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의 ‘아파트’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며 독재자에 맞서는 민중. 새로운 시민의 등장에 한국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새로운 시민인가? 열광하는 중년들에게는 안 됐지만, 이들은 새로운 주체가 아니다. 광장에서 싸이의 노래가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이들은 싸이의 여성혐오적 가사를 즐기지 않을뿐더러, 2022년 ‘흠뻑쇼’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전국적인 물 부족을 염려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렸던 싸이와 그 지지자들에 대해 청년 여성들은 단호하게 “노”라고 말했다. 그때는 ‘피시충’(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벌레)이라 손가락질당했던 이들이, 지금은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응원봉을 든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감각이 지금, 여기에서 자라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감각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페미니스트,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광장에 나선 이들의 구호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언니네트워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의 연대체인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는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윤석열은 뒤로, 차별·폭력 없는 나라 앞으로” 등을 외치고 있다. 이 구호들의 정점에는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가 자리잡고 있다.
내란의 우두머리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하자는 요구들 사이에서 남성성 비판이 나오는 건 왜일까? 이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여기서 남성성 비판이란 특정 남성을 비난하거나 한국 남성 전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가 남성만을 보편적 인간으로 상정하며 ‘진짜 남자다움’을 상상하고 강요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따라서 이번 내란 사태에서 ‘폭주하는 남성성’을 논한다는 것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었는지, 그리고 ‘총을 찬 남자’라는 남성다움의 판타지에 얼마나 깊이 물들어 있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시계를 2016년으로 돌려보자.(그렇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10년 안에 두 번째 탄핵 정국을 맞이했다. 청와대 터가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깊은 한숨을 쉬어도 괜찮다. 나도 이 문장을 쓰면서 그렇게 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공격에 반대해야 했다. 그를 지키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얼마든지 모욕당하도록 내버려두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모욕이 시민이자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을 폄하하고 공격하는 문화와 그 뿌리를 공유하고 있을 때, 그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스 박’이니 ‘더러운 잠’이니 하는 논쟁에서 치열하게 붙었던 건 이 때문이다.
당시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이자 전 국가정보원장인 박지원은 “100년 내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극우 기독교도들에게 붙어 섬 하나를 쓸어버린 것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내란죄로 감옥에 간 것도, 자기 주머니 챙기느라 국토를 아작 낸 것도 전부 다 남자였는데, 누구도 “100년 내 남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마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성을 보편적인 정치 주체로 상상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니까 2008년에도 2016년에도 광장에 있었던 ‘젊은 여성들’이 2024년에도 자꾸만 ‘새로운 주체’로 재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정치적 주체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광장에선 청년 여성들이 ‘페미존’(Femi-zone,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광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정체성에 따라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어 자신을 드러냈다. 2016년 광장에서 페미존 깃발은 일종의 ‘응원봉’이었다. 이 여성들은 한국 민주주의 속에서 태어난 세대였다. 동시에, 이들이 실천하는 페미니즘은 한국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확장했다. 지난 8년 동안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다시 탄핵을 요구하는 민주 광장에 서 있다. 이번에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남성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서다.
박근혜 탄핵에서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던 건 그가 등에 업고 있던 박정희 신화였을 터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이 신화에는 ‘강력한 남성이 군대 시스템을 바탕으로 세상을 효율적으로 통치한다’는 개발주의의 신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남성 중심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상상력과 제대로 맞붙지 못했다. 윤석열이 계엄을 시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탄핵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총을 든 남자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라는 판타지의 해체다.
윤석열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청년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전략을 통해 보수와 젊은 남성 유권자의 표를 결집했다. 그의 선거 캠페인은 청년 남성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며 이른바 ‘이대남’ 사이에서 ‘석열이 형’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책사를 자임하면서 청년 여성, 페미니스트 때리기 전략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한국형 대안 우파 이준석이었다.
이준석은 마치 큰 그림을 그리며 움직이는 영민한 전략가처럼 굴었지만, 최근 드러나고 있는 건 그 역시 새벽에 홍매화 나무를 심는 구시대적 주술 정치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이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능한 젊은 정치인인 양 날아다니던 이가 코를 후비며 동료 정치인에게 땅을 파게 시키는 모습이 명태균 같은 사기꾼에 의해 만천하에 공개되는, 그런 기이한 이야기 말이다. 이준석의 전문 분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가 열어놓은 폭력의 산업 안에서 성장한 남초 커뮤니티의 파괴적 정서를 활용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를 숙청하고 나니, 윤석열에게는 또 다른 난제가 닥쳐왔다. 실제로 안티페미니스트 전략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백래시(반격) 정치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본인들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정치적 효능감은 딥페이크 성범죄처럼 젊은 여성을 ‘능욕’하고 공격함으로써 쾌락을 누리려는 일부 남성의 패악에 기름을 부었지만, 윤석열은 결국 그들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그들의 ‘석열이 형’이 아니라, 그저 김건희의 ‘좋은 오빠’였으니까.
여전히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성차별적인 정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좋은 오빠’가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리 없다. 티케이(TK·대구경북)에선 아직도 “장가 잘못 가서 망했다”며 윤석열을 애처로워하는 어르신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좋은 오빠’ 윤석열이 모든 정치에서 실패하고 궁지에 몰렸을 때 선택한 마지막 카드가 바로 계엄령 선포다. 덕분에 한국은 딥페이크 선진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21세기에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최초의 북반구 선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윤석열은 스트롱맨(독재자이자 강한 남자)이고자 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 기가 막히게 묘사한 것처럼, 계엄은 단순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해로운 남성성이, 혹은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비열한 남성성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대는 남성연대의 기술이자, 군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다행히 그의 폭거는 무스를 잔뜩 발라 공들여 세운 앞머리만큼도 버티지 못했다. 군사 권력을 통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그의 시도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판단이었는지, 그 취약성을 만천하에 증명했을 뿐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질적으로 변화했음을 증명한다. 그 질적 전화(轉化)에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는 구호는 우리의 싸움이 이제부터 다시 시작임을 시사한다. 혁명과도 같은 시간 뒤에는 반드시 일상의 문화를 바꿔나가는 점진적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2016년 광장 이후 지속된 그 점진적인 전환이 2024년의 광장을 만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응원봉이 빛나는 아름다운 장면만큼이나 역사에 남겨야 할 기록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호를 외쳐본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성차별주의자들을 탄핵하라!”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손희정의 정치 리부트: 낡은 세계는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시절, 구태를 뒤집는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은 시사덕후의 시사 평론.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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