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20일 한 시민이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핫핑크돌핀스 누리집 갈무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라 전시 업무는 동물의 생태·습성에 반하는 것으로, 인간의 동물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과 충돌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도 벨라의 방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여전히 좁은 수조에 갇혀 아쿠아리움 관람객 유치를 위한 중요한 상품으로 취급받고 있다. 피고인의 행위는 방류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양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2026년 5월14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멸종위기 돌고래 벨루가(흰돌고래) 방류 시위’ 항소심에 출석한 황현진 핫핑크돌핀스(핫핑돌) 공동대표는 재판장이 읽어 내려가는 판결문을 묵묵히 들으며 “이 대목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재판 결과는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 “1심의 벌금 200만원보다는 양형에서 진일보한 면이 있지만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이날 법원은 황 대표가 수조에 스프레이형 접착제로 펼침막을 부착한 행위에 대해 공동재물손괴죄에 해당하며, 이런 행위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2022년 12월16일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이 서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벨루가 방류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판결 다음날인 5월15일, 전화로 한겨레21 인터뷰에 응한 황현진 대표는 “2심 재판장이 첫 공판 때부터 동물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보여주며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 감금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해 무죄 판결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심 재판부는 2026년 1월 열린 첫 공판에서 “2022년 당시에도 롯데월드 쪽에서 벨루가(이름 벨라)를 안전히 다른 시설로 옮기거나 방류하거나 논의하던 중 이 사건이 있었다”며 “속된 말로 아직도 아쿠아리움에서 ‘벨라 팔이’를 하는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좀 괘씸하다”고 일갈했다.
대기업인 롯데월드와 해양환경단체 핫핑돌의 ‘법적 공방’은 2022년 12월16일 시작했다. 당시 황 대표 등은 핫핑크색 단체복을 입고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조 앞에 서서 “벨루가 전시 즉각 중단하라” “롯데는 방류 약속 이행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10분 남짓의 짧은 시위는 그걸로 끝이었다. 곧 경호원에게 제지당한 황 대표 등 핫핑돌 활동가들은 펼침막을 걷고 수족관을 나왔다. 그런데 2023년 1월, 아쿠아리움 운영사인 호텔롯데가 “7억여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재물손괴와 업무방해로 황 대표를 형사고소했다.
“전형적인 입막음 소송이죠. 황당한 것은 롯데가 애초 펼침막을 부착한 수조를 보수하는 데 7억3040만원이 들었다고 주장했는데, 그걸 증명하지 못하니 검찰이 결국 ‘불상의 수리비’로 기소했어요. 롯데 쪽이 ‘다시는 벨라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해주겠다고도 했거든요.” 황 대표는 재판부가 손해액 7억여원의 진위를 따지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황 대표의 시위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내렸지만, 2심 재판 과정과 결과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핫핑돌의 소송을 대리한 구본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항소심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롯데 쪽을 꾸짖으며 벨라의 상태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명령했고, 피피티(PPT) 변론까지 수용해줬다”며 “이는 사회적 여론 환기에 큰 도움이 됐다. 선고유예도 매우 이례적인 판결로, 롯데 쪽에 경고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핫핑돌은 고민 끝에 대법원 상고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는 법률심을 해서 실익이 크지 않고, 3년 넘는 소송 대응에 너무 지친 탓이다.

2026년 3월10일 서울동부지법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과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소송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조약골 핫핑돌 공동대표는 “재판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재 벨라의 상태”라고 강조했다. 벨라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흰돌고래 벨루가는 주로 북극 근해에서 서식하며 멀게는 6천㎞를 이동하며 산다. 종종 700~800m 깊이까지 잠수한다. 이런 벨라가 기껏해야 수심 7.5m밖에 되지 않는 수조에 산다는 것 자체가 ‘감금’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조약골 대표의 설명이다. 그래서 핫핑돌은 아쿠아리움이나 수족관이란 말 대신 ‘돌고래 감금시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으로 따지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0.9평짜리 독방에 수감된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닐까요?”
2심 재판부에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역시 “비유하자면 그저 접싯물보다 조금 흥건한 물에 고래를 담아 내놓은 격”이라며 “벨라는 야생 흰돌고래에 비해 근육량이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 야생에서 심해 잠수에 필요한 폐활량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롯데월드 쪽은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조회 신청 확인서에서 “주기적인 분기공(호흡구멍) 검사, 분변 검사, 혈액 검사 등을 진행해 벨라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아쿠아리스트와 형성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긍정강화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며, 사회성이 높은 특성상 사람과 놀거나 상호작용(일반 관람객 공개)을 하는 것이 벨라에게 더 이롭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는 관람객에게 다가와 이마를 문지르거나 입을 벌려 깜짝 놀라게 하는 벨라의 행동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격 또는 상대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흰돌고래는 떼를 지어 사는 사회성 동물임에도 롯데월드가 벨라와 함께 수입한 벨로와 벨리는 2016년, 2019년 각각 폐사했다. 벨라는 좁고 얕은 수조에서 온종일 불빛 아래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그저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롯데월드 쪽은 벨라 방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아직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22년까지라고 했다가, 2026년까지로 약속을 계속 바꾸면서 “그 어느 시설이든 벨라의 안전성이 확보된다면 보낸다는 의지는 확고하다”고 주장한다. 벨라 방류를 위해 2019년 10월 구성했다는 방류기술위원회가 연 2회 지속적인 회의를 하고 있다면서도 구성원과 회의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벨라의 오랜 ‘독방 감금’이 언제 끝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셈이다.

