광장에 등장한 자발적인 연대자 ‘말벌 동지’들의 역동성에 주목하며 이들의 현재진행형 목소리를 기록했다.

내란과 탄핵 이후의 정치가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288쪽, 1만6800원.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지음, 조인석 옮김, 동아시아 펴냄, 2만원

극우를 정치의 중심부가 아니라 일상의 틈에서 추적한다. 대학 캠퍼스, 격투기 체육관, 패션 브랜드, 유튜브 요리 채널, 게임 채팅방처럼 평범한 공간에서 혐오가 어떻게 농담과 밈, 취향과 알고리즘의 얼굴로 번식하는지 분석한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논란처럼, 극우적 감각은 소비 공간과 브랜드 언어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책은 끝내 우리 주변의 익숙한 공간을 가리킨다.

 


노들섬과 세운상가

박경선 지음, 돌고래 펴냄, 2만3천원

오세훈의 노들섬과 박원순의 세운상가라는 두 서울시장의 상징적 도시공간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서울이 어떻게 권력의 얼굴을 새기는 정치적 무대로 재구성되는지 추적한다. 그러나 노들섬 잔디에 앉은 사람들, 세운상가 골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시장의 임기보다 길고 느리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질문이 덩그러니 남는다. 서울이란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뉴 워

아서 스넬 지음, 노승영 옮김, 리더스북 펴냄, 2만3천원

기후위기를 기상학이나 생태학이 아닌 지정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영국의 외교관이자 군사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이었던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흙·공기·불·물) 학설을 빌려, 자원과 에너지를 둘러싼 전 지구적 패권 경쟁에 묵시록적 전망을 제시한다. 공멸의 위기보다 눈앞의 이해에 집착하는 인류의 탐욕이야말로 기후위기 대응에서 최대의 적이다.

 


버린다는 것

송윤지 글·전지 그림, 너머학교 펴냄, 1만6천원

매립지와 재활용 선별장, 농촌과 태평양까지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가며 쓰레기 문제를 ‘분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재활용품이 가난한 나라로 흘러들고, 미세플라스틱이 식탁으로 돌아오는 과정 등을 통해 버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맺기임을 보여준다. 십 대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너머학교 열린교실’ 스물네 번째 책이자, 어른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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