서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시민들이 돌고래를 구경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벨라 방류 촉구 시위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돌고래는 죽어 나갔다. 2026년 1월21일 거제씨월드에서 17살 암컷 큰돌고래 ‘마크’가 폐사한 사실이 4월 말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2014년 개장한 거제씨월드에서 발생한 16번째 죽음이다. 거제씨월드 쪽이 밝힌 사인은 ‘만성 폐렴과 심낭염’이었지만, 황 대표는 “감금된 채 수족관에서 새끼까지 낳고 사람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등 지속적인 돌고래쇼를 강요받은 스트레스 탓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래류의 평균수명이 40살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돌고래쇼장에 갇힌 마크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생을 고통 속에 마감한 것이다. 2026년 5월 기준 거제씨월드 등 5곳에 총 18마리의 돌고래가 갇혀 있어 앞으로도 마크의 죽음과 같은 사건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조약골 대표는 “거제씨월드에서 개장 후 12년 만에 16번째 죽음인 것만 봐도 ‘돌고래 무덤’이란 표현이 틀리지 않는다”며 “2022년 4월 호반 퍼시픽 리솜과 거제씨월드가 자행한 큰돌고래 태지와 아랑의 불법 이송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2025년 3월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 아직도 이곳에 9명(命·목숨 명)의 돌고래가 감금돼 있다”고 짚었다. 정부가 2023년 12월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해 돌고래쇼장이나 수족관 등에서 관람객이 돌고래를 만지거나 접촉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신규 시설에서 고래류 사육도 금지한 것은 거제씨월드 등에서 잇따라 발생한 돌고래 사망 사고가 큰 영향을 끼쳤다.

법이 강화되고 동물권 인식도 개선되고 있지만, 단순히 시설의 동물복지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서 잇단 죽음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지능이 7~8살 어린아이(IQ 70~80)와 비슷한 돌고래가 과연 자유를 박탈당한 감금과 눈요깃거리 전락을 안전하다고 여기겠느냐”고 황 대표는 반문했다. 이어 황 대표는 “인간과 비인간 인격체인 돌고래의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핫핑돌은 ‘마리’ 대신 ‘목숨 명’자를 쓴다”며 “고래뿐 아니라 최근 (늑대) 늑구를 포획해 동물원으로 돌려보낸 사례에서도 보듯, 인간의 보호 아래 있으면 최소한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식의 시혜적 논리가 과연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앞바다에서 뛰어노는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이 가운데는 2013년 방류된 ‘제돌이’도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우리에게 돌고래 방류의 ‘벅찬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감금돼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그의 친구들인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 ‘태산이’ 등이 2013년부터 차례로 제주 앞바다에 돌아갔다. 황 대표와 조약골 대표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제주 앞바다에 나가 제돌이의 안부를 확인한다. 2026년 5월13일에도 황 대표는 제돌이가 제주 앞바다에서 뛰노는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황 대표는 “제돌이 방류 때 비인간 인격체인 돌고래의 동물권과 동물복지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는데, 역설적으로 그 무렵 롯데월드 아쿠아리움과 거제씨월드 등 돌고래 감금시설(수족관 등)이 속속 생겨났다”며 “기업과 자본이 동물복지와 관련한 사회적 관심을 어떻게 돈벌이에 이용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제는 제돌이 방류 때의 경험을 되살려 사회 전체가 나서 돌고래 감금의 역사를 끝내야 할 시점이라는 게 황 대표의 주장이다. 첫손에 꼽히는 대안은 국가가 주도하는 생크추어리(바다쉼터) 조성이다. 앞서 해양수산부는 2026년 3월 ‘제2차 수족관 관리 종합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해양동물을 시설 내 수조에 가둬놓고 사육하는 대신 해양동물 생크추어리를 조성하는 것도 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황 대표는 “벨루가와 큰돌고래는 서로 서식 환경이 달라서 현재 남은 감금 돌고래들을 각각 어떻게 방류할지 다양한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제돌이 방류 때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들이 참여한 ‘제돌이방류시민위원회’를 꾸린 것이 좋은 선례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조약골 대표는 “3D·4D 등 디지털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때에 해양생태 관람을 꼭 수족관에서 할 필요가 없다. 디지털 수족관도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다”며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야 할 돌고래의 삶을 생태설명회 등 허울 좋은 명목을 위한 ‘입장료’와 등치시키는 일을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